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감사원, 방송대 감사 자료 입수
안성모 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0.13(월) 16:20:11
“썩어도 너무 썩었다.” 최근 국립대학인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학생들이 학교 측이 기성회비를 부당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새로운 방송대기성회를 창립했다. 강동근 창립발기인 대표는 “기성회의 설립 목적은 긴급한 시설과 학교운영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인데 기존의 방송대기성회는 지난 40년간 설립 목적과 다르게 운영돼왔다”고 주장했다. 교직원들에게 수당을 매월 급여처럼 지급하는 등 기성회비를 눈먼 돈처럼 제 마음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강 대표는 “이미 경찰에 기성회 임원진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며 “조만간 법원에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도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초의 평생교육기관으로 4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온 방송대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교육부가 2010년 10월 실시한 ‘감사 결과 및 처분 내용’과 감사원이 2013년 3월 작성한 ‘감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방송대 교직원들의 ‘비리 실태’를 확인했다. 해당 교직원 대다수는 주의 또는 경고 처분을 받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방송대가 교육부의 처분 조치를 이행한 것처럼 속여 교직원들에게 연구수당을 계속 지급하는 ‘꼼수’를 부린 사실도 확인됐다.
교수 92명이 264개 직무 겸직
교육부가 감사 결과 지적한 사항은 모두 28건에 이를 정도로 다양했다. 우선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 교수들이 기관장 승인 없이 다른 직무를 겸직해온 사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제1항은 ‘공무원은 공무 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고 돼 있다. 그런데도 가정학과 한 교수의 경우 2008년 3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무려 13개의 직무를 겸직하는 등 92명의 교수가 총 264개의 직무를 기관장의 승인 없이 겸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7명의 연구원이 기관장 허가 없이 무단으로 외부 출강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명은 근무상황부에 의한 외출 허가 등의 조치도 없이 근무 시간 중에 외부 출강을 했다. 이와 별개로 광주·전남지역 대학의 한 직원은 매주 근무 시간 중 3~6시간씩 총 455시간을 외부 출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38시간은 외출 허가 등의 조치도 없었다.
장기 국외 연수를 다녀온 교수 9명이 제출 기한 내에 연구 논문을 제출하지 않은 것도 부적정하다고 지적됐다. 미디어영상학과 한 교수의 경우 기한이 무려 4년 2개월이나 초과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년 수행 후 국내외 전문 학술지가 아닌 교내 논문집에 발표한 논문을 연구 결과 논문으로 인정한 사례도 있었다. 또 연구 논문을 제출하지 않은 연구원 2명에게 제한 없이 교내 연구비를 지급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수들의 무분별한 해외여행도 도마에 올랐다. 경영학과 한 교수는 2007년부터 2010년 10월까지 학기 중에 9차례에 걸쳐 35일 동안 연가 등의 조치 없이 해외여행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수 외에도 43명이 총장 허가 없이 학기 중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방학 기간에는 이보다 더했다. 미디어영상학과 한 교수의 경우 4차례에 걸쳐 80일 동안 연가 등의 조치 없이 국외 연수를 하는 등 42명의 교수가 총장 허가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조교들도 근무 상황 결재를 받지 않고 해외여행을 갔다. 법정 연가 일수가 3일인 교육학과 한 조교는 무단 해외여행을 포함해 16일의 연가를 사용했다.
전임교수가 1개월 이상 국외 연수를 받을 경우 TA(조교)를 활용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국외 연수 기간 중인 교수들이 조교를 활용한 점도 지적됐다. 청소년교육과 한 교수를 포함해 5명의 교수가 조교를 활용해 조교에게 임금을 지급했다. 평생교육원장을 비롯한 교수 4명에게 지급된 원고료 중에 부적정하게 지급된 원고료도 있었다. 동일한 강좌의 원고를 재활용할 때는 3분의 1 이하로 부분 수정한 원고의 경우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게 돼 있는데도, 2개 강좌 3개 원고의 경우 부분 수정에 대한 검토도 없이 일반 원고료 단가를 적용해 전액 지급됐다.
