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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재벌가 2·3세들은 대마초 인심도 후했다

by 아나코스 2015. 8. 31.

미군 상병 군사우편에 숨겨와…피의자 11명 중 9명 미국 유학파 


안성모 기자 | 승인 2013.07.11(목) 18:00|1238호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재벌가 대마초 파문’은 오산 공군 기지에 근무하는 한 미군의 행낭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9월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미국에서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편으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수취인은 오산 미 공군 소속 M 상병(23). 발신인은 불명이었다.

미국에서 군사우편으로 보낸 상자 속에는 커피 원두 여섯 봉지가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봉지를 뜯어 커피 원두를 걷어내자 안쪽에서 예상치 못한 물건이 나왔다. 진공 상태로 비닐 포장을 한 대마가 봉지마다 한 뭉치씩 들어 있었던 것이다.

6등분으로 나뉘어 있던 대마를 전부 합치니 944g이 넘었다. 혼자서 몰래 피우려고 들여온 것으로 보기에는 양이 많았다. 인천지방검찰청(인천지검)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M 상병은 주한미군으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대상자다. 미군이 이 점을 걸고넘어지면 수사에 난항이 예상됐다. 검찰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주한미군에 의한 마약류 밀수 범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우리 쪽에서 수사권과 재판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수를 쳤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렸다. 마약 범죄에 대해 유난히 엄격한 미국의 특성 때문이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마약 매매를 통해 불법 자금이 형성되고, 이 돈이 테러 조직으로 넘어간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군 관계자에 대한 조사에 협조가 잘 이뤄졌다. 소극적이거나 발뺌하는 모습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올 1월10일 구속 기소된 M 상병은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6월이 선고됐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시사저널 전영기

재벌 총수 아들·손자 등이 대마초 구입

검찰은 미군측과의 긴밀한 공조에도 발 빠르게 나섰다. 사건 발생 직후 미 공군 특수수사대(OSI)를 통해 M 상병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하고 SNS 계정을 분석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냈다. 영내에 거주하는 미군 신분이기 때문에 만일에 발생할 수 있는 증거 인멸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M 상병을 본격적으로 조사하면서 새로운 인물들이 하나 둘씩 수사 선상에 올랐다. 우선 대마를 한국으로 들여온 주범이 한국계 미국인 C씨(25)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미군을 통해 대마를 국내로 밀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C씨가 원래 알고 지낸 미군 병사가 본국으로 복귀하면서 소개시켜주고 간 동료가 M 상병이었다고 한다. 미군측에서 본국으로 돌아간 이 군인도 수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되는 부분은 C씨가 2011년 7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대마를 판매한 대상이다. 검찰이 파악한 바로는 이 기간 동안 C씨는 12차례 대마를 판매했는데 대마를 산 이들은 재벌가 2·3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서 범현대가 3세인 정 아무개씨(28)는 C씨 이외에 한 교회 목사의 아들(27)에게서도 대마를 산 것으로 조사됐다. 고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인 그는 10차례나 대마를 사서 피운 혐의로 5월24일 구속 기소됐다. C씨로부터 대마를 산 것으로 지목된 또 다른 한 명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차남 김 아무개씨(27)였다. 검찰은 해외에 체류 중인 김씨를 6월20일 지명수배했다.

대마초 수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씨의 또래인 지인 세 명도 함께 대마초를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 체류 중인 이들 역시 지명수배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한 유명 출판업체 대표의 장남인 우 아무개씨(33)는 목사 아들에게서 두 차례 대마를 사는가 하면, 한 병원의 원장 아들(30)이 가져온 대마초를 함께 피운 것으로 조사됐다. 재벌가 정씨와 출판가 우씨는 2010년 함께 공연기획사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직원(38)도 정씨, 우씨 등과 함께 세 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주한 미군 상병의 우편물에서 대마가 발견되면서 시작된 수사는 유력 재벌가와 출판업체 대표, 목사, 병원장 등 사회 지도층 자제들로 확대됐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 가운데 미군인 M 상병을 제외한 11명 중 9명이 미국 유학파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유학 중이거나 유학을 다녀온 이들이다.

인천지검 관계자는 “부유층 자녀로만 한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유학생들이 마약을 접하기 쉬운 환경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단 한번 시작하게 되면 그동안 경계해오던 댐이 일순간 무너진다. 그 다음부터는 죄의식을 갖기보다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들 사이에서는 담배 인심 쓰듯 대마초 인심도 후했다고 한다. 돈을 주고받으며 대마를 매매한다기보다 공유 차원에서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받은 이들은 대부분 관련 혐의를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유력 집안의 자제들의 경우 사회적으로 파장이 크기 때문에 개인 차원을 넘어 집안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만큼 더욱 조심스러워한다고 한다. 문제는 적발되기 이전이다. 30여 년 동안 마약 수사를 해온 검찰 관계자는 “나이가 어려서부터 유학을 많이 가는데 이때는 아무래도 문제의식이 덜하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대마 파티가 열릴 정도로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 한국의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듯 미국의 학교에서는 마약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때 한번 중독이 되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끊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에 국제 마약 조직 몰린다


