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소송 대리인 김강원 변호사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1.06(수) 15:30:39 | 1369호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에 대한 반발 여론이 거세다. ‘굴욕 합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김강원 변호사는 “이완용 나무랄 것 하나도 없다”며 우리 정부의 ‘졸속 합의’를 ‘매국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2015년 12월30일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틀 전 발표된 한·일 정부의 합의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했다.
“불법 인정·손해배상 합의 이끌어냈어야”
© 시사저널 박은숙
우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에 진정성이 있는지에 의문이 든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아닌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대독한 형식도 문제지만, 위법성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책임을 통감’한다거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인도적·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식의 발언은 예전에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일본 정부의 과거 행위가 ‘불법적’이고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사죄하고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한다”고 밝혔다.
합의 후속 조치로 우리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관 거출(같은 목적을 위해 여러 사람이 돈을 나누어 냄)하기로 한 대목도 문제로 거론된다. 김 변호사는 “돈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하는 자금의 법적 성격은 ‘배상금’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단지 돈을 보태주겠다는 식은 기초부터 잘못된 합의라는 것이다.
일본이 정부 예산으로 거출하겠다는 자금의 액수도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다. ‘10억 엔(약 97억5000만원)에 피해자 할머니들을 팔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된 할머니만 238분이다. 97억원으로 뭘 어떻게 하나. 한 분당 5000만원도 채 안 된다. 10층짜리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1층 짓는 비용만 내놓겠다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재단 설립의 경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내 일제피해자인권소위원회에서 이미 논의됐던 사안이라고 한다. 당초 요구는 일본 정부가 재단을 설립해 피해 국가에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독일의 경우 직접 재단을 설립해 피해 국가에 배상을 했다. 일본 정부도 독일과 같이 하라는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한·일 정부의 합의 발표 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문 중 하나는 위안부 소녀상(평화비)의 철거 여부다. 합의 발표 내용을 보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함’이라고 돼 있다.
‘소녀상’을 합의 내용에 포함시킨 것 자체부터 문제로 지적된다. 합의 발표 직후 일본에서는 소녀상 철거를 기정사실화했다. 아시히신문은 12월30일 “일본이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 엔을 출연하기로 한 데는 소녀상 이전이 전제였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가 협상 당시 소녀상 조기 철거에 적극 나설 생각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일본 측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합의 내용에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양 정부가 각자 국내 면피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1965년 박정희 정권 때 합의한 한일청구권협정과 마찬가지로 ‘이중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그게 사실이라면 ‘매국’이나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소녀상의 소유권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 있다는 점에서 ‘월권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합의에 앞서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먼저 경청했어야 하는데, 이러한 노력 없이 합의를 끝내고 나서야 할머니들을 찾아가 해명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김 변호사는 “소유권을 지닌 민간에 의향을 물어봐야 한다고 일본 정부에 이야기했어야 한다. 민간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합의한 게 가장 큰 문제다”고 밝혔다.
이번 한·일 합의 발표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최종적 및 불가역적’이라고 명시한 점이다. 양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우선 이 문구를 넣자고 누가 제안했는지부터 서로 말이 다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치인들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최초로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등을 부정하는발언을 일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더 이상은 말을 바꾸지 말라”는 취지에서 먼저 제안했다고 밝혔다.
반면 복수의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고 밝혔다. 요미우리 신문은 아베 총리가 12월24일 총리 관저로 기시다 외상을 불러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아베 총리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문구를 넣는 것이 절대 조건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피해자 할머니들 배제된 협상 결과는 무효”
한·일 양국 정부 중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를 떠나 이 합의 내용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를 먼저 살폈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으니 추후 한국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발표 내용에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함’이라고 명시한 게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먼저 주장했다면 그야말로 정신이 나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50년 전 한일청구권협정 때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힌 부분이 이번에는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한 발짝 더 나갔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못하도록 대못질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고 지적했다.
양 정부가 서둘러 합의한 것은 한·미·일 3각 동맹 강화에 나선 미국 정부의 압박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른바 ‘미국 배후 조정설’이다. 김 변호사는 “한일청구권협정도 14년 동안 진척이 없다가 미국이 개입하면서 성사됐다. 이번에도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런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고 밝혔다.
한·일 합의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향후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김 변호사는 ‘절차상 하자’가 있기 때문에 이번 합의 결과는 ‘무효’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사자인 피해 할머니들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상태에서 협상이 이뤄진 것 자체가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개인의 청구권을 국가가 대신 포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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