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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제

또 살아난 ‘올드보이’ , 언제까지 버텨낼까

by 아나코스 2015. 3. 26.

여야 모두에게 퇴진 압박받는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978호] 2008년 07월 22일 (화)  안성모 asm@sisapress.com  
 
 

ⓒ시사저널 임영무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취임 때부터 ‘올드보이’(old boy)로 불렸다. 재정경제원 차관이었던 1998년 초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그는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 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강장관 자신도 이를 의식한 듯 취임사 첫머리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세상살이의 이치임을 알면서도 이자정회(離者定會)의 꿈을 꾸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2의 국운 융성 시대를 열어보자. 다시 한 번 해보자”라며 ‘명예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장관을 맡은 지 5개월이 채 되지 않아 야당은 물론 여당에게도 퇴진 압박을 받는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었다. 작금의 경제난에 대한 모든 책임이 그에게 쏠려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외부 악재로 인해 물가가 불안했는데 성장 드라이브를 걸겠다며 환율 상승을 부채질하면서 악성 인플레를 부른 것은 분명한 실수였다. 지난 7월7일 단행된 개각에서 강장관은 살아남고 엉뚱하게 차관이 물러나는 ‘대리 경질’ 인사가 단행되자 그에 대한 여론의 눈총은 더욱 따가워졌다.

세상이 달라졌는지 모르고 올드보이가 올드 웨이(old way)에 집착하다 패착을 범한 것 같다. 취임 직후부터 심심치 않게 나왔던 강장관의 ‘고환율 정책’은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덕분인가? 정부는 결국, 거꾸로 저환율 정책으로 방향을 수정했지만 강장관은 여전히 경제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강장관과 이대통령은 1980년대 초 소망교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스승’으로 불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대통령이 성장론자인 강장관의 경제 철학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강장관은 경선 캠프에서 이대통령의 대표적 경제 공약인 ‘747 정책’ 개발을 주도했다. 과연 그에게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MB노믹스’를 살려낼 힘이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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