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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문화

검찰이 ‘고삐 풀린 말’ 엉덩이를 걷어찼다

by 아나코스 2016. 3. 14.

‘연예인 성매매’ 루머 확산 경로 추적해보니… 정보 흘린 검찰이 맨 꼭대기 


안성모 기자·조은혜 인턴기자 | 승인 2013.12.26(목) 22:26|1262호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은 이제 촌스러운 옛말이 됐다. 초고속 정보화 시대에 말은 천리만리를 넘어 전 세계 어디라도 못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말 한마디의 위력은 ‘천 냥 빚’을 갚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말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따라서 할 말을 못해서도 안 되겠지만 못할 말을 해서도 안 된다. 할 말 못할 말을 가려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광풍을 몰고 온 ‘연예인 성매매’ 파문은 고삐 풀린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준다. 발 없는 말이 속되게 표현하면 ‘개판’을 쳤다. 확인되지도 않은 얘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 마치 사실인 양 유포한 증권가 정보지(일명 찌라시), 집단 관음증에 걸린 환자처럼 너도나도 퍼다 나르기에 바빴던 익명의 대중,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제쳐두고 중계식 보도 경쟁에 사활을 건 언론 매체 등이 개판을 마련해준 주역들이다.

여기에 빠뜨릴 수 없는 곳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검찰이다. 애당초 말이 마구간을 박차고 나온 것은 검찰의 ‘관계자’가 엉덩이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문화일보가 12월12일 ‘연예인 성매매 의혹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정보 제공자로 거론한 게 ‘검찰 및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였다. ‘1990년대 미인 대회에 입상’ ‘유명 드라마에 여러 차례 출연’ 등 잔뜩 호기심을 자극한 기사의 말미에는 “수사를 계속 확대해갈 것”이라는 수원지검 안산지청 관계자의 비장한 각오가 실렸다.

이후 정보의 바다는 아수라장이 됐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언론에 등장한 A·B 이니셜이 누구인지 ‘실명 찾기 대결’이 펼쳐졌고, 관련 기사에는 ‘A는 ○○○, B는 ×××’ 등 아니면 말고 식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속 세상은 더 요지경이었다.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확인도 안 된 소문이 날개를 단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날아다녔다. 이때도 언론이 ‘검찰 관계자’의 입을 빌려 “성매매 수사를 진행 중”이라는 기사를 앞다퉈 내보내면서 판이 더 커졌다.

 

검찰이 추측성 의혹에 신빙성 제공한 꼴

당시 기자들 사이에도 여러 가지 얘기가 나돌았다. 그중 하나가 ‘검찰이 연예인을 대상으로 마약 수사를 하다가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자 성매매 수사로 전환했고, 여기서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수사 내용을 언론에 살짝 흘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검찰에서 공을 들인 사건의 경우 수사가 벽에 부닥치면 언론에 정보를 흘려 의혹을 양산하고, 여기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면 다시 수사에 박차를 가한 후 마무리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번 ‘연예인 성매매’ 소문도 확산 지점을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차근차근 쫓아 올라가면 맨 꼭대기에 검찰이 있다. ‘여론 재판←인터넷·스마트폰 대량 유포←실명 추정 찌라시←언론 이니셜 보도←검찰발 정보’는 대다수 연예인 관련 소문이 거치는 유통 경로다. ‘검찰이 수사 중이다’에서 시작된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소문의 주인공은 누구다’라는 식의 살이 붙고 급기야 통제 불능의 루머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한 발짝 물러나 뒷짐만 진 채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다.

‘연예인 성매매’라는 황색 열풍이 몰아칠 때 검찰이 보인 태도는 두 가지였다. 기존의 정보에는 살을 조금씩 덧붙인 반면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한 것이다. ‘성매매 연예인’에 대한 일부 정보를 노출시켜 너도나도 ‘실명 찾기’에 몰두하게 만든 검찰은 이후에도 관련 정보를 찔끔찔끔 흘려 대상 범위를 좁혀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 결과 성매매와는 전혀 관계없는 연예인의 실명이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검찰은 특정 연예인의 성매매 관련 소문이 떠도는데도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찌라시 정보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추측성 의혹에 신빙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한바탕 광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12월19일 검찰은 수사 과정과 결과를 발표했다. 일단 12명을 성매매 알선과 성매매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매매 연예인’으로 실명이 거론됐던 여성 연예인 대다수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성매매 관련 여성 대부분이 드라마 또는 방송에 출연한 경력은 있지만 연예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전달된 검찰 관계자들의 말과는 차이가 있다. 이들의 입을 빌어 언론이 보도한 기사 중 상당수는 말 그대로 추측성 기사였던 셈이다.