전공 교재와 교양서적을 판매하는 출판부(현 출판문화원)를 부적정하게 운영한 사실도 드러났다. 방송대 출판부는 대학 출판부 가운데 가장 성공을 거둔 곳으로 꼽힌다. 그런데 당연직 이사장을 맡은 총장 등 3명이 2007년 1월부터 2010년 9월까지 받은 인건비성 수당이 1억원을 넘었다. 노래방 등 클린카드 제한 업종에서 사용한 법인카드 금액도 32회에 걸쳐 1000만원에 이른다.
경기지역 대학 산학협력단 운영이 부당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할청에 신고·등록하지 않은 채 온라인으로 상품 포장 교육 과정 등을 운영하며 수입금을 세입 조치하지 않고 직접 관리·집행했다는 것이다. 관할청에 신고·등록하지 않은 교육 과정이 170개나 됐고, 수강료 수입금이 7억3000여 만원에 달한다.
직원 채용과 관련해서도 여러 건이 지적됐다. 지원자들이 제출한 경력증명서에 대한 사실 조회 없이 서류심사에 반영하는가 하면, 임용 이후 호봉 획정을 위한 경력 조회 과정에서도 경력증명서 중 일부에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 있었는데도 별도의 검토 없이 임용을 유지했다. 반면 사서직 공무원 2명을 채용하기 위한 시험을 실시하면서 통신정보처리 및 사무관리 분야의 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기간 만료로 퇴직한 계약직 또는 연구원을 특별 채용한 사례도 적발됐다.
기성회 회계 인건비성 수당 61억3000만원
부적정한 수당 지급도 도마에 올랐다. 해외여행 등 개인 연가로 고사 감독 및 입시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도 않은 교직원에게 일괄적으로 수당이 지급됐다. 또 부양가족 수당과 자녀 학비 보조 수당을 부당하게 수령한 중어중문학과·환경보건과 교수 등 39명의 교직원이 적발됐다.
기말고사 추가 시험을 관리·감독한 것과 관련해 업무 담당자들에게 별도의 수당이 지급된 사실도 드러났다. 담당자 64명이 2009년도 1학기부터 3학기 동안 받은 수당이 5400여 만원에 이른다.
비연고지에서 근무하는 교직원이 연고지를 방문할 때 여비를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월 2회까지 5만~15만원씩 지급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부터 10개월간 71명의 교직원에게 지급된 금액이 9000만원을 넘었다. 기성회 회계에서 교직원 335명에게 특별 교통 보조금 및 건강검진비로 6600여 만원이 지급된 것도 부적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업무추진비 지급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입시 업무 담당자 및 부서 격려금 명목으로 2008년부터 3년간 지급된 업무추진비가 5400만원을 넘었다. 또 연말연시 부서 및 지역 대학 격려금 명목으로 2007년부터 3년간 지급된 업무추진비가 5000만원 가까이 됐다. 이들 업무추진비는 모두 현금으로 나갔다.