인천지방검찰청과 인천본부세관 합동 수사반은 올해 들어서만 수십억~수백억 원어치에 이르는 필로폰을 제조·운반한 마약 조직 두 곳을 적발해 대대적인 검거 작업을 펼쳤다. 지난 5월 마카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필로폰 6.24㎏을 밀반입한 후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밀반출을 시도한 일본인 두 명을 검거했다. 이 중 한 명은 일본 야쿠자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확인됐다. 6.24㎏의 필로폰은 20만8000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금액으로 따지면 208억원어치에 이른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에는 인천에 제조 공장을 두고 필로폰 7~10㎏을 호주로 밀수출한 국제 마약 조직의 운반책을 검거하고 제조 장비를 압수하기도 했다.

인천은 지금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인천지검의 마약 압류량은 전국 마약 압류량의 65%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 1~5월 인천 지역의 필로폰 압류량만 12.752㎏으로 지난해 전체 압류량 12.573㎏을 이미 넘어섰다. 인천 지역에 마약 사건이 많은 이유는 세계 1등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을 경유해 일본이나 미국으로 밀반출되는 마약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이용자가 많다 보니 전수조사가 사실상 어렵다. 세관 업무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통관 시간도 다른 공항에 비해 짧다. 공항 이용객에게는 최대 장점이지만 마약 조직에게는 허점으로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경우 일본이나 미국 공항에서 검색이 덜하다. 중국이나 나이지리아에서 출발한 비행기의 경우 검색이 강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점을 노린 마약 조직들이 인천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천지검과 세관의 공조 수사 시스템이 잘 갖춰지면서 검거율도 그만큼 올라가고 있다. 세관에서 마약 의심 사범을 적발하면 검찰 수사관이 곧바로 투입되는 원스톱 수사 시스템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에 파견 나가 있는 마약 수사관은 15명에 이른다. 국제적인 공조 시스템도 잘 구축되고 있다. 몇 달 전 필리핀으로 달아난 마약 사범이 7월2일 현지에서 검거됐는데 아시아태평양마약정보조정센터(APICC)의 역할이 컸다. 마약 사범이 해외로 도주하면 해당 국가의 마약청에 공문을 보내고, 신병을 확보했다는 연락이 오면 수사관을 보내 국내로 송환하면 된다.

 

 

“유학 생활 적응 못 해 끼리끼리 마약 유혹에 빠져”

정진기 인천지검 강력부장 인터뷰

 

 

ⓒ 시사저널 전영기

이번 대마초 사건의 경우 어떻게 수사가 시작됐나.

한 주한미군에게 온 소포에서 944g이나 되는 대마가 나왔다. 그래서 미 공군 특수수사대와 공조 수사를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공범 관계를 파악했다. 실제 소포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계 미국인을 체포했는데, 그렇게 수사를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까 재벌가 자제들에게까지 확대됐다.

미군이 포함돼서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

SOFA 대상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수사권과 재판권을 주장했다. 그래서 구속 기소도 했고 재판도 국내에서 받고 있다. 마약 범죄의 경우 국제적으로 공조가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6월26일 제주에서 개최된 제23차 마약퇴치국제협력회의(ADLOMICO)에 30여 개 국가가 참가했다. 대검찰청에서 매년 주관하는 행사인데, 마약 범죄의 심각성에 인식을 같이하고 연대를 통해 마약 퇴치에 나서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한국이 세계 마약 유통의 경유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경유지로 활용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아직도 마약 청정 국가다. 물론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 마약에 대한 통제가 잘 되고 있다. 그래서 다른 국가에서 한국을 마약과 연관 짓지를 않는다. 이런 점을 악용해 한국을 경유해 마약을 운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소비되는 마약은 대부분 우편물을 통해 들어온다.

우편물의 경우 세관에서 마약을 잡아내기가 더 어렵지 않나.

세관에서 최대한 걸러내고 있다. 하지만 우편으로 오는 마약은 아주 소량인 데다 인터넷을 통한 해외 물품 구매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하루 수십만 건에 이르다 보니 100% 다 잡아내기는 힘들다.

이번 사건의 경우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켜 있는데.

다 지인들이다. 심지어 회사 직원도 있다. 이들에게는 자기들만의 공간이 있다. 마약 사범을 잡기 힘든 게, 공개된 장소가 아닌 그들만의 장소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마초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도 있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고 술보다 타인에게 피해를 덜 주는데 꼭 규제를 해야 하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마약 입문 단계가 대마초라고 보면 된다. 대마초를 피우다 보면 점점 더 강한 것을 원하게 되고 결국 필로폰이나 헤로인 등을 찾게 된다. 대마초에서 시작해 다른 마약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해외 유학생들이 마약류에 많이 노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학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끼리끼리 모여 마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녀를 유학 보내는 부모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국내에도 마약의 유혹을 받는 환경이 존재한다. 문제의 심각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결국 처벌을 받을 때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한다. 그 전에 스스로의 힘으로 끊기가 쉽지 않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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