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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제

KT&G, '담배 사재기 방지' 국세청 요청 ‘묵살’

by 아나코스 2016. 8. 26.

담뱃값 인상 앞두고 ‘포장 변경’ 요구 거부…‘헌 담배’ 오른 값에 팔아 막대한 차익

 

안성모·김지영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4.22(수) 15:50:21

 

KT&G 등 담배 제조사가 담뱃값 인상을 이용해 수천억 원의 재고 차익을 거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출하한 담배를 시중에 팔지 않고 비축해뒀다가 올해 1월1일 가격이 인상된 이후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한 갑에 2500원 하던 담배가 4500원으로 인상됐는데, 오른 가격 2000원 중 1768원은 세금이다. 담배 제조사가 사실상 ‘사재기’를 통해 세금 탈루를 한 셈이 된다. 그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대략 6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됐다. 지난해 말 사상 유례없는 큰 폭의 가격 인상을 앞두고 담배 시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한 명에 한 갑밖에 팔지 않는 등 ‘극약 처방’이 내려졌는데도 담배 품귀 현상으로 몸살을 앓았다. 담배를 판매하는 편의점마다 계산대 위나 뒤편에 설치된 담배 진열대가 텅 비어 있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그 많던 담배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포장 달리했다면 수천억 재고 차익 못 올려

 

당연히 사재기 의혹이 제기됐고, 화살은 소비자와 소매점을 겨냥했다. 일부 사재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큰 도둑’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담배 제조사다. 재고량 결정을 사업적 판단으로 본다면 이번 일을 사재기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 행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담배 사재기는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정부가 2015년 1월1일부터 담뱃값을 두 배 가까이 올린다고 미리 공표했는데, 시장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몇 달이나 몇 주, 심지어 며칠만 버티면 배가 남는 장사를 하게 되는 셈인데, 단속이나 벌금이 무서워 사재기는 엄두도 못 낼 것으로 기대했다면 이는 너무도 안일한 판단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책 없는 담뱃값 인상으로 지하경제를 활성화했다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담배 사재기를 막기 위한 대책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중 하나가 담배 포장을 바꾸는 방법이다. 올해 1월1일부터 생산되는 제품의 경우 포장 디자인을 변경하거나 가격을 표시해 기존 제품과 구별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간단한 방법을 정부나 담배 제조사가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반응은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장을 교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국산 담배를 생산하는 KT&G가 국세청의 ‘포장 변경’ 요청을 묵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사재기와 재고 판매에 따른 폭리를 막기 위해 KT&G 측에 지난해 12월31일까지 생산된 담배 포장에 별도의 표시를 하거나, 포장지를 교체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하지만 KT&G 측에서 이를 묵살했고, 결국 사재기 현상이 극심하게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국세청의 또 다른 관계자도 “KT&G 등 담배 제조사에 생산 날짜와 디자인을 변경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제조사 측에서 기획재정부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힘들다’는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T&G가 과세 당국인 국세청의 요청까지 거부한 것은 여러 측면에서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담배 포장을 어떤 식으로든 바꿔 ‘헌 담배’와 ‘새 담배’를 구분했다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재고 차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KT&G가 이런 계산 속에서 ‘포장 변경’ 요청을 묵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것이다.

 

KT&G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담뱃값 인상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지난해 12월 인상안이 최종 결정됐기 때문에 70여 종에 달하는 담배 포장 디자인 등을 교체하는 데 시간이 부족했다”며 “KT&G는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해왔다”고 해명했다. 

 

KT&G 측 “디자인 변경할 시간 부족”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포장을 바꿀 수 없었다는 주장은 이미 1년 전부터 정부가 담뱃값 인상안을 만지작거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은 후보자 시절이던 2013년 11월12일 국회 보건복지위의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 담뱃값과 관련해 “청소년 흡연 억제와 물가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적정 범위 안에서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격 수준에 대해서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199원 정도가 적정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답변했다. 실제 2014년 중반부터 담뱃값 인상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포장 변경’은 이미 10년 전에도 제기됐던 방안이다. 담뱃값 인상 전년도인 2004년에도 사재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를 막을 대책으로 포장 디자인을 바꾸거나 소비자 가격을 표시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때도 KT&G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다만 당시에는 2000원이던 담배가 2500원으로 500원 올라 올해보다 담뱃값 인상 폭이 작았다.

 

KT&G는 1월15일 담뱃세 인상에 따른 재고 차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4년간 총 3300여 억원을 사회공헌 활동에 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천억 원의 재고 차익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본격화하면서 여론 환경이 나빠지자 사회 환원 입장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각이 있다.

 

한편 KT&G는 "디자인 변경 관련 국세청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으며, 물리적 소요시간 문제 외에도 동일 제품 이중 가격 형성에 따른 담배사업법 위반과 불법 유통 등 사회적 문제 우려를 주관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충분히 소명했다"고 설명했다. KT&G는 또 "보유 재고에 따른 수익은 유통 흐름상 유류, 주류 등 타 상품에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현상으로, 회사는 연말 보유 재고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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