가장 덩치가 큰 수당은 교수에게 지급된 연구촉진장려금과 직원에게 지급된 행정개선연구비였다. 기성회 회계에서 인건비성 수당을 지급한 것인데, 전체 교직원에게 지급된 금액이 61억3000만원이나 됐다. 해외 파견 중인 교수 34명에게 원격교육비로 5500여 만원을 준 것도 부적정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각종 시설 공사와 관련해서도 집행 업무 및 경비 정산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제1지역 대학 도서관 증축 공사 등 3건의 시설 공사를 하면서 내역서에 계상된 물량을 누락한 채 시공하거나, 규격을 상이하게 시공해 감액 요인이 발생했는데도 설계 변경을 하지 않고 준공 처리했다. 또 대전·충남지역 대학 시스템 에어컨 설치 기계설비 공사를 하면서 원가계산서에 계상된 환경보전비 사용 내역을 확인하지 않는 등 4건의 공사에서 사용 내역 확인 및 정산을 하지 않고 전액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당 폐지한 후 다른 항목에서 보전 ‘꼼수’
교육부는 이러한 감사 결과를 근거로 방송대에 관련자들에 대한 처분을 통보했다. 하지만 대부분 주의(17건) 및 경고(15건) 처분이 내려져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 감사 후 방송대는 지적 사항을 제대로 개선했을까. 2년이 넘게 지난 뒤 감사원이 기관운영감사를 통해 방송대의 재정 운용 실태를 점검한 결과 기성회 회계에서 인건비성 수당이 여전히 지급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수에게 지급된 연구촉진장려금과 직원에게 지급된 행정개선연구비 지급을 중단하면서 해당 금액만큼을 기존에 지급하던 연구보조비 항목에 포함해 41억2400만원을 지급했다.
교육부는 감사 후 방송대에 “향후 기성회 회계에서 교원 연구촉진장려금 및 직원 행정개선연구비를 지급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고 학생들의 기성회비 인상 요인인 인건비성 수당을 신설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기를 바란다”는 통보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한 이행 보고를 교육부장관에게 하면서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 지급을 중단한다는 내용만 알리고 해당 금액을 연구보조비 항목에 포함한 사실은 숨겼던 셈이다.
감사원은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를 폐지한 것처럼 하고 해당 금액만큼 연구보조비를 인상해 교직원에게 지급한 행위는 교육부장관의 감사 지적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감독 관청을 기망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교직원들이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금액을 보충하기 위해 기존에 지급하던 연구보조비를 인상한 것’이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2011년 회계연도 기성회 회계에서 교직원 1인에게 지급한 평균 인건비 지급액이 총 1761만원으로 40개 국립대 중 1위였다”고 반박했다. 또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를 보전해 지급하지 않더라도 교직원 1인당 평균 지급액은 1499만원으로 여전히 40개 국립대 중 1위이며 최하위인 대학에 비해 약 2.9배나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학생들의 교내 장학금 수혜율은 37.9%로 기성회 회계에서 교직원들에게 급여보조성 인건비를 많이 지급하고 있는 다른 국립대 학생들의 교내 장학금 수혜율(65~116%)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며 “교직원들의 경제적 손해를 보전하기보다는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급을 확대하고 기성회비를 인하해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정은 어떨까. 시사저널이 대학알리미에 게재된 공시자료를 통해 올해 주요 국립대의 기성회 회계 급여보조성 인건비 현황을 살펴본 결과 방송대가 교수 기준 2010만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올해 장학금 수혜율은 13.8%로 여전히 최하위에 머물렀다. 이에 대해 방송대 측은 10월16일 “방송대의 경우 한 학생이 장학금을 중복해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중복 수혜를 허용하는 다른 국립대와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 않다”고 밝혔다. “등록금 세입 총액 대비 장학금 지급률은 다른 국립대보다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방송대 측은 또 “2009학년도 이후 5년간 등록금을 동결해 세입 감소폭이 확대되고 있지만 장학금 지급액과 지급 인원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방송대가 작성한 ‘교육부 감사 결과 처분 요구에 대한 보고 사항’에 따르면, 28건에 이르는 교육부의 지적에 대해 모두 처분 조치를 한 것으로 보고됐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 지급 부문도 주의 및 경고 처분을 하고 통보 조치를 한 것으로 나와 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방송대에 전화를 했지만 총무과 관계자는 “담당자가 휴가 중이다”며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기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고 담당자와 연락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 후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강동근 창립발기인 대표는 “원격 교육을 주로 하는 우리 대학의 특성상 비리가 발생하는지 여부를 제대로 감시하기가 쉽지 않다”며 “학생들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재학생 20만명을 둔 국립대 예산이 더 이상 눈먼 돈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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