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되었다 승소한 ‘청각 장애’ 안태성 전 청강대 교수 인터뷰
“학과장 때 ‘자격 미달’ 교수로 뽑지 않아 미운털 박혀”
[1085호] 2010.08.03 18:26:30(월) 안성모 기자
ⓒ시사저널 유장훈
안태성 전 청강문화산업대(이하 청강대) 교수는 청각 장애인이다. 한 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고 나머지 귀도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안 전 교수는 이러한 선천적인 역경을 딛고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미술대전 구상 부문 우수상을 받은 그는 청강대에 임용된 지 2년만인 2001년 이 학교 만화창작과 초대 학과장을 지냈다. 그는 역사적 인물의 초상을 연구해 대중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1만원권 지폐에 그려진 세종대왕 상, 서울 세종로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이 실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안 전 교수는 2005년 강의 전담 교원으로 강등되었고, 2007년 전임 교원으로 복귀시켜줄 것을 요구하며 2년 계약을 거부하다 학교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그는 3년 넘게 부당 해임을 주장하며 법정 싸움을 펼치고 있다. 최근 이와 관련한 두 건의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민사합의부는 7월22일 안 전 교수가 청강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학교 쪽 처분은 무효이고, 위자료로 안 전 교수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해직된 때부터 조교수로 재임용될 때까지 매월 3백32만5천원씩의 월급을 지급하고, 조교수로 있다가 2005년 강의 전담 교원으로 바뀌어 2년간 원래보다 매월 82만5천원씩 삭감되었던 월급을 지급하라”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7월9일 청강대가 교육과학기술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재임용 거부 처분 취소 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청강대는 지난 1월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내린 “학교 쪽의 재임용 거부 처분이 잘못되었다”라는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 소송을 낸 바 있다. 재판부는 “재임용 계약 체결의 결렬은 원고(청강대)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7월28일 서울 신림동의 한 빌라 반지하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서 안 전 교수를 만났다. 승소를 했는데도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학교를 떠난 후 지속된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피로감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이 보였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우선 개인적으로 기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장애인 평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 기폭제가 된 것 같다.
왜 학과장에서 강의 전담 교원으로 강등되었다고 보나?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학과장일 때 학교에서 원하는 교수를 뽑지 못하도록 몇 차례 반대 의견서를 제출한 적이 있다.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전문대학 졸업이 최종 학력이거나, 전공이 부합하지 않아 반대했다. 국어교사를 뽑는데 수학교사를 추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학교측에서는 업적 점수가 미달되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0.7점 때문에 강등된 경우가 어느 대학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객관적인 점수가 아니라 학장이 주는 주관적인 점수가 낮아서였다. 해직 직후 학교측에 공개 토론을 요구했다. 학생들도 환영했다. 하지만 학교측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청각 장애도 원인 중 하나라고 보는가?
학교측에서는 장애 사실을 몰랐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된다. ‘귀가 먹어 잘 안 들린다’라고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도 있고,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에게 크게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다 알고 있는데, 6~7년을 같이 일한 교수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나. ‘귀 먹었으니까 집에 가서 화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도 몇 번이나 들었다. ‘청각 장애인인 줄 알았으면 뽑지 않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병신이면 병신답게 조용히 있지 왜 나서느냐, 한마디로 병신이 육갑했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장애인 차별이라고 공고했다.
다른 차별도 있었나?
개교 10주년 기념으로 전 교직원이 중국 해남도에 연수를 간 적이 있다. 여권을 갱신하고 비자도 신청했다. 그런데 3주를 남겨두고 기획실장이 연구실로 찾아와서 느닷없이 ‘해남도에 안 가면 안 되겠느냐’라고 했다. ‘날도 덥고 가면 고생인데 쉬는 게 편한 것 아니냐’라는 것이다. ‘이 자리가 학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자리 아니냐’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다른 교수에게는 ‘해남도가 쾌적한 환경이다’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날 집에 와서 아내와 밤새 울었다. 방학 시작 직전에 다른 교수들은 다 연수를 갔는데 혼자 학교에 나가서 ‘땜빵 강의’를 했다. 그 밖에 졸업식에도 연락을 안 해주거나, 바로 옆방에서 회의를 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만화연대에도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우리만화연대는 권력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제도권 만화계를 휘어잡고 있다. 현재 청강대 만화창작과도 여기 회원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신규 교수 임용 과정에서 나를 배제시켰다. 해직 당시 교수 다섯 명 전원이 정회원이었다. 우리만화연대 회원이 아니면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만화연대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관련 회원을 책임지고 탈퇴시키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다. (이사를 지낸) 박재동 화백에게도 블로그를 통해 공개 질의를 했다. ‘우리만화연대 회원들로 구성된 청강대 문제에 대해 왜 말이 없느냐’라고 물었다. 하지만 답변이 없었다. 대신에 우리만화연대 회장 명의로 내용증명서가 날아왔다. ‘허위 사실을 적시해 특정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우리만화연대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약자를 위해야 할 조직이 이 문제는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상식 이하의 대응을 했다. 독재 시절 광야에서 가졌던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4년째 지하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취직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다. 공장에 취업하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 일도 지원했는데, 귀가 안 들려 전화를 못 받다 보니 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환경미화원으로 취업하려고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사실 앞길이 잘 안 보인다. 복직해서 학생들 가르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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