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값 2000원 인상 추진’ 향한 어느 애연가의 항변
[1222호] 2013.03.21 18:05:22(월) 안성모 기자
서울시 성북구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40)는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애연가다. 대학에 입학한 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담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주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는 하루 두 갑씩 피워 ‘골초’라는 소리도 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일라치면 습관처럼 담배를 입에 물었다. 5년 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게 문을 열면서 흡연 양을 많이 줄였다. 하지만 담배를 완전히 끊지는 않았다. 그는 “담배를 그만 피울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담배 한 모금이 주는 마음의 평안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편의점에 진열된 담배. 국산 담배 진열대에 적혀 있는 ‘변함 없는 가격 2,500원 그대로!’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흡연자=공공의 적’ 내몰아 불쾌
요즘 들어 이씨의 마음이 편치 않다. 주변에서 ‘금연’ 권유가 부쩍 늘어났는데, 이런 분위기를 틈타 담뱃값을 인상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영 못마땅해서다. 물론 담뱃값을 올린다는 이야기가 어제오늘 나온 것은 아니다. 2005년 마지막으로 담뱃값을 올린 이후 지난 8년간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담뱃값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이 힘을 실어주지 않아 마지막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내 흡연 인구는 1000만명 정도로 파악되는데 성인 남자의 경우 두 명 중 한 명이 담배를 피운다. 이들은 모두 투표권을 지닌 유권자다. 국민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권에서 담뱃값 인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겨졌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심상치 않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김 의원은 3월6일 담뱃값을 2500원에서 2000원 올려 4500원으로 인상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는 “흡연으로 인한 피해 금액이 연간 10조원에 달하고, 사망자 수도 연간 3만명에 이를 정도로 피해가 심각하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강력한 금연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담뱃값 인상의 주요 근거로 제시되었던 내용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정부·여당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주무 부처의 수장인 진영 보건복지부장관과 법안을 발의한 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실세다.
이씨에게는 담뱃값 인상 이유로 ‘국민 건강’을 내세우는 것부터가 불만거리다. 흡연자를 건강한 사회를 해치는 ‘공공의 적’으로 내모는 것 같아 불쾌하다. 그는 “이런 인식을 심으며 찔끔찔끔 가격을 올릴 것이 아니라 아예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고 담배를 안 팔면 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정부가 담뱃값 인상에 목을 매는 이유는 박 대통령이 공약한 복지 정책 재원 마련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고 의심한다. 벌써부터 담뱃값 인상이 성사될 경우 수조 원의 증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저소득층 많은 지역, 흡연율도 높아
이씨는 유해 여부를 떠나 그동안 담배가 ‘서민의 친구’로 자리매김해온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배의 주 고객인 흡연자의 경우, 고소득층보다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에 더 많다는 것이다. 실제 <시사저널>이 ‘2011년 지역 건강 통계’ 중 서울시 각 자치구 보건소에서 올린 현재 흡연율 조사를 분석한 결과,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이 고소득층이 많은 지역보다 흡연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북·성북·은평·종로·중구 등 강북 지역의 흡연율이 높은 반면, ‘강남 5구’로 불리는 강남·서초·송파·강동·양천구 등은 낮았다. 가장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격차는 8.5%포인트나 됐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이 더 내는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해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정책을 펼치는 이상한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는 셈이다.
스스로 서민이라고 말하는 이씨도 담뱃값이 오르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하루에 한 갑 피우는 그의 한 달 담뱃값은 대략 7만5000원이다.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한 달 담뱃값은 13만5000원으로 껑충 뛴다. 불경기가 계속 이어지면서 한 달 수익이 200만원 정도로 떨어진 이씨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다. 예전처럼 하루 두 갑을 피운다면 한 달 담배값으로만 27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전체 수익의 10%가 넘는 액수다.
담뱃값 인상이 어느 정도 금연 효과를 가져다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인상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담뱃값을 7000원으로 올리면 2020년까지 남성 흡연율이 27%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성인 남자의 흡연율은 47%에 이른다.
특히 가격이 오르면 저소득층은 비싸서 덜 피우게 되고 고소득층은 계속 피울 것이기 때문에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담뱃값 인상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금연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3월12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아이러브스모킹’ 회원들이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1000~2000원 올린다고 담배 끊겠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가격을 올려서 흡연율을 낮추겠다는 발상 자체에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담뱃값을 올린 직후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라는 설명이다. 담뱃값을 올렸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선진국의 경우 인상 이후 2년 내 흡연율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국내에서도 담뱃값을 올리기 전인 2005년 9월과 담뱃값을 올린 후인 2006년 12월 흡연율 차이는 5.5%였다. 이는 매년 자연적으로 감소하는 비율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씨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1000~2000원 정도 올린다고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며 “사기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닌 가격 인상 폭이 절묘하다”고 말했다.
가격이 대폭 오를 경우 담배의 불법 거래를 자극해 ‘밀수 담배’나 ‘짝퉁 담배’가 범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도 2010년 한 해에 71건, 113억원어치의 ‘밀수 담배’가 적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제대로 된 공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저질 상품인 ‘짝퉁 담배’의 경우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씨는 “중국 등지에서 담배를 밀수해 파는 쪽에서는 그만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짝퉁 담배’는 지금도 파는 곳이 있는데, 더 활개를 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담뱃값 인상이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비오 담배소비자협회 기획관리부장은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함께 공공요금이 차례로 인상되는 시점에서 담뱃값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라며 그 근거로 2011년 통계청 자료를 제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물가에 미치는 가중치에서 담배는 전체 조사 품목 481개 중 20번째로, 돼지고기(24위)·쌀(35위)·우유(38위)·빵(50위)보다 높았다. 최 부장은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가 물가를 올리는 정책을 추진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담배세, 어디에 얼마나 쓰이나
담뱃값에는 부가가치세(9.1%)·담배소비세(25.6%)·지방교육세(12.8%)·국민건강증진기금(14.2%)·폐기물부담금(0.3%) 등 5가지 세금 및 기금이 붙는다. 조세 부담률이 무려 62%에 이른다. 한 갑에 2500원 하는 담배를 사면 부가가치세 227.27원, 담배소비세 641원, 지방교육세 320.5원, 국민건강증진기금 357원, 폐기물부담금 7원 등 총 1549.8원을 세금 및 부담금으로 내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국민건강증진기금이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따르면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오를 경우 현재 357원인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1146원으로 약 3배가량 인상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법안과 함께 김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방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경우 담뱃값을 올리면서 인상된 제세부담금 중 절반만 지방세로 인상하고 나머지 절반은 건강증진부담으로 돌리도록 하고 있다. 현재는 담배에 부가되는 제세부담금의 62%가 지방세다. 결국 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은 지금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담뱃값 인상을 반대하는 측이 발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은 “현재 정부는 1조4000여 억원 규모의 국민건강증진기금 대부분을 국민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메우는 데 쓰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 실패를 왜 흡연자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따졌다. 담배 소비로 조성된 세금 및 기금은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 지원이나 간접흡연 방지를 위한 흡연실 조성 등 흡연자를 위한 정책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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