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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이창석 2000억 재산 뒤에 전두환 있다

by 아나코스 2015. 8. 31.

수박 농사 짓다 매형 집권 후 승승장구

현금·부동산·별장 등 소유 


안성모 기자 | 승인 2013.07.04(목) 21:15|1237호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10년으로 늘리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하는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6월27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로 예정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 시효는 2020년 10월까지 연장된다. 이제 시간은 넉넉하다. 남은 과제는 추징할 돈을 찾는 일이다.

전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은 1672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1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의 재산을 추적해온 만큼 국내에서 ‘전두환’ 이름으로 된 재산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그의 가족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들에게 숨겨둔 비자금을 찾아내야 한다.

 

왼쪽부터 전두환 전 대통령, 장남 전재국, 처남 이창석, 부인 이순자, 차남 전재용, 삼남 전재만 씨. ⓒ 시사저널 임준선 ⓒ 연합뉴스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바로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다. 이순자씨의 막내 동생인 그는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관리해온 ‘금고지기’로 의심받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혐의가 짙다. 먼저 이씨의 재산 규모다. “재산이 29만원”이라던 매형과 달리 그의 재산은 화수분처럼 마를 줄 모른다. 직접 벌었거나 상속받은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액의 재산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차명으로 관리해온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다음으로 전두환 일가 안에서 이씨가 맡고 있는 역할이다.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것은 ‘후견인’을 자처한 그의 도움 때문이라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규모 땅을 헐값에 넘기거나 아예 증여를 하는가 하면, 거액의 사업 자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빌려주고 있다. ‘돈 많은 외삼촌’의 배려로 보기에 씀씀이가 너무 크다. 일종의 재산 상속 형태로 전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시사저널>은 ‘전두환 비자금’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이창석씨의 재산 형성 과정과 규모 그리고 유별난 그의 조카 챙기기 실태를 집중 추적했다.

 

 

전두환 집권 후 사업가로 변신

이창석씨는 육군 장성 출신인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장의 1남3녀 중 막내다. 장녀인 이순자씨는 집안의 대를 이을 남동생 이씨를 끔찍이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매형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이씨의 이력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중동고와 광운공대 전자과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취업을 하지 않고 경기도 화성에 있던 아버지 농장에서 나무 관리와 수박 농사를 하며 2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박재홍씨가 경영하는 동양철관에 동력기사로 취직했다.

그런 이씨가 매형이 권력을 잡은 후부터 날개를 달았다. 전두환 정권에서 그는 온갖 특혜 의혹을 받았다. 1983년 3월 이씨는 동양철관 부사장에 올랐다. 과장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데 불과 4년밖에 안 걸렸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1983년 철강회사 ‘동일’을 설립해 직접 경영에 나섰다. 당시 이씨에게는 회사를 세울 만한 돈이 없었다. 그는 “1984년 말까지 소득이 약 4억원 정도 있었다”고 밝혔다. 고 박태준 명예회장이 이끌던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물심양면 돕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 자본금 20억원 가운데 포항제철장학회와 동양철관이 41%씩 출자했고 이씨의 지분은 10%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회사 운영권은 그에게 있었다. 사업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포항제철에서 재료를 공급받아 완제품을 만든 뒤 다시 포항제철에 납품하면 되는 일이었다. 1985년 매출액이 519억원에 이를 정도로 알짜배기 회사였다.

하지만 욕심이 화를 불렀다. 1986년 동일은 포항제철장학회로 넘어갔는데, 그 이유는 이씨가 경영권뿐만 아니라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삼키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박재홍씨로부터 동양철관이 보유하는 지분 41%를 비밀리에 사들여 50%가 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이러한 사실이 주주총회에서 발각돼 논란이 일자 이씨는 자신의 지분을 모두 넘기고 회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렇다고 이씨가 손해를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몫 단단히 챙겼다. 박재홍씨에게 주식을 액면가로 산 뒤 포항제철장학회에 넘길 때는 시가로 팔아 엄청난 차액을 남긴 것이다. 그는 “액면가의 2.8배를 더 받아 42억여 원에 넘겼다”고 밝혔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박씨는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지분을 이씨에게 넘긴 것이다. 동일은 이후 경안실업으로 이름을 바꾼 후 합병 과정을 거쳐 현재 포스코피앤에스(전 포스틸)가 됐다.

