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 참여 묻자 ‘하하하’ 웃음만
“박근혜 대통령 ‘큰마음’ 가졌으면”
[1223호] 2013.03.28 19:58:50(월) 안성모·이규대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정을 맡은 지 1년 반 남짓 지났다. 오랫동안 ‘시민사회 대부’로 불려온 그가 가장 큰 자치단체인 서울시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기대가 큰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 성적은 우려보다 기대에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서울 시정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면서 박 시장에 대한 호감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박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는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비전과 철학을 충분히 반영하기에 부족하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한 발짝 더나가 박 시장을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 중 한 명으로 거론한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사람 망칠 이야기다. 그런 헛된 꿈을 좇다가 본연의 직무나 역할을 못 하게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또 다른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서울 노원병 재보선 도전과 관련해서는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안철수 신당’에 참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박 시장과의 인터뷰는 3월16일 오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열렸다. 인터뷰 다음 날 박 시장은 안 전 교수와 만났다.
ⓒ 시사저널 최준필
취임 후 서울시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시장이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그 다음 공무원이 있고, 그 다음 여러 산하 기관이 있고, 그 아래에 시민이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됐다. 시민이 제일 위에 있고, 가장 밑에 시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주인인 시민으로부터 끊임없이 정책 아이디어를 얻고, 시민이 직접 정책 입안 과정에 참여하고, 실천 과정에서는 시민과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행정으로 바뀌었다. 물론 나도 아이디어 및 철학을 갖고 추진하고 있지만, 시민의 참여가 없다면 굉장히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실천력을 담보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주도적인 참여와 열정이다. 이것을 활용하지 않고는 힘들다. 이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정을 펴면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이 시민의 참여라는 것인가?
내가 강조하는 분야들이 있다. 창조 산업, 일자리, 복지 등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도 시민과의 관계 속에서,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리 시장이 외치고 공무원이 예산을 배치하더라도 ‘사상누각’이라고 본다. 지금 많은 사업을 시민이 주도하고 있다. 복지 분야의 경우 ‘복지 모니터링단’ ‘1000인 원탁회의’ 등을 통해 복지의 기준선을 마련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발, 저항, 이견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실천력을 담보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지금 서울시의 정책은 대체로 이렇게 만들어지고 또 실천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장으로 남겠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는 않나?
왜 없겠나, 있다.(웃음) 그런데 종합적이고 체계적이고 생태적이며 지속 가능한 것을 안 보고 청계천 이런 것 하나만 본다. 서울은 지금 항공모함 전체가 진로를 ‘유턴’하는 상황이다. 조금 더 치밀하게 보면, 작은 이벤트나 건물 그리고 하드웨어 하나가 아니라 세상이 천지개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여러 가지 인프라 및 SOC 사업도 있을 수 있다. 처음부터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안 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서울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한다.
전임 시장의 사업에 대해 너무 박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 새로운 시장이 오면 새로운 비전이 생기니까. 과거의 진로를 수정하거나 사업을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속성과 연속성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서울시가 하는 수많은 사업은 기본적으로 이전 시장, 이전 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예컨대 지적되는 사업이 한강르네상스, 용산국제업무지구, 여의도 항구, 세빛둥둥섬 이런 건데, 많은 것이 내가 오기 전 오세훈 전 시장이 있을 때부터 감사원에서 수익 모델이 안 된다는 등의 평가를 받았다. 다 그랬던 일들이다. 내가 와서 일절 안 한다, 이런 것은 거의 없다.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짓는 것도 6000억원 이상 들어가는 것인데, 서울시가 그럴 여력이 없다. 20조원이 넘는 채무에 허덕거리면서 어떻게 수행한다는 것인가. 오 전 시장이 있었어도 못 하는 일들이었다. 이미 불가능해진 일은 불가능하게 할 수밖에 없다. 나머지 대부분은 연속성을 가지고 가는 것인데,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시민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들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드나?
긍정적인 이야기만 듣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목소리, 항의 등을 제대로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물론 비판이나 항의의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래서 인내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가장 많이 비판하는 쪽은 언론과 시의회이며, 일반 시민 중에도 ‘안티’라고 할 수 있는 반대파들이 있다. 언론은 어찌 보면 서울시의 ‘월급 안 주는 부서’라고 생각한다. 140명 넘는 기자가 상주해 우리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준다고 생각한다. 시의회도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건강한 비판이 상당히 많다. 반대자들 중에도 습관적이며 악의적인 사람을 제외하면 잘못된 점, 개선해야 할 점 등에 대한 의견이 다양한 소통 채널로 들려온다. ‘응답하는 정부’, 그에 앞서 ‘숙의하는 정부’가 중요하다. 그것은 ‘투명한 정부’하고 연결된다.
