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비밀 창고’ 못 찾았다
안성모·이규대 기자·조혜지 인턴기자 | 승인 2013.07.25(목) 18:45|1240호
이번에는 과연 정의가 바로 세워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집행에 나선 검찰의 칼날이 매섭다. 며칠 사이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은 물론 친인척들의 집과 관련 회사 30여 곳을 대대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국세청과 함께 전 전 대통령 내외와 일가, 측근의 보험 가입 현황과 계약 내용도 조사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주변을 전 방위로 압박해나가는 모습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7월17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징수와 관련해 “일명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되고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압수수색에 들어가 추징팀을 치하했다”고 밝혔다. 1995년 전 전 대통령을 수사한 경험이 있는 채 총장은 “정의가 바로 세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의 의지가 강하다.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검찰이 7월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시공사 사옥을 압수수색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구입됐다고 의심되는 미술품을 화물차로 옮기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미술품 400여 점 확보…가짜란 얘기도
검찰이 매머드급 조직을 꾸려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는데도 ‘전두환 비자금’을 찾아내 미납된 추징금을 다 징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도 뒷북만 치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자택과 첫째아들 재국씨가 소유한 경기도 연천의 허브빌리지 창고, 경기도 파주의 시공사 기숙사 창고 등에서 400여 점에 달하는 미술품을 찾아냈다. 여기에는 당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비롯해 ‘억’ 소리가 나는 고가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만약 이 미술품들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사들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압류를 통해 추징금 징수가 가능하다. 모처럼 검찰이 올린 쾌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주변의 시선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큰아들 재국씨와 둘째 아들 재용씨 형제가 미술품에 관심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1980년대 뉴욕 유학 시절에 재국씨는 전공인 경영학보다 동생 재용씨와 함께 미술관 구경을 더 즐겼다고 한다. 재용씨는 뉴욕에서 개인전까지 연 것으로 알려졌다.
재국씨는 귀국 후 시공사를 운영하면서 국내 현대미술 작가 55명의 작품집 <아르비방(생동하는 미술)>을 기획했고, 한·중·일 미술사학자들을 동원한 학술지 <미술사논단>도 발간했다. 1994년에는 홍익대 정문 인근에 미술책 전문 서점 ‘아티누스’를 열기도 했다. ㅈ갤러리 대표를 지낸 전 아무개씨와 ㅎ갤러리 큐레이터 출신인 한 아무개씨 등에게 자문을 받아 미술품을 수집하고 소장하는 한편, 미술관 개관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말도 나돌았다.
이는 한 달 전에도 국회에서 화제가 됐던 이야기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6월20일 재국씨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그림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신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황교안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오산 근처에 엄청난 규모의 국내외 화가들이 그린 명화들이 있는 수장고가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재국씨의 대리인으로 행사해온 인물로 전씨와 한씨를 지목하며 “화랑을 돌아다니며 명화 컬렉션을 했다는 이야기가 미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검찰에서는 빠른 시간 내에 압수수색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전 전 대통령측 입장에서는 이에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고 볼 수 있다. 압수한 미술품의 수량은 많지만 가격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검찰에서는 미술 전문가들을 동원해 진위 여부를 감정하고 공매를 통해 값을 따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압수한 미술품 중에 가짜가 많다면 검찰이 건질 금액은 적을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각각 가격을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 압수한 미술품 중 상당수가 가짜일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압수수색 받기 전 비자금 장부 빼돌렸나
검찰의 압수수색에 앞서 시공사가 관련 서류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시공사의 핵심 부서가 모인 서초구 ㅂ건물에서 상당 분량의 서류 뭉치가 트럭에 실려 옮겨지는 모습이 주민들에게 포착됐다는 것이다. 만약 조세 회피처인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로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흘러들어가는 과정에 시공사가 이용됐다면 회사측이 관련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서류를 빼돌렸을 가능성이 있다.
