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유 김영사 회장 단독 인터뷰…“자신 허물 덮으려고 날 사이비 교주로 몰아가”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5.12.31(목) 18:02:21 | 1368호
국내 최대 단행본 출판사인 김영사는 2015년 한 해를 혹독하게 보냈다. 2014년 5월 회사를 떠난 박은주 전 사장이 7월23일 창업주인 김강유 회장을 350억원 규모의 배임 및 횡령·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이 알려지자 출판계가 발칵 뒤집혔다. 박 전 사장이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김 회장이 회사를 ‘사금고’처럼 운영했는가 하면, 용인에 법당을 차려놓고 ‘교주’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당시 박 전 사장 측의 ‘검찰 제출 자료’를 입수해 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박 전 사장의 이 같은 주장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김영사가 회사 차원에서 반박에 나섰지만 뜨겁게 달아오른 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특히 김 회장이 직접 해명에 나서지 않자 이런저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2015년 11월24일 서울중앙지검 조사1부는 박 전 사장이 김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고소·고발 건에 대해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시사저널은 2015년 12월22일 서울시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김영사 사옥에서 김 회장을 직접 만났다. 그동안 침묵해왔던 김 회장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왜 직접 해명에 나서지 않았는지부터 물었다. 김 회장이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의혹이 더 확산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아 직접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대응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진흙탕 싸움 될까 봐 대응 안 했다”
“박 전 사장이 일방적으로 폭로를 했다. 일반인들은 고소까지 했기 때문에 뭔가 실체가 있지 않겠느냐 생각했을 거다.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회사다. 나는 명예도 없고 이름도 없는 사람이라 상관없다. 회사에 가장 피해가 적게 가는 방법이 뭔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대응을 안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중 한 곳인 김영사지만 그동안 창업주인 김 회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워낙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의혹이 더 증폭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회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을 일상적으로 해왔다”고 반박했다.
“회사를 전체적으로 관리·감독해왔다. 직접적인 경영은 박 전 사장이 했지만, 사장을 감독하고 큰일을 결정하는 게 회장이 하는 일 아닌가. 바로 그 역할을 해온 것이다.”
김 회장은 “출판 기획 부문 일도 계속해왔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책들 중에는 자신이 기획한 게 많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검찰 조사 때 자신이 기획한 책 리스트를 뽑아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전 사장이 ‘출판의 여왕’으로 불리며 ‘김영사 신화’를 이끌었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김 회장은 이의를 제기했다.
“박 전 사장은 행동형 실무자였다. 아이디어를 내는 쪽이 아니었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거나 외부에서 아이디어가 들어왔을 때 이런 것을 구체적인 지시에 의해 실천하는 역할이었다. 직책 때문에 박 전 사장 이름으로 나간 거였는데 자신이 기획하고 제안해 책을 냈다는 식으로 과장한 것이다.”
김 회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요청했다. 먼저 ‘김 회장의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35억원을 적절한 채권 회수 조치 없이 빌려줘 김영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김 회장은 “형님 회사가 아니라 김영사가 설립한 회사이며 충분한 담보를 확보하고 있어 김영사에 아무런 손실도 끼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영사에서 설립한 회사이며 박 전 사장도 이 회사에서 이사를 10년이나 했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주로 교육하는 회사다. 김영사가 출판한 책을 갖고 교육을 하는 거라서 두 회사가 서로 상생 관계에 있다. 그래서 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우리가 도와준 것이다. 이사회 등 공식 절차를 다 거쳤다.”
‘김 회장이 회사에 출근도 안 하면서 월급 등의 명목으로 36억원을 받아갔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36억원이라는 액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밝힌 후 자신과 박 전 사장의 연봉을 비교한 문서를 보여줬다.
