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뱃길·서울항·오페라하우스 등 ‘한강 르네상스’ 사업, 없던 일로
[1223호] 2013.03.28 19:58:50(월) 안성모 기자
서울시가 3월14일 <2012 서울100서>를 출간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시가 추진한 다양한 정책 중 100가지를 선정해 수록한 백서다. 화이트데이(white day)에 맞춰 백서(white paper)를 선보인 것이 이채롭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태와 방식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종 도표와 인포그래픽을 활용해 내용이 한눈에 쏙 들어오도록 했다. 재생 종이를 사용한 것도 눈에 띈다. 박 시장은 “작은 것 하나라도 섬세하게 고려해 배려하는 것을 정밀 행정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반포대교 남단 한강에 만들어진 인공 섬 세빛둥둥섬. ⓒ 시사저널 전영기
애물단지 ‘세빛둥둥섬’ 놓고 오-박 책임 공방
백서에는 ‘희망 온돌 프로젝트’라는 맞춤형 복지 정책부터 ‘주민 참여 예산 제도’라는 행정 혁신 방안까지 여러 사업이 망라돼 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이나 한강 르네상스와 같은 이른바 대형 사업은 찾기가 어렵다.
전임 서울시장들은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초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기념비적인 성과를 올리려고 애썼다.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 복원을 발판으로 삼아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 오세훈 전 시장은 한강을 연계한 개발 사업에 매진하며 대권 도전의 기회를 엿봤다.
결과적으로 이 전 시장은 꿈을 이룬 반면, 오 전 시장은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도 못한 채 중도 하차했다. 오 전 시장이 역점을 두었던 사업은 박 시장이 취임한 이후 대부분 혈세 낭비라는 비판을 받으며 중단되거나 변경됐다.
공사가 중단됐던 양화대교 모습. ⓒ 연합뉴스
오 전 시장이 공들인 대표적 사업이 바로 서해뱃길 사업이다. 오 전 시장은 서울을 수변 도시로 만들어 동북아의 수상 관광 중심지로 자리 잡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2007년 7월 ‘한강 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며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2011년 6월 감사원 감사 결과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고, 서울시의회와 대한교통학회도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오 전 시장에서 박 시장으로 수장이 바뀐 서울시는 지난해 7월24일 사업 중단 결정을 내렸다.
서해뱃길 사업과 함께 한강 르네상스의 역점 사업으로 꼽히는 서울항 조성도 중단됐다. 당초 계획은 여의도와 용산에 여객선을 정박시킨다는 것이었다. 5층 규모에 150개의 방과 편의시설을 둔 수상 호텔을 짓고, 6000톤급 국제선과 3000톤급 국내선이 입항할 수 있도록 항구를 조성할 예정이었다. 총 사업비는 1373억원으로 민간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 자체가 중단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서해뱃길 사업이 좌초되면서 이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양화대교 구조 개선 공사는 투자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게 됐다. 대형 선박이 자유롭게 한강을 운행할 수 있도록 기둥과 기둥 사이 폭을 35~42m에서 112m로 확장시키는 공사로, 2010년 2월22일 공사에 착수한 후 공사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2년 8개월 동안 ‘ㄷ’자로 구부러진 가설 교량을 이용해 차량이 우회 통행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 와서야 직선 형태로 개통했는데 그동안 들인 공사비가 총 490억원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섬 세빛둥둥섬은 서울시의 대표적인 부실 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반포 한강공원 남단 서래섬과 잠수교 사이에 세 개의 섬을 만드는 공사로 2009년 9월30일 착공에 들어가 2011년 5월21일 전망 공간을 개장했다. 곧이어 9월30일 사업 시설 준공도 마쳤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8월까지 이 섬을 방문한 인원은 8만명에 불과하다. 안전 문제로 비가 많이 올 때는 이용이 제한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 사업과 관련해 오 전 시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 전 시장측은 사업 실패가 현 시장인 박 시장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빛둥둥섬을 애물단지로 몰아가 개장을 지연시킨 것은 박 시장의 정치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일부러 지연시킬 이유는 없다”고 반박하며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시장 시절 추진한 총 6735억원 규모의 ‘한강예술섬 프로젝트’의 일환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도 오 전 시장 때 본격화됐다. 부지 확보와 설계 용역 등으로 투입된 비용이 55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박 시장이 취임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2012년 예산에 사업비가 반영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노들섬에 시민들을 위한 도시 농업공원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 때의 오페라하우스가 박 시장 체제에 들어 농업공원으로 바뀐 것이다.
용산 개발에 대한 해석도 서로 달라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도 오 전 시장이 역점을 둔 한강 르네상스와 맞물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용산 차량기지 부지만 개발하기로 했다가 2007년 8월 서부이촌동을 포함하는 통합 개발로 바뀐 이유가 용산 개발을 한강 르네상스와 연계시키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판이 커진 배경에 오 전 시장의 야심이 배여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0년 9월 커질 대로 커진 사업 규모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대표 주관사 삼성물산이 발을 빼면서 사업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자금 조달 문제로 내부 갈등이 계속됐고 시간이 지날수록 빚만 늘어나면서 결국 두 손을 든 상태다.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이라던 용산 개발이 단군 이래 최악의 사업이 될 지경에 놓인 셈이다.
서울시는 용산 개발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반을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당장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박 시장은 “답이 잘 안 나오는 문제”라며 “서울시의 손을 이미 넘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사업이 ‘되는 쪽’과 ‘안 되는 쪽’을 다 준비해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사업이 생각했던 대로 추진이 안 될 경우 어떻게 해야 주민들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도시 재생을 통해 주택과 상가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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