박 시장에 대해 ‘종북 세력’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
난 종북이 굉장히 좋은 것인 줄 알았다.(좌중 웃음) 그러면 1000만 서울시민이 다 ‘종북’이 되는 것이 아닌가. ‘종북’ 시장을 데리고 있는 것이니까. 그런 평가에는 응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 시사저널 최준필
야당 소속 단체장으로서 중앙 정부와 갈등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에 당선되는 순간, 나는 민주당 당원들만의 시장은 아니지 않나. 모든 시민의 시장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다. 서울이 대한민국 안에 있는 도시이지 일본이나 중국에 있는 도시인가. 서울이 잘 되면 중앙 정부도 잘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큰 어른이다. 집안의 부모 같은 입장이다. 우리는 자식 같은, 동생 같은 입장이다. 우리가 장사도 잘하고 식구도 번성시키고 잘살게 되면 중앙 정부 입장에서도 좋은 것 아닌가. 부모 입장에서 행복한 것 아닌가. 중앙 정부가 그렇게 생각해주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큰마음’이다. 서로 협력·상생하는 관계가 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야당 소속 자치단체장이라는 건 작은 고리다. 그보다 훨씬 더 큰 고리가 있다.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망칠 수는 없다.
얼마 전 재선 도전 의사를 밝혔는데.
좀 그렇게 되도록 해달라.(웃음)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판단이다. 시민들이 ‘저 시장이 한 번 정도 더 하면 서울시가 훨씬 변하고 우리 삶이 바뀌겠다’고 생각하면 내가 될 것이고, ‘저 시장 당선시켜줬더니 서울 다 망친다’고 생각하면 안 뽑힐 것이다. 지난번 선거를 경험해보니, 서울시장처럼 큰 선거는 본인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 역사와 시대가 만들어주는 것이지, 개인적 소망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정치권에서는 ‘정치인 박원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정치라는 게 양면이 있다. ‘큰일을 해 줬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함께 ‘다 한강에 가서 빠져죽어야 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존재한다. 시민의 삶을 알뜰하게 잘 챙기는 것이 최고의 정치라고 생각한다. 큰소리치고 큰 담론만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치밀하고 섬세하게 시민의 삶을 보살피는 사람이 정말 제대로 된 정치인이다. 서울시장으로서 1000만 시민의 안정과 번영, 자기실현, 행복 이런 것을 확실하게 신장시키는 것이 내 책임이다. 그것을 잘하면 훌륭한 정치인 아니겠나.
박 시장을 차세대 야권의 리더이자 대선 주자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사람 망칠 이야기다. 그런 헛된 꿈을 좇다간 자신에게 주어진 본연의 직무나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서울시장 자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큰 자리인가. 이것을 잘할 생각을 해야지, 뭘 엉뚱한 생각을 하나.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정치권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올 듯한데.
초심이 중요하다. 자기 본분,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주변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 들뜨는 것은, 공자님 말씀대로 하면 ‘군자’의 태도가 아니다. 태산같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 서울시민이 제게 요구하고 명령한 바는 ‘서울시를 제대로 발전시켜라, 우리들의 삶을 책임져달라’다. 이것이 얼마나 막중한 요구인가.
안철수 전 교수의 재보선 출마를 어떻게 생각하나.
안 전 교수가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 상당수가 새로운 정치를 원하니까 이를 잘 반영해 우리 정치의 현실이 바뀌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안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하면 박 시장을 가장 먼저 모셔가지 않을까.
그런 것까지 답변하면 너무 큰 선물을 드리는 일이라….(웃음)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와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노 대표측에서는 안 전 교수의 출마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잘 몰랐다. ‘잘 결정했다’고만 이야기 들었는데, 나중에 언론을 보니 잘 정리가 안 된 것 같더라. 노회찬 대표는 참 안타깝게 자리를 잃은 분이다. 안 전 교수도 우리 사회의 큰 자산이지만, 노 대표 또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인기 있는 정치인이다. 부디 정리가 잘 되면 좋겠다.
유시민 전 대표가 신간에서 박 시장과는 일을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밝힐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공무원들 사이에 불만이 쌓이지는 않나?
왜 그런 이야기를 해서.(웃음) 유 전 대표의 동생인 유시주씨가 예전에 희망제작소 소장을 2년 동안 맡았다. 거기서 전해들은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일했던 여러 단체의 직원들은 상반된 감정을 갖고 있다. 일을 많이 해서 고통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을 것이다. 지난번 아름다운 재단에서 내게 ‘괘씸상’을 주었다. 왜 떠난 후 자주 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마 서울시 공무원들도 내가 떠나고 나면 ‘조금 더 하시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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