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후 압력 계속…작가회의 기자회견도 문제삼아”
2004-11-01 10:52 안성모 (momo@dailyseoprise.com) 기자
“회사가 동으로 가자고 하는데 만평만 서로 가서야 되겠냐는 건데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같은 방향으로 안간다고 해서 짓밟고 가려고 하다니요. 더구나 작가의 창작력과 상상력을 획일화시켜가면서 말입니다.”
‘문화일보’가 편집국장의 일방적인 지시로 지난달 29일자 ‘문화만평’을 또 누락시켰다. 10월 한달에만 벌써 4번째(10월 5일, 7일, 18일, 29일)다. 사설 등 내부 칼럼과 논조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재용 화백은 “이번 만평 역시 여야 모두를 비판한 것인데 마치 한나라당만 비판했다고 오독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화백은 “2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나라당과 이해찬 총리가 ‘막말’로 떠든 것을 담았다. 마치 옛날 정치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우려돼 양쪽을 다 비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종호 편집국장의 생각은 달랐다. 이 화백은 “김 국장은 (만평의) 무게 중심이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데 있고 나머지는 끼워넣기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몇분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도저히 의견차를 좁힐 수 없어서 그냥 나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만평 뺄 수 있으니 준비하라…상당한 압력으로 받아들여져”
이 화백이 창작에 간섭을 받기 시작한 것은 탄핵정국이 끝난 지난 5월께. 이 화백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언의 압력이 느껴졌다”며 “특히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내용일 때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던중 편집국장으로부터 ‘사설과 논조를 일치시켜줄 것’을 요구받았다는 것.
그는 “5월달에 일주일정도 휴가를 다녀온후로 조금 나아지는듯 했는데, 최근 들어 또 논조가 일치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라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화백은 이달 들어 만평이 여러차례 누락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한다. 그는 “이미 국장은 2~3주전부터 만평을 뺄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며 “담당 편집자에게 미리 대비를 시켜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국장을 통해서 그에게 직접 “(만평) 뺄수 있으니까 준비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상당한 압력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는 “만평이 완성되면 한부를 출력해서 국장에게 가져가는데 그 후로는 만평을 가져가면 '뺄려고 무슨 꼬투리든 잡으려 든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마치 뺄려고 작정을 하는 듯 했다”는 것.
“동으로 가는게 옳은지 구성원간 합의도 없어”
김 국장은 이 화백의 만평을 문제삼는 근거로 ‘사설 등 내부 칼럼과 논조가 다르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화백은 “회사가 동으로 가자고 하는데 만평만 서로 가서야 되겠냐는 건데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같은 방향으로 안간다고 짓밟고 가려는 건가”라고 반문하며, “더구나 작가의 창작력과 상상력을 획일화시켜 가면서까지 가는 방향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화백은 또 “신문을 무슨 목적을 가지고 만들고 있기에 다양성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리고 동으로 가는게 올바른지 구성원들과 합의도 없는 상태”라며 덧붙였다.
특히 전임 사장과 편집국장의 경우 ‘신문발전에 공이 많았다’며 그에게 공로상까지 수상했는데 이제는 ‘역적’ 취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작가는 꾸준하게 같은 논조로 만평을 그려나가고 있는데 회사에서 이 부분을 흔들고 있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라고 허탈해 했다.
이 화백은 “무슨 공산당 당보나 사보도 아니고 칼럼 기사 등 논조를 모두 일치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상황을 음식에 비유했다. “메인요리를 큰 접시에다 담았다고 해서 여타 다른 반찬 담을 작은 접시에도 모두 메인요리를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라며 “독자에게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게 옳다”는 것.
만평을 사설의 삽화쯤으로 여기는 듯한 그릇된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작가의 창작의지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시키는대로 해라는 것을 누가 받아들이겠냐”며 “특히 창작자의 이름으로 올리는 창작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동료작가, 노조 등과 함께 대응책 강구”
지난달 30일 이 화백은 김 국장이 불러 편집국을 찾았다. 만평 누락 문제에 대해 국장과 공식적으로 의견을 나누기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문제 해결보다는 ‘이 화백이 작가회의나 노조와 기자회견을 갖는 부분’을 또다른 문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강연이나 기자회견 등 외부활동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며 “인터넷 언론에 누락된 만평이 실리는 것에 대해서도 ‘판권’을 근거로 문제삼으려는 듯 하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앞으로 동료 작가들과 함께 대응책을 강구해나갈 생각이다. 또 언론노조 차원에서 만평누락 재발방지를 요구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2일 작가회의, 노조 등과 함께 회의를 갖고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이 화백은 “지금까지는 연락이 오면 직접 편집부로 만평을 보냈는데, 이번에 또 누락되면 이제는 노조를 통해 만평을 보내는 방식 등을 고려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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