시공사측은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본관 지하실에 보관하는 책과 문서들이 장마철이라 모두 젖어버렸다. 그래서 지난주에 사무실을 재배치할 때 이동시킨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때 옮긴 문서는 본관 옆 ㅂ건물의 경영지원실에 있었는데, 그 문서도 이미 검찰이 모두 압수해 갔다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징수와 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존재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던 지난 6월26일쯤 그룹 내에 여러 사무실을 재배치한 것도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초구 ㅁ빌딩에 떨어져 있던 경영지원실이 갑자기 ㅂ빌딩으로 이전한 것이 이때였다. 사무실 이전 및 재배치를 명목으로 관련 서류를 빼돌리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시공사 관계자는 “ㅂ빌딩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옮긴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ㅂ건물 4층에 입주해 있는 업체의 한 직원은 “2주 전쯤 원래 시공사 사무실이었던 공간끼리 이사를 했다. 사무실을 바꾸고 자리를 재배치한다고 들었는데, 그때 책상이며 서류 등을 옮긴다고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 있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서류 빼돌리기는) 압수수색을 앞둔 여느 회사나 다 하는 일 아니냐. 의혹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1995년 12월2일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고향에 내려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선친 묘소에 성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범죄자가 오히려 큰소리친다
검찰의 ‘늑장 대응’ 논란이 제기되는 데는 과거 검찰이 보여 온 행태 탓이 크다. 그동안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징수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전 전 대통령이 납부해야 할 추징금은 1672억원에 이른다. 총 2205억원 중 약 24%만 냈고 나머지 76%는 아직도 내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추징금 징수에 나서야 할 검찰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추징금 집행 실적이 부진하자 검찰은 2003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공개해달라는 재산 명시 신청을 법원에 내 공개 명령을 받아낸 것이다. 당시 법정에 나온 전 전 대통령은 그 유명한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발언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그의 말 속에는 추징금을 징수할 책임이 있는 검찰에게 ‘해볼 테면 해보라’는 조소가 은연중에 녹아들어 있다는 뒷말이 나왔다. 전 전 대통령은 “검사가 조사를 해가지고 없으니까 못 가져간 거 아니냐. 마당에 숨겨놓은 게 있으면 마당에 와서 파보면 되잖아”라며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범죄자가 큰소리치는 이상 현상은 검찰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과 전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대결은 YS(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 시절이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내란죄 혐의로 고소·고발된 그를 1년 2개월여 동안 조사한 끝에 1995년 7월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전 전 대통령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첫 대결부터 검찰이 한풀 꺾이고 들어간 것이다.
그해 12월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검찰 수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을 구속한 후 1년여에 걸쳐 수사했고, 1심에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 선고를 받아냈다. 2심에서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된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대법원으로부터 이 형을 확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감옥 생활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여야 간 정권 교체가 이뤄지기 직전인 1997년 12월 전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 및 복권돼 자유의 몸이 됐다.
그렇지만 대법원이 확정한 추징금은 특사와 상관없이 그대로 남았다. 검찰은 1997년 5월과 10월에 188억원 규모의 무기명 채권과 124억원 규모의 현금 자산을 차례로 추징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2205억원 가운데 그해 추징한 금액은 312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검찰 수사와도 한참 동떨어진 결과였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6~87년 사이 50대 재벌에게 50억~100억원씩 할당해 거두는 방식으로 최소한 3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봤다.
당시 검찰은 비자금 특성상 차명으로 관리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돈의 행방을 쫓는 데 주력했다. 비자금의 상당액이 수도권 일대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를 주목했다.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후에 거액의 돈이 이씨 명의로 실명 전환된 혐의를 잡은 것이다. 검찰은 1995년 12월 말 극비리에 그를 불러 조사했다.
비자금 관리 의혹 친인척들 사법 처리 제외
그런데 이듬해인 1996년 1월 이씨는 물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친인척들은 사법 처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전 전 대통령이 구속돼 있는 상황에서 처벌하는 것은 법 감정에 맞지 않으며 5공 비리 청산 당시 이미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 전 대통령으로서는 거리낄 게 없었다. 1996년 2월 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공판 때 나온 질의응답이다.
현재 산업금융채권이나 장기신용채권 등에 보관하고 있는 자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실명된 이후에는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창석씨 등 친인척 명의로 실명 전환하지 않았습니까.
“정치자금을 친인척 명의로 관리한 일이 없습니다.”
피고인 이름으로 했습니까.
“무기명으로 했습니다.”
퇴임 후에는 총선 자금, 정치 재개를 위한 자금, 친인척 관리 자금, 백담사행 비용, 국가 헌납 등에 사용했다고 했는데 맞습니까.
“예.”
진술 내용 가운데 정치인과 언론인의 이름도 있는데 밝힐 용의가 있습니까.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금을 관리한 친인척들의 이름을 공개할 의사가 있습니까.
“그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기 때문에 밝히지 않겠습니다.”
재임 중 정당 운영비, 각종 격려비 등을 쓰고 남은 잔액은 얼마나 됩니까.
“검찰에 모두 제출했습니다.”
검찰에 제출한 것 이외의 것은 얼마나 됩니까.
“없습니다. 검찰이 야무지게 조사해 모두 밝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야무지게 조사했다며 검찰을 치켜세우는 대목에서 방청석은 일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전 재산 29만원’ 발언과 분위기가 일맥상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 전 대통령이 큰소리치는 데는 검찰에 대한 그만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후 검찰은 간간히 그의 ‘믿음’을 의심하게 만들었지만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차명으로 전환해 은닉했을 것으로 보이는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답보 상태를 거듭했다. 결국 2000년 12월 9900만원에 낙찰된 1987년식 벤츠 승용차를 강제 집행하고, 재국씨 명의로 된 용평 콘도 회원권을 경매에 붙여 1억1000만원가량을 징수하는 데 그쳤다. 몇 년 뒤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3년 그의 ‘전 재산 29만원’과 연희동 자택에 있는 전자제품과 진돗개 두 마리까지 압류해 1억7000만원을 강제 집행했다.