“(2008년~2014년 3월) 박 전 사장의 연봉이 8억원이고 내 연봉이 8500만원이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04년) 상여금도 박 전 사장이 2억5300만원 받을 때 내가 2300만원을 받았다. 비자금을 매달 1000만원씩 보내도록 강요했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사장이 연봉 8억원을 받고 있는데, 회장이 돈이 필요하면 연봉을 올려 10억원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비자금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
“박은주 연봉 8억원, 내 연봉의 10배 받아”
박 전 사장의 통장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구체적으로 박 전 사장의 통장으로 돈이 입금된 후 김 회장의 통장으로 다시 송금되거나 현금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박 전 사장 통장을 통해 8억원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는 차명으로 돼 있는 가회동 사옥의 전세금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가회동 사옥이 박 전 사장의 명의로 돼 있었다. 이사회를 거쳐 전세금 8억원을 올렸는데, 차명으로 돼 있다 보니까 박 전 사장 통장을 통해 받은 것이다. 전세금은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갚으면 되는 돈이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가회동 사옥의 경우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기 전인 1994년에 매입했다. 차명 부동산이 합법일 때 이뤄진 거래였다는 것이다. 당시 필요에 의해 박 전 사장의 명의로 등록했지만 실소유주는 김 회장이라는 것을 해당 부동산 중개 자료로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전 사장의 주장은 다르다. 김 회장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제출한 자료 가운데는 ‘김 회장이 보상금 45억원을 준다고 속여 박 전 사장 소유 회사 주식과 가회동 사옥, 퇴직금까지 모두 포기하게 하는 식으로 285억원 상당을 잃게 만들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보상금 45억원을 준다고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가회동 사옥과 회사 주식은 박 전 사장에게 명의신탁을 해놓은 것이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장과 합의한 문서에도 이 같은 사실이 명시돼 있다고 김 회장은 밝혔다. 해당 합의서에는 박 전 사장이 자신 명의로 신탁된 부동산과 주식을 어떤 형태로든 김 회장에게 반환한다고 돼 있다. 김 회장은 “우리가 제기한 일체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뭘 주는 게 아니라 박 전 사장이 배상을 한다는 합의서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4년 9월22일 작성된 합의서에 앞서 그해 4월15일에는 별도의 확인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박 전 사장이 저질렀다는 각종 비리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그 규모가 200억원대에 이른다. 김 회장은 김영사 사태에 대해 “박 전 사장이 회사 돈을 횡령한 게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25년간 흑자를 유지해오던 회사가 2012년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한 걸 이상하게 여겨 2013년 말 내부 조사를 해보니까 박 전 사장의 여러 가지 비리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박 전 사장이 “강압에 의해 서명한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이 일었다. 반면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녹취가 있고 사진도 있다”며 “검찰에 전부 제출했다”고 밝혔다.
“건장한 남자 신도들로 꼼짝 못하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남자는 3명으로 나(김 회장)와 한 대학교수, 그리고 김영사 간부였다. 대학교수는 전직 직원으로 박 전 사장도 알고 지내던 분이고, 김영사 간부는 박 전 사장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던 분이다. 70세 가까이 된 분들인데 무슨 위협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세월호 사건에 편승해 사이비 교주로 몰아가”
김영사 사태가 논란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는 종교와 관련한 폭로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박 전 사장은 김 회장을 ‘교주’라고 지칭하고 <금강경> 공부 모임 회원들을 ‘신도’로 표현했다. 김 회장을 ‘무소불위의 부처님 행세를 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니까 종교를 물고 늘어진 것 같은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세월호 사건에 편승해 나를 사이비 교주라는 식으로 몰아갔다. 그러면 자신의 허물은 다 덮어질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내가 하는 공부는 뜻 맞는 몇 사람이 모여 불경 읽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동국대 총장을 지낸 백성욱 박사에게서 배웠는데 그분이 돌아가신 후 가까웠던 사람들이 모여 공부해온 것이다. 거기에 무슨 교주가 있나. 교주라고 하면 무슨 교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김 회장은 김영사 직원들에게 종교를 강요한 일도 없다고 강조했다. “내가 만약 교주였다면 10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가만히 내버려뒀겠느냐”는 것이다. 김 회장은 “우리 회사에 불교 책 브랜드는 없지만 기독교 책 브랜드는 있다”며 자신의 <금강경> 공부와 회사는 별개라고 밝혔다.
용인 법당이 너무 폐쇄적이라서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폐쇄할 것도 개방할 것도 없다. 몇 분이 모여 공부하는 거다. 종교로서 포교를 해온 게 아니다. 이런 공부는 공감을 해야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없다 보니까 인원이 늘어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도 <금강경> 공부 모임 멤버였다. 김 회장과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나는 스승이나 제자라는 관념이 별로 없다. 그렇게 부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이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면서 나를 스승이라고 내세운 건데, 그 사실을 알고는 그러지 말라고 몇 차례 주의를 줬다. 나를 내세우는 것도 별로 좋지 않고 <금강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외부에다가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네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박 전 사장은 한동안 자신이 번 돈을 모두 법당에 바쳤다고 했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이비 종교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김 회장은 “박 전 대표가 바보냐. 어디 산골의 무지렁이냐. 박 전 사장 같은 유명 인사가 어떻게 강요에 의해 그랬겠느냐”고 반문했다.
김 회장은 박 전 사장의 부동산 자산만 90억원이 넘는다며 검찰에 제출했다는 문서를 보여줬다. 여기에는 서울 반포의 55평 아파트, 마포의 48평형 오피스텔, 신교동의 건평 105평 건물 등 박 전 대표 소유로 돼 있는 부동산이 시가와 함께 적혀 있었다. 김 회장은 “몇 년 전까지도 월세로 사는데 전세로 이사해야겠다며 주식 배당금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이번 고소 건으로 알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판계 안팎에서는 김영사 사태를 두고 회사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애초 박 전 사장에게 경영권이 주어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박 전 사장은 직원으로 들어와 월급 사장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1999년에 54% 정도 되는 김영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보통 5%씩 줬는데 박 전 사장한테는 35%를 줬다. 이건 나중에 회사에 공이 많은 직원이 있을 때 나눠주기 위해 박 전 대표에게 맡겨 놓은 것이다. 그래서 배당금을 내가 받아왔다. 경영권 분쟁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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