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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제

살얼음 공기업들 ‘진드기 로비’가 기가 막혀

by 아나코스 2015. 3. 29.

국회의원 이어 리서치업체에도 끊임없이 발길

공공기관 고객 만족도 조사 ‘눈도장’ 찍기 안간힘  
 
 [991호] 2008년 10월 15일 (수)  안성모 asm@sisapress.com  
 

 

ⓒ그림 최익견

 
국내 유력 리서치업체의 간부로 있는 A씨는 최근 대학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자리를 함께했다가 몇 마디 이야기도 못 나누고 헤어졌다. 그 선배가 다니는 직장이 새 정부 들어 구조 조정 대상으로 거론되어온 공기업이었기 때문이다.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평가 조사를 맡고 있는 상황이라 혹여 청탁이나 로비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 의례적인 인사만 나누고 얼른 자리를 떴다.

통폐합 등 구조 조정을 앞두고 있는 공기업들이 국회에 이어 리서치업계에도 눈도장 찍기가 바쁘다. 관련 정보를 얻는 한편 회사 사정을 이해시키기 위해 학연·지연 등을 앞세워 업계 관계자들과 만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리서치업체 연구원은 “전화가 몇 차례 오기에 만나기 힘들다고 했더니 직접 사무실로 찾아왔더라. 문전박대하기도 그래서 잠깐 만났지만 평가와 관련해서는 일절 이야기가 없었다”라고 밝혔다.

새 정부 들어 공기업은 개혁 대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정부의 이른바 ‘공기업 선진화’ 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다 보니 공기업 입장에서는 구조 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를 예의주시하는 한편 조정 폭을 좁히는 데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대로 형성된 정보 자체를 얻기가 쉽지 않아 해당 공기업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 리서치업체 대표는 “최근 공기업들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도대체 어디에다 로비를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맨다는 것이다. 번지수가 헷갈려 힘들어하는 분위기이다”라고 전했다.

국회에서는 한바탕 ‘로비 논란’이 일었다. 통폐합을 앞두고 있는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국회의원을 상대로 조직적인 로비를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학연·지연 앞세워 업계 관계자들과 만남 시도

국토해양위원회 소속인 최욱철 의원은 토지공사 내부 자료를 입수해 “공기업 선진화를 둘러싸고 주택공사와 통합 문제 등 공사 현안 문제 해결을 위해 국토해양위 소속 국회의원별로 담당 부서를 정해 집단 로비를 시도했다”라고 주장했다.

최의원이 입수한 문건에는 ‘국토해양위원 중 ○○○ 의원을 △△ 부서에서 밀착 관리하기로 결정되어 아래와 같이 1차 후원을 진행한다’라며 ‘후원금 입금 뒤 첨부 후원자 명단을 작성해 XXX로 보내라’라고 되어 있다. 최의원은 “통합의 대상이 되는 특정 기관이 국회에 대해 조직적인 로비를 시도한 것은 공기업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이다”라고 비판했다.

공기업이 국회에 이어 리서치업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정부가 매년 시행하는 ‘공공기관 고객 만족도 조사’의 실사를 리서치업체에서 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조사 결과는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구조 조정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측면에서 공기업으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셈이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고객 만족도 조사는 기획재정부에서 기본 계획을 잡으며, 공기업 및 준 정부 기관에 해당하는 100여 개 기관을 직접 관리한다. 그 외의 공공기관은 지식경제부, 문화체육부, 교육과학부 등 해당 부처별로 관리해 조사가 진행된다. 기획재정부와 각 부처는 먼저 주간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한국능률협회컨설팅, 한국생산성본부, 한국표준협회 등이 참여한다. 현재는 서울대와 함께 조사 모델을 만든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어 실사 업체를 공모하게 되는데, 여기에 많은 리서치업체들이 참여한다. 이들 업체는 주로 자료 수집과 데이터 처리 등 가장 기초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주간 사업자는 보고서 작성 및 컨설팅을 하게 된다. 조사는 일부 기관을 제외하고는 결과를 비교해볼 수 있도록 통합되어 진행된다. 본격적인 조사와 분석은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6개월여 간 진행되며, 내년 5월께 결과가 외부로 발표된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고객 서비스 개선을 위한 기초 자료로 활용되는 한편, 경영 평가에도 반영이 된다.

 

조사 결과 바꾸기 힘든 것 알면서도 ‘무한 도전’

이처럼 통합 조사로 진행되어 조사 대상 간 우열을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 조정을 앞두고 있는 공기업으로서는 조사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인 조사를 맡고 있는 리서치업체에 접촉을 시도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로 인해 이미 한 차례 말썽이 불거지기도 했다. 2007년도 조사에서 점수가 상식 이상으로 높게 나온 특정 기관에 대한 재조사가 펼쳐진 것이다. 해당 리서치업체와 관련된 의혹도 제기되어 이 업체도 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리서치업체와 조사 대상인 공기업 간에 서로 ‘조심하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 리서치업체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키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와 직원의 사활이 걸려 있는 상황이다 보니 리서치업체를 접촉하려는 일부 공기업의 행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물론 리서치업체 내에서는 평가 대상 임직원과는 일체 만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학연·지연 등 인맥을 동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리서치업체 관계자는 “아는 사람을 통해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거절하기도 그렇고 상당히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로비를 한다고 해도 리서치업체가 조사 결과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한 리서치업체 대표는 “조사 속성상 결과를 고치기가 어렵다. 코딩을 바꾸어야 하는데 상식적이지 않다. 또, 종합 보고 과정에서 조사 결과를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기업을 대대적으로 수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한 데다, 경영을 효율화하겠다는 데 대한 국민 여론도 호의적인 상황이라 공기업으로서는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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