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2600억 사곡산단 조성 사업 관련 특혜 의혹
거제시=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3.19(목) 18:04:23
정치인에게 ‘개발 사업’은 양날의 칼이다. 경쟁자를 제압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각종 비리 의혹과 특혜 시비에 휘말릴 위험을 안고 있다. 권민호 거제시장이 덕곡일반산업단지(덕곡산단)에 이어 사곡국가산업단지(사곡산단) 조성 사업으로 구설에 올랐다. 권 시장은 시장실을 1층 면회실로 옮겨 개방하고 경차를 직접 운전해 출퇴근하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입찰 제한 5개월’ 소송 도중 ‘1개월로 감경’
덕곡산단의 경우 권 시장 자신이 보유한 부지와 권 시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가 소유한 부지가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산단 지정 후 해당 부동산 가격이 올라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거제시는 “공시지가가 10배 이상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권 시장과 해당 회사의 지가만 상승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흠집을 내기 위한 의혹 부풀리기”라고 반박했다. 거제시 전역의 공시지가가 수년간 상승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곡산단 조성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을 두고 특혜 시비가 일고 있다. 사곡산단은 1조2664억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이다. 해양플랜트 특화 산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해양플랜트 생산단지 조성’ 일환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국가 재정이 아닌 민간 투자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국가 산단으로서는 처음 시도되는 방식이다. 거제시는 민간 부문 건설 투자자 공모에 나섰고, 현대산업개발을 주관사로 한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응모해 경합 없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현대산업개발과 권 시장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3월10일과 11일 이틀간 거제시에서 만난 복수의 인사들은 “비리 커넥션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않았다. 이미 현대산업개발과 권 시장 간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출발은 거제시 하수관 정비 사업 비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사저널은 2013년 6월13일자(제1234호) ‘하수관 사업에 악취 진동한다’ 기사를 통해 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에 조치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을 5개월에서 1개월로 줄여준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5개월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은 전임 김한겸 시장 시절인 2009년 9월11일 하수관 정비 사업 비리 사건과 관련해 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에 내린 행정처분이었다.
현대산업개발은 2005년 7월27일부터 거제시가 발주한 하수관 정비 사업을 진행하면서 하도급업체 등이 허위 서류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44억7200만원의 공사대금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됐다. 현장소장을 비롯해 하도급업체 직원 등 9명이 구속되고 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거제시의 행정처분은 이에 따른 조치였다.
“70억원 뇌물 주고 1조원 혜택 얻어”
현대산업개발은 곧바로 행정 소송을 제기했고, 2010년 5월6일 1심 판결에서 창원지방법원은 현대산업개발의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그해 7월1일 거제시의 수장이 권 시장으로 바뀐 후 상황이 역전된다. 권 시장 취임 다음 날 거제시는 항소를 제기했고, 2011년 11월30일 부산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현대산업개발이 패소한 것이다.
최종심인 대법원 선고가 2012년 7월26일로 지정됐다가 현대산업개발 측의 선고 기일 연기 신청으로 재판은 해를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 4월15일 현대산업개발이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에 관한 재심의 및 경감 처분 신청서를 거제시에 제출했다. 거제시는 계약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입찰 참가 자격 제한 기간을 5개월에서 1개월로 줄였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현대산업개발이 신청 과정에서 5개월간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받게 되면 손실액이 1조2629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힌 점과 자문 및 심의 과정에서 경감 처분을 받을 경우 거제시를 위해 70억원의 지원을 약속했다는 점이다. 권 시장이 현대산업개발로부터 부당한 청탁을 받고 거제시에 70억원 상당의 뇌물을 공여하게 한 것으로 본다면 ‘제3자 뇌물공여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 보면 “70억원의 뇌물을 주고 1조원의 혜택을 얻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까지 제기될 수 있다.
시사저널은 관련 문서들을 바탕으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우선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에 제출한 해당 신청서에서 “5개월간 입찰 참가 자격 제한에 따른 수주 손실액이 1조2629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012년 회사 전체 매출액의 약 55%에 해당하는 비중이다”고 밝혔다. 또 국책 사업과 관련해 “2013년 상반기만 모두 15건 공사대금 총액 5조7000억원 정도의 공사에 관해 입찰 참여를 준비 중에 있다”며 “대규모 국책 사업이 불가피하게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사태가 생겨 그 피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심대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산업개발은 “경우에 따라서는 법인의 생사가 좌우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거제시 지원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를 지원할 구체적 계획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점 또한 정상 참작 사유로 고려해주길 바란다”면서 ‘구체적 계획’에 대해 “재심의 과정에서 거제시와 세부적 지원 계획에 관해 협의를 통해 결정지은 후 재심의 때 그 내용이 참작되도록 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3년 5월31일 확정된 심의의결서에는 ‘지역사회 발전·복지 증진 참여를 약속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나와 있다. 며칠 후인 6월4일 접수된 내부 결재 문서에도 입찰 참가 자격 제한 변경 사유로 ‘부당 이득금 반환 및 사회공헌 약속 등’으로 기재돼 있다.
현대산업·거제시 “특혜 소지 없다”
심의에 앞서 진행된 민원재심의자문위원회의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발언도 나왔다. 2013년 5월14일 열린 회의 개최 결과 문서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의 한 상무는 ‘경감 처분을 받을 시 조치 사항’에 대해 “지역의 현안 사업 지원을 약속하고 시민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얼마 정도 금액을 제시했느냐’는 질문에 “53억 정도다”고 답변했다.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시민연대)는 “현대산업개발이 2년 이내 17억원의 기부금을 추가로 내겠다고 제안해 결국 70억원 상당을 내는 조건으로 경감 처분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반면 거제시는 3월13일 시사저널에 보내온 질의답변서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재심의 신청서와 지역 언론을 통해 지역 발전을 위한 노력과 지원을 공언한 사실은 있지만 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구체적인 지원을 요청한 사실이 없으며 의사 표시를 수락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또 “현대산업개발로부터 70억원 상당의 공익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의향서 제출을 요구했거나 제출받은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거제시가 2013년 6월11일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에 보낸 현대산업개발 관련 공개질의에 대한 회신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지원을 약속하는 의향서를 시에 제시함에 따라 나름 이행 확인 장치로 공증을 받도록 하고 확인케 했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이와 관련해 지역에서는 “거제시가 현대산업개발의 지원 약속과 관련한 문서를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70억원 이외에 또 다른 ‘제안’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거제시는 2015년 3월13일 현재까지 현대산업개발로부터 70억원과 관련한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에 대해 권 시장은 최근 지역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제시가 요청을 못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단체가 ‘제3자 뇌물공여죄가 성립된다’며 고발했다. 지금 돈을 내놓으라 하면 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시민연대가 관련 사안으로 권 시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을 문제 삼은 발언으로 여겨진다. 서울서부지검은 2013년 12월26일 해당 고발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항고와 재항고가 이어졌지만 모두 기각됐다. 하지만 돈을 내놓으라 하면 죄를 인정하게 된다는 말은 해당 70억원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70억원 지원은 회사가 약속한 부분이다. 거제시에서 어떤 식으로 지원해달라고 제시하면 지원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제시 해당 부서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고 적당한 방안을 찾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사곡산단 조성 사업 우선협상자 선정에 대해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며 특혜설을 부인했다. 거제시도 “적법한 공모 절차에 따른 것으로 특혜 등이 개입될 소지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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