 

금융실명제 실시 전후 뭉칫돈 실명 전환 의혹

동일을 매각한 후에도 이씨는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같은 해 11월 자신과 아들 이름을 딴 창원강업을 설립했다. 이번에도 포항제철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아 생산한 제품을 자동차용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업체에 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자금 압박과 특혜 시비에 시달리자 1988년 부산파이프에 회사를 팔았다. 철강업계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그의 질주는 여기까지였다. 5공화국의 퇴장과 함께 이씨의 전성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때 그의 나이 37세였다. 이후 이씨는 5공 비리 수사 대상에 올라 4년여 간 법정을 오가는 신세가 됐다.

이씨의 이러한 경력만 놓고 본다면 큰 재산을 모으지는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권력을 등에 업고 재벌을 꿈꿨겠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사업가가 되고 말았다. 전 전 대통령이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자 그는 무대 뒤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씨가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5년에 시작된 검찰의 12·12 및 5·18 수사에서 ‘전두환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핵심 인물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86~87년 사이 50대 재벌에게 50~100억원씩을 할당해 거두는 방식으로 최소한 3000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으로 봤다. 문제는 차명으로 관리됐을 이 돈의 행방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검찰은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실시되기 전후에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돈이 이씨 명의로 실명 전환된 혐의를 잡고 그를 극비리에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상당액이 서울과 경기 일대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쓰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렇다면 이씨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현재로서는 그의 재산 규모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드러난 재산만 해도 엄청나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의 괴자금 167억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던 2004년, 검찰은 재용씨뿐 아니라 이씨의 재산도 들여다봤다. 당시 검찰은 이씨의 재산을 1000억원대로 파악하고, 여기에 전 전 대통령 비자금이 유입됐는지를 살폈다. 실제 이씨 명의의 한 증권사 계좌를 추적한 결과 10억원어치 채권 매입 자금이 전 전 대통령이 관리하던 자금으로 확인됐다. 이 계좌에는 30억원 상당의 ‘묻지 마 채권’도 들어 있었다. 10년 전 검찰이 파악한 재산이 1000억원대라면 지금은 이보다 두세 배는 더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시사저널>이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씨는 수도권에 있는 부동산만도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에 대규모 주거단지 건설이 추진되자 상당 규모의 땅을 팔았다. 그는 2010년 12월 27만375㎡(8만1788평)와 22만2750㎡(6만7382평) 땅 두 필지를 부동산 개발업체에 넘겼다. 판매 금액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4년 전인 2006년 12월 인근 95만㎡(28만7375평) 땅 절반을 건설업자 박 아무개씨에게 500억원을 받고 판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더라도 두 번의 매매 금액이 1000억원 규모를 넘어선다.

이씨가 소유한 양산동 땅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1만4019㎡(6만4741평) 규모의 한 곳은 2006년 12월 자신의 아들에게 증여했다. 이에 앞서 도로와 인접한 5080㎡(1537평) 규모의 한 곳은 2002년 7월 ㈜태평양에 팔았다. 주목되는 부분은 2006년 12월 건설업자 박씨에게 절반을 팔고 남은 나머지 절반의 땅은 전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재용씨에게 28억원에 넘겼다는 점이다. 재용씨 가족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부동산 개발회사 비엘에셋은 이 땅을 다른 절반의 땅을 산 건설업자 박씨와 400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씨가 자신 소유의 땅을 헐값에 넘겨 재용씨가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게 한 셈이다. 땅의 실소유주가 전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씨는 또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일대에 대규모 땅을 갖고 있었다. 이 일대 역시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던 곳이다. 그런데 이씨가 2006년 12월 2만6876㎡(8130평)에 이르는 임야를 전 전 대통령의 딸 효선씨에게 증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시세로 따지면 40억원에 이르는 땅을 자식이 아닌 조카에게 증여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씨가 매입한 인근 땅 1567㎡(464평)와 1469.5㎡(445평)의 경우 2004년 6월 임 아무개씨에게 팔았다.

