‘금강’ 김환철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 회장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5.11.11(수) 16:30:43 | 1361호
김환철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한문협) 회장은 ‘금강(金剛)’이라는 필명으로 강호를 휩쓴 ‘무림’의 초절정 고수다. 1981년 무협소설 <금검경혼>으로 데뷔한 그는 국내 장르문학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웹소설 사이트 ‘문피아’(www.munpia.com)의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창작자로서는 물론 사업가로서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6년도 더 지난 일이다. 2009년 4월 기자와 처음 전화통화를 했을 때 그는 ‘저작권 파동’에 대응하느라 일손을 놓고 있었다.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을 때다. 국내 장르소설이 독자층을 꾸준히 확대해나가는데도 책 판매량은 급격히 줄어들던 시기이기도 하다. 2015년 11월5일 서울 방배동 사무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상황은 좀 달라졌을까.
“불법 다운로드는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5년 전에는 국내 웹하드 중심으로 유통되던 게 지금은 중국과 같은 해외를 통해 유통된다는 것이다. 방식도 메일 교환 등 더 지능적으로 바뀌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창작자로서 재능 타고나
한때 장르소설의 주요 소비 시장이던 도서대여점 수는 2만여 개에서 1000여 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빠지기만 한 건 아니다. 인터넷 유료 연재가 대세를 이루면서 주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 문피아는 2013년부터 유료화를 실시했다. 매출이 그해 4억원에서 지난해 45억원으로 1년 사이 10배 이상 껑충 뛰었다. 올해는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 큰 변화를 가져왔다. 2~5분 사이 한 편을 볼 수 있는 이른바 ‘스낵컬처(snack culture)’가 각광받으면서 문피아도 더 힘을 얻게 됐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하느냐인데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수익이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지난해 1월 문피아에서 1등 한 작가는 (한 달에) 600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는데, 올해 10월의 경우 4500만원을 받아갔다. 외부 수익까지 합하면 더 늘어난다. 월 매출 1억원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김 회장 자신도 1세대 작가로서 최고 대우를 받았다. 데뷔와 동시에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의 나이 25세 때다. 이전에는 전문적으로 글을 쓴 적이 없었다. 창작자로서 재능을 타고난 셈이다. PC통신 시절 그의 무협소설이 한 유력 작가의 소설과 같은 시기에 연재됐다. 게임도 안 될 것이라는 주변 예상과 달리 그의 소설이 훨씬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아직도 강호에 떠도는 전설 같은 일화다. 어느덧 데뷔한 지도 3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국내 장르문학도 4세대에 접어들었다.
“3세대 초반까지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중견 작가 이상 넘어가면 그때보다 훨씬 수입이 좋다. 물론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다. 다만 대중문학을 하는 게 예전처럼 힘든 상황에서 글을 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자 중 한 명은 연간 소득이 10억원이 넘는다. 그게 끝이 아니라고 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평탄한 삶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셨다. 10세 때에는 의료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유복자이자 독자여서 어머니에게 그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초·중·고교 과정을 모두 검정고시로 마쳤다. 1년도 채 안 걸렸다. 공부에 자신이 있었지만 대학에 가지 않았다. 일반 대학에서 그를 받아주지 않았던 탓이다.
“어머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절망하거나 비뚤어질 여유가 없었다. 잠자는 시간조차 아끼며 살았다. 25세 전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그림도 그리고 조각도 했다. 관상학도 배웠다. 모두 전문가에게 사사했다. 국전 준비도 했다. 당시 나무 값이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그 돈을 마련하려고 글을 썼는데 처음부터 반응이 좋았던 것이다.”
“혹독한 검증 과정 거쳐 경쟁력 확보”
온라인 콘텐츠 산업은 대부분 포털 사이트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대중문학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문피아가 거둔 성과는 독보적이다. 현재 문피아에 글을 올리는 작가 수는 1만4000명에 이른다. 이용자 수는 40만명 정도로 포털 사이트에 많이 뒤지지만, 활성화 측면에서는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처음에는 무협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지금은 장르가 24개나 된다. 드라마 대본, 추리소설, SF 등을 망라한다. 유료 연재물의 경우 베스트에 올라온 소설은 무협보다 현대 판타지가 더 많다. 대부분 신인 작가들이다. 대세를 이루는 장르는 없다. 복합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포털의 영향력은 분명 강하다. 무임승차해 회원 수로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문피아의 독자 수도 늘어나고 있고 매출도 상승하고 있다.”
장르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가 바뀌면 독자들의 요구도 바뀐다. 김 회장이 데뷔한 1980년대는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말을 잃어버린 현실을 대신해 말을 쏟아낸 시대였다. 지금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장르문학도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상사를 혼내주고 싶은 직장인의 바람을 소설에서나마 대리만족시켜주는 것이다.
“온라인 연재물은 경쟁력이 뛰어나다. 한 회만 재미없어도 독자들은 안 보고 나가버린다. 매 회 독자들을 잡아놔야 한다. 유료 독자 5000명이면 월 수입이 3000만~4000만원 정도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한 회 잠깐 삐끗하면 순식간에 3000명이 빠져나가버린다. 이처럼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경쟁력이 강한 것이다.”
‘무협 대부(代父)’라는 별칭에 걸맞게 후배 양성에 관심이 많다. 올해 사단법인이 된 한문협은 창작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작가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1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문피아는 올해 총상금 3억7000만원 규모의 웹소설 공모대전을 개최했다. 1363편의 응모작이 쇄도했다. 재능 있는 신진 작가에게 월 100만원씩 3개월 동안 무상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 작가의 책을 해외에 소개하는 번역 사업도 펼치고 있다.
“우리 작가들은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해리포터’를 우리라고 못 쓸 이유가 없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웹툰이 잘나간다고 하니까 그쪽으로 지원이 경도돼 있다. 조앤 K. 롤링도 정부 지원을 받아 ‘해리포터’를 썼다. 실업자로 있을 때 2년 정도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우리나라였다면 싱글맘으로서 애를 키우며 그런 소설을 못 썼을 수도 있다.”
콘텐츠산업에서 대중문학이라는 상품이 갖는 특성도 해외 진출에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순수문학은 특정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고 해도 다른 작품의 해외 진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데 반해, 대중문학의 경우 무협소설 한 편이 해외에서 히트를 치면 다른 무협소설의 해외 진출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판타지 소설이 히트를 치면 다른 판타지 소설도 마찬가지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우리 작가들은 세계 어디다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 그 자질이 제대로 꽃피도록 정부가 지원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놔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못하면 의미가 없다. 정부 지원을 받은 작가들이 실질적인 성과를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문협과 문피아도 우리의 대중문학이 세계에 우뚝 설 수 있도록 힘을 보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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