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야당, 국회의장 지낸 정세균 총리 후보자에 각종 의혹 공세
안성모 기자 승인 2020.01.06 11:00 호수 1577
국가 의전 서열로 따졌을 때 국회의장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 바로 다음이다. 20대 국회 전반기에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거론되자 ‘서열 2위’가 ‘서열 5위’ 총리 자리로 가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었다. 굳이 국가 서열을 따지지 않더라도 ‘입법부 수장’을 지낸 인사가 ‘행정부 2인자’를 맡는 건 3권 분립 정신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정 의원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입법부 수장을 지내신 분을 국무총리로 모시는 데 주저함이 있었다”며 “그러나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극심한 이 시기에 야당을 존중하면서 국민의 통합과 화합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세균 총리 후보자는 당 대표를 지낸 6선 중진 의원으로 ‘강성’보다는 ‘온건’ 성향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왔다. 문 대통령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여당인 민주당은 물론 보수야당과도 척지지 않는 정치 행보를 보였다. 당 대표와 국회의장 시절 다소 마찰이 있었지만 여야 대치 정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문 대통령이 ‘정세균 총리 카드’를 끄집어낸 배경 중 하나도 총리 후보자에 대한 보수야당의 반발 수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정세균 청문회’ 검증의 날 바짝 세운 한국당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새해 벽두부터 인사청문회를 두고 여야가 맞서는 형국이다. 특히 총리의 경우 장관과 달리 인사청문회를 마친 후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을 거쳐야 임명될 수 있다. 그런 만큼 야당의 ‘협조’ 여부가 중요하다.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제1야당 자유한국당은 여권의 기대와 달리 정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원내대표를 지낸 나경원 의원이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검증의 날을 바짝 세웠다.
한국당은 정 후보자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며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정 후보자가 20년간 안 갚은 억대 빚을 총리 지명 10일 전에 일괄 변제했다며 ‘무상 증여’ 의혹을 내세우며 포문을 열었다. 인사청문위원인 김상훈 의원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2000년 3월 정아무개씨로부터 1억2500여만원을 빌리고 2009년 10월 5000만원을 더 빌렸다. 이어 2010년 7월에도 1억5000만원을 빌려 총 3억2000여만원의 빚을 졌다.
김 의원은 “채무상환은 최장 20여 년간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 후보자가 제출한 채무변제확인서에는 억대 채무에 대한 이자 지급 여부도 적시되지 않았고 차용일 당시 변제일 설정 여부도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억대 자금을 수십 년간 이자 지급도 없이 상환하지 않았다면 이는 채무가 아니라 사실상 증여를 받은 셈이며 증여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자는 “새로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정 후보자는 의혹이 제기된 당일인 작년 12월26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후보자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제 재산에 관련된 정보는 이미 다 보도된 공개된 정보”라고 밝힌 후 “지난 24년간 매년 한 번씩 재산신고를 하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두 번씩 한다”고 설명했다.
‘소득세 탈루’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당 인사청문위원들은 “정 후보자의 소득에 비해 카드사용액과 기부금액 등 지출 규모가 1.4배에 이른다”며 “소득세를 탈루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들에 따르면 정 후보자의 2014년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상 총급여액은 9913만원인데 카드사용액(8618만원)과 기부금액(4006만원)만 합해도 1억2624만원에 달해 소득 대비 지출이 약 1.46배 더 많다. 2015년의 경우 총급여액이 9913만원인데 카드사용액(1억2875만원)과 기부금액(4988만원)을 합하면 1억7863만원으로 총급여액보다 1.8배 더 많다. 이들은 “국세청의 납세 자료에 따르면 후보자 및 배우자는 근로소득 이외에 소득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무슨 돈으로 각종 세금을 내고 생활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후보자 “청문회 통해 다 밝혀질 것”
정 후보자가 자신의 지지 단체에 수천만원의 자금을 제공하면서 국회의원 공직자 재산신고에는 누락시켰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상훈 의원에 따르면 정 후보자는 자신의 대선 준비조직으로 알려진 한 단체에 2018년 4월3일 5000만원을 출연했는데 이 내역을 ‘공직자 재산등록 목록’에 공개하지 않고 누락시켰다. 김 의원은 “국회의장 재임 시 수천만원의 자금을 지지 단체에 지원했다는 ‘민감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다가 총리 후보자가 되면서 공적 검증의 절차 때문에 불가피하게 금전 제공 여부를 밝힌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라고 밝혔다.
정 후보자의 배우자와 관련한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당 인사청문위원들은 “정 총리 후보자 배우자의 포항시 임야 취득 과정을 조사해 본 결과, 취득자금 출처에 의혹이 많아 이에 대한 해명이 요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자가 2005년 어머니 상속분인 임야의 지분을 7억500만원에 매입했는데, 그해 정 후보자의 재산변동 내역에 매입비용에 대한 자금지출 내역이 포함돼 있지 않다며 증여세를 탈루하기 위한 위장매매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정 후보자는 이 같은 야당의 의혹 제기에 “청문회를 통해서 다 밝혀질 것이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정말 근거 없는 의혹이라는 게 확인될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당에서 제기한 의혹에 대해 충분히 설명 가능하거나 의혹 자체에 근거가 없어 문제 될 게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1996년 15대 국회에 첫 입성한 후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며 비교적 부침 없는 정치 역정을 이어온 정 후보자에게 ‘서열 5위’ 국무총리 자리는 ‘서열 2위’ 국회의장에 오르기보다 더 까다로울 수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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