효선씨는 이 땅 위에 지어진 77.39㎡(23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3700만원을 주고 매입해 주소지를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직전 주소지인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빌라는 그대로 갖고 있다. 이 빌라는 효선씨가 2010년 12월 7억4000만원을 주고 샀다. 그런데 이 빌라를 판 이 아무개씨도 2007년 5월 7억4000만원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 가격 그대로 매도한 그는 이창석씨의 아들이었다. 현 시세가 20억원 가까이 된다는 이 빌라 역시 이씨가 조카에게 증여하다시피 한 셈이다.

이씨가 한창 잘나가던 5공화국 시절 창원강업 등 그의 회사가 들어서 있어 창원빌딩으로 불렸던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빌딩은 우여곡절 끝에 1995년 3월 성광의료재단이 매입했다. 이 재단은 여성병원으로 유명한 차병원의 의료법인이다. 당초 1988년 이씨 회사가 문을 닫게 되자 포항제철 고위 인사가 한 건설사 대표에게 11억원을 주면서 이 빌딩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주장이 불거져 나와 논란이 됐다. 포항제철이 끝까지 이씨의 뒤를 봐주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대관령과 서귀포에도 최고급 별장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용산리에 있는 콘도와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에 위치한 타운하우스는 이씨와 부인 홍정녀씨 공동 명의로 보유하고 있다. 강원도 콘도는 2006년 12월, 제주도 타운하우스는 2007년 7월에 각각 매입했다. 두 곳 모두 최고급 별장이다.

이씨가 관여하고 있는 회사에 투입된 자금도 적지 않다. 유한회사 에스더블유디씨에서는 이씨가 대표이사, 부인 홍씨가 감사를 맡고 있다. 재용씨 부부도 이사로 등재돼 있다. 이 회사는 2004년 1월 한 골프클럽 회원권 119억원어치를 사들이면서 만든 회사다. 당시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가 한창일 때다. 재용씨는 이때 구속까지 됐다. 이런 시기에 거금을 들여 회원권을 사들인 데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씨는 재용씨 가족 회사인 비엘에셋에 거액의 돈을 대주고 있다. 단기 차입금이 161억4000만원이며 미지급 비용이 20억2000만원이나 된다. 자산 총계가 425억7000만원인 비엘에셋은 부채 총계가 무려 587억4000만원에 이른다. 매출액이 10억6000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경영 실적은 바닥이다. 그런데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외삼촌인 이씨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에스더블유디씨도 단기 차입금이 43억2000만원이며 미지급 비용이 6억8000만원에 이른다. 음향기기 판매 회사인 삼원코리아도 이씨와 홍씨 부부가 대표이사와 감사를 각각 맡고 있는 회사다. 재용씨도 2012년 2월부터 대표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 자본금은 13억원이다. 세 회사는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빌딩의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씨는 이러한 거액의 재산을 어떻게 형성한 것일까. 그는 새로운 재산이 드러날 때마다 2001년에 작고한 아버지 이규동 전 회장을 거론하곤 했다. ‘재테크의 달인’이던 아버지로부터 나온 재산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04년 재용씨에게 징역 2년6월에 벌금 33억원 실형을 선고하면서 제시한 근거가 의미심장하다. 재판부는 “검찰은 이규동씨가 167억원을 외손자인 재용씨에게 증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이씨가 이창석씨 등 자녀들에게 33억원만을 물려줬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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