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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문화

[인터뷰] 정지영 "차기작 「아리랑」국보법에 걸려도 무시하겠다"

by 아나코스 2015. 3. 25.

혁명가 김산 생애 담은 영화 준비 중인 정지영 감독 인터뷰


2004-12-18 17:21 안성모 (momo@dailyseop.com) 기자 
 
  
“검열의 시대인 80년대에 영화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많은 민주인사들이 고문을 당하고 감옥으로 끌려갔는데 저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표현을 억제하곤 했죠. 스스로를 검열한 셈입니다. 그런 저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17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며 단식농성이 한창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스크린쿼터 지킴이’ 정지영 감독이 칼바람 몰아치는 농성장을 찾았다. 개혁진영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단식농성 합류’를 선언하는 자리에 영화계 대표적 투사로 알려진 정 감독이 나선 것이다.

정 감독은 처음 영화를 시작했던 80년대의 ‘부끄러웠던 기억’부터 떠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무수한 젊음이 갖은 고문에 시달리며 감옥으로 끌려가던 시절, 영화에만 빠져있었던 자신에 대한 비판적 고백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보법으로 피해를 당했기에 민주인사로 인정받아 국회로 들어간 의원들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행태”를 보면서 이를 성토해야겠다는 생각에 농성장을 찾았다고 한다.

 

“국보법 폐지, 타협 대상이 아니다”

 

정 감독에게 있어 국보법 폐지는 너무나 당연하다. 왜 폐지해야 하는지를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는 “국보법이 반드시 존치해야 된다는 논리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고 또 이해도 안된다”고 짤라 말했다. “돈전쟁 이번에는 안된다”며 파병 반대에 나설 때의 결연했던 모습 그대로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열망은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다. 정 감독은 국보법을 둘러싼 최근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고 한다. 국보법을 ‘타협의 대상’으로 여기는 모습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특히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이 대체입법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마치 국보법을 놓고 흥정을 하는 듯한 이런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정 감독에게 있어서 지난 4·15총선은 특별하다. ‘노문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인 모임)에서 활동했던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전국구 의원 후보를 심사하는 ‘비례대표 후보자 선정위원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만큼 과반수 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보법 폐지 후 대체입법과 형법보완을 놓고 고민하던 이부영 의장에게 “대체입법으로 이름만 바꾸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며 국보법의 완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던 그다. 하지만 국보법 폐지를 놓고 한나라당과 ‘절충’ 하려는 최근 모습에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국민 여론’이라며 ‘국보법을 폐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역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정 감독은 “폐지 여론이 적다면 그것은 단지 홍보 부족 때문”이라며 “국보법의 감춰진 모습과 함께 있을 경우와 없을 경우를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알리면 왜 폐지해야만 하는지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문화예술계가 짊어져야할 책무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정 감독은 “그동안 서명을 받거나 기자회견을 갖는 수준”이었다며 “이번 단식농성을 계기로 보다 적극적인 국보법 폐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차기작 ‘아리랑’ 국보법에 걸려도 무시할 생각”

 

정 감독은 요즘 막바지에 들어선 시나리오 작업에 눈코 뜰세 없이 바쁘다. 지난 3여년간 준비해온 야심작 ‘아리랑’의 본격적인 제작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 감독은 “내년초면 시나리오 작업을 완료해서 크랭크인할 예정”이라며 “내년 겨울까지는 모든 촬영을 끝내고 후내년에는 극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아리랑’은 80년대 젊은이들에게 널리 읽혔던 님 웨일즈의 논픽션 동명소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1905~1938)의 짧은 생애를 담을 작품이다. 김산(본명 장지락)은 평양에서 태어나 열다섯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난 후 중국공산당의 일원으로 만주와 베이징, 광동, 연안을 누비며 조국의 독립과 공산혁명을 추구하던 젊은 혁명가. 하지만 북한에서는 연안파로 몰리고 남한에서는 냉전식 반공이데올로기에 묻혀 우리 역사에서 철저히 외면 당해왔던 인물이다.

정 감독의 전작인 ‘남부군’이 겹쳐 떠올려진다. 이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부군’은 황량한 지리산의 한 자락에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눠야만 했던 빨치산을 통해 전쟁과 이념의 비극을 그린 수작. 특히 ‘반공’이 강한 생명력과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상불온’을 검열하던 90년 전후 빨치산을 소재로 해 충격을 줬던 작품이다.

공산혁명을 꿈꾼 한 젊은 혁명가의 삶을 담아낼 이번 영화 역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혹시 국보법에 저촉되는 ‘불온스런 영화’가 되지는 않을까? 정 감독은 “설령 저촉되더라도 무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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