 

‘정치적 이슈 덮으려…’ 음모론도

곤경에 빠진 것은 졸지에 성매매 여성으로 오해받은 여성 연예인들이다. 이번과 같은 사건에 이름이 거론되면 당사자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아니면 입을 꾹 닫고 모른 척해야 한다.

그런데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언론에 A·B라는 이니셜이 아닌 실명이 보도된다. 이름이 바로 브랜드인 연예인으로서 쉽게 결정하기 힘든 선택이다.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마치 소문을 사실로 인정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사실이니까 아무런 해명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몰아세우는 것이다.

이번의 경우 대다수 연예인은 수사를 의뢰하는 등 공개적으로 대응에 나섰다. 이들이 고소한 루머 유포 사건은 검찰과 경찰이 맡아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수사가 진행되면 소문을 유포한 불특정 다수가 쇠고랑을 찰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만 처벌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사실과 다른 루머를 생산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퍼다 나른 이들은 분명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함께 루머 확산의 선봉에 섰던 언론도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문화일보의 첫 보도가 나간 12월12일 하루 동안 생산된 관련 기사가 120건에 이를 정도로 과열 경쟁이 펼쳐졌다. 많은 매체가 이 사안에 매달렸지만 대다수는 ‘성매매 연예인’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보도하는 데 집중했다.

무엇보다 검찰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최초 보도가 검찰의 정보로부터 시작됐다. 또 근거 없는 소문이 확산되는데도 대처가 미흡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정보를 선정적으로 흘려서 그런 보도가 나왔을 것이다. 이후 실명까지 거론됐는데도 일주일 동안이나 방치했다. 누구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얘기해주면 되는데 그러지 않았다. 검찰이 소문 자체를 원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러한 행태로 인해 갖가지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다. 사건 초기 기자가 접한 얘기 중 하나는 ‘현 정권과 가까운 유력 인사가 관여돼 있어 수사가 불가능해지자 해당 검찰 쪽에서 언론에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는 정치적 의도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는 시점에 국민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주민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수사 대상도 아닌 많은 연예인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이들의 인권을 지켜주려고 하지 않았다. 검찰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임무를 지닌 국가기관이다. 어떻게 보면 해야 할 일을 안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이슈를 덮으려고 연예인 수사를 터뜨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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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에 찬물 끼얹나


2012년 미국의 CNN이 한류를 조명한 적이 있다. 당시 CNN은 K팝과 드라마 이외에 장자연 사건을 설명하며 한국의 ‘연예인 성매매’에 관해 언급했다. 연예인 성매매 사건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도되는 것은 그만큼 ‘한류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좋은 소식’뿐 아니라 ‘나쁜 소식’도 관심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류 스타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소문까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연예인 성매매’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한류 시장의 큰손이라고 할 수 있는 중화권에서도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중국의 연예 매체들은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 성매매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한 후 특정 연예인의 이름까지 거론하며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 여성 탤런트의 이름이 올라오자 중국 네티즌들의 관심이 증폭됐다.

연예계에서는 이러한 ‘나쁜 소식’이 한류 열풍을 얼어붙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해당 연예인의 명예 실추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 연예인의 이미지 자체가 도매금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이미 망신살이 뻗쳤다. 연예계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확인도 안 된 소문을 양산해 퍼뜨리면서 스스로 집안 망신을 시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성매매로 인한 국가 이미지 추락은 한류 열풍을 악용하는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류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성매매를 하는 한국 여성의 수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성매매 대가로 받는 돈도 그만큼 올라가는 추세라고 한다. 2012년 6월에는 모델 출신의 한국 여성 100여 명이 타이완에서 집단 성매매를 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당시 중국 언론들은 “성매매도 한류”라고 비꼬았다. 올해 8월에도 같은 곳에서 걸그룹 출신 연예인과 외모가 닮은 한국 여성이 성매매 제의를 받고 윤락 행위를 하다가 붙잡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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