이듬해인 2004년 검찰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10월 ‘현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사채 시장의 자금을 추적하던 중 재용씨 명의의 뭉칫돈이 발견된 것이다. 이와 함께 재용씨가 수백억 원의 현금을 해외로 빼돌려 부동산을 산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재용씨가 이 정도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이 자금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일부일 수 있다고 여겼다.
7월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시공사 사무실에 본지 취재진이 찾아가자 회사 관계자가 자리를 피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여러 사람 명의 오가며 돈세탁
재판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과 가족이 비자금을 얼마나 철저히 관리했는지 그 단면이 드러났다. 재용씨는 2000년 12월 외조부인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으로부터 국민주택채권 2771장을 받았다. 이 중 1013장은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재용씨는 증여받은 채권을 다른 사람 명의로 은행 두 곳의 대여금고에 보관했다. 2001년 9월에는 한 증권사에 노숙자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했다. 이 계좌로 채권 중 일부를 판매한 후 그 돈을 사채업자들이 운영하는 7개의 차명계좌에 분산 입금했다. 2002년에는 다른 사람을 시켜 나머지 채권을 판 뒤 그 돈으로 다시 국민주택채권을 구입했다. 돈 관리 자체가 철저히 차명으로만 이뤄진 것이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재용씨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167억원을 차명으로 관리하면서 71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했다며 그를 구속했다. 그런데 수사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의 이름이 다시 거론됐다. 재용씨의 괴자금 167억원 가운데 10억원이 이씨의 계좌에 입금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이씨가 1000억원대 자산가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유입 여부에 대해 집중 수사했다. 하지만 사건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순자씨가 ‘알토란같은 내 돈’ 199억5000만원을 대납하면서 맥이 빠졌다. 재용씨는 구속됐지만 그가 보유한 73억5500만원 상당의 채권은 추징되지 않았다.
‘채동욱호’ 검찰도 전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의 수사 결과를 보면 ‘전두환’ 이름으로 된 재산을 찾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가족이나 친인척으로 흘러들어갔거나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을 찾아내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돈의 경우 20여 년 전부터 여러 사람의 명의를 오가며 돈세탁을 철저히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좀 더 일찍 칼을 빼들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또 여러 정황으로 보면 고가의 미술품 등을 숨긴 ‘비밀 창고’가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것을 찾지 않는 이상 검찰의 추징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법정에서 ‘측근과 자식들이 추징금을 안 내주나’라는 판사의 질문에 “그들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이라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다. <시사저널>이 그동안 추적해온 전두환 가족의 재산만 해도 24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처남 이씨의 재산까지 더하면 5000억원 가까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상당수가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날이 선 칼을 뽑아 든 검찰이 이번에는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꽁꽁 숨은 해외 재산 아무도 모른다
전재만씨와 피트 페리 부사장(맨 위).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포도밭 전경(왼쪽)과 와이너리 내부 모습. ⓒ조선일보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는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해외에 은닉한 재산의 경우 현실적으로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반대로 해외에 은닉해둔 재산이 존재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전 전 대통령의 해외 재산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위치한 1000억원대의 와이너리(와인 생산 공장)다. 삼남 재만씨가 장인인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과 함께 운영하는 ‘다나 이스테이트(DANA ESTATES)’라는 상호의 이 와이너리는 포도밭 전체 규모가 53만4204㎡(16만1700여 평)에 이른다.
전 전 대통령의 사돈인 이희상 회장은 비자금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1995년 재만씨와 이 회장의 장녀 윤혜씨가 결혼할 당시 이 회장이 결혼 축하금으로 재만씨에게 160억원 규모의 채권을 건네 화제가 됐다. 검찰은 이 채권의 경로를 추적해 그중 114억원의 실소유주가 전 전 대통령이라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았다”는 이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만씨가 소유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빌딩의 매입 자금에 대해서도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때도 장인인 이 회장이 재산 분배 차원에서 상속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황을 놓고 볼 때 와이너리에 투입된 자금도 전 전 대통령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운산그룹 계열사인 동아원은 “와이너리 사업은 전적으로 동아원의 자금을 통해 정상적인 투자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최근 장남인 전재국 시공사 대표가 2004년 7월28일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이 드러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자본금 5만 달러짜리 회사로 등록했지만 실제로는 1달러짜리 주식 1주만 발행한 것을 보면 사업을 목적으로 한 회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재국씨는 “1989년 미국 유학 생활을 일시 중지하고 귀국할 당시 가지고 있던 학비·생활비 등을 관련 은행의 권유에 따라 싱가포르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15년이 지나 다른 나라에 돈을 옮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페이퍼컴퍼니가 만들어진 시점이 ‘전두환 비자금’ 수사로 인해 동생이 구속되고 어머니와 외삼촌이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라는 점에서, 아버지 비자금을 숨길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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