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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4년 동안 난방비 한 푼도 안 낸 집도 있다”

by 아나코스 2016. 8. 22.

노진섭·안성모 기자 ㅣ 승인 2014.09.30(화) 18:12:48

 

관리비 이슈는 해묵은 이야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구마 줄기처럼 끝이 없다. 깊이 박힌 비리의 뿌리는 썩을 대로 썩어서 악취가 날 정도다. 정부와 경찰은 손을 놓고 있다. 정부와 경찰도 연루된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는 이유다. 주민도 나서야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사는 공동주택 아파트에서 누군가 혜택을 보면 손해를 입는 반대편이 반드시 있다. 이쯤 되면 관리비 비리는 돈 문제 이상의 해악이라 할 만하다. 시사저널은 이른바 ‘김부선 난방비 리스트’를 단독 입수해 분석했고, 더 나아가 관리비 비리 실태를 취재했다.

 

 배우 김부선씨의 폭로로 이른바 ‘0원 난방비 비리’ 홍역을 앓고 있는 서울 성동구 ㅇ아파트의 난방비 명세서를 시사저널이 입수했다. 2007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겨울철(27개월)에 난방량이 ‘0’으로 나온 곳은 모두 128가구로 나타났다. 10X동 X04호는 2009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지 4년여 동안 동절기 난방량이 ‘0’으로 기록됐다. 10X동 20XX호는 2009년 1월부터 2010년 3월까지 한 차례도 빠짐없이 난방량이 ‘0’이었다. 이어 2011년 1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3개월 동안 역시 난방량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 밖에 8개월 동안 난방량이 ‘0’인 경우가 1가구, 7개월 2가구, 6개월 4가구, 5개월 6가구 등으로 드러났다.

 

‘난방량 0’이 특정 시기에 몰린 것도 확인됐다. 가장 적은 달은 2008년과 2009년 1월로 모두 4건이었다. 2010년 12월과 2011년 1월에는 각각 24건이나 됐다. 2009년 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두 자릿수를 차지하며 난방량 0인 가구가 몰린 점이 특징이다. 경찰은 난방비가 6개월 이상 0원으로 나온 10가구의 계량기를 전문 기관에 보내 정밀 감식을 의뢰했다. 이 리스트에 대해 김부선씨는 “내가 사는 (동) 53가구에서 16가구만 제대로 난방비를 냈다. 서울시 감사 자료를 기준으로 리스트를 뽑았다”고 밝혔다.

 

9월24일 취재진을 만난 이 아파트의 정 아무개 관리소장은 “7년 치를 한꺼번에 모으니까 많아 보이지만 한 달로 나누면 평균 10건 조금 넘는 수치”라며 “부풀려도 너무 부풀렸다”고 주장했다. 난방비는 기본난방비와 세대난방비로 나뉘는데 난방량 0은 세대난방비에 해당한다. 기본난방비는 가구 수로 나눠 부과된다. 기본난방비 대 세대난방비 비율은 3 대 7에서 최근 4 대 6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 관리소장은 “서울시나 국토교통부에서 중앙난방으로 열량계를 쓰는 아파트를 다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아파트에서도 난방량 ‘0’인 경우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회 유력 인사가 파렴치한 짓 했다”

 

난방량 0인 집에는 누가 살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부선씨는 사회 지도층이 난방비를 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9월24일 오후 “요즘 정신없이 바쁘니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지 5분 만에 김씨는 시사저널 취재진에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서로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니 2시까지 성동경찰서로 오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김씨는 난방비 비리 문제로 주민 A씨에게 폭행을 가한 혐의로 서울 성동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했다. 김씨는 오후 2시4분 성동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언론사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는 모습에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금세 여유를 찾은 후 “연예계 데뷔 이래 언론인이 이렇게 관심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나한테 갖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구청·시청·국토부·청와대에 가져달라”는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취재진의 관심은 난방비 0원이 나온 집 가운데 유력 인사가 누구인지에 쏠렸다. 김씨는 “사회에 많이 가진 사람, 지도층 인사, 서민을 돌보고 봉사하고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해야 할 리더가 이렇게 염치없고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많이 가진 자들, 공무원 출신들”이라고 답변하고 “나머지는 여러분이 밝혀달라”고 당부했다. ‘30년 된 오래된 관피아’라는 표현도 썼다.

 

경찰 조사는 예상보다 길어졌다. 2시간이 걸릴 것이라던 조사 시간은 5시간을 넘겼다. 땅거미가 내린 후에야 경찰서를 나선 김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씨가 사는 ㅇ아파트는 32평형과 42평형 두 종류로 나뉜다. 한 공인중개사는 “42평형 매매가는 경기가 좋았을 때 10억원 이상 나갔다”며 “중산층 이상이 산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유력 인사들이 관리비로 장난을 쳤겠느냐”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에는 한때 새누리당 중진 의원과 공공기관 기관장이 살았고, 그 동네(옥수동)에는 공무원, 외교관, 정치인, 장군 출신들의 집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아파트 관리업체와 연관된 사람일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입주자대표회의 사람이나 부녀회장, 공무원 등 아파트 관리업체와 연관된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ㅇ아파트의 정 관리소장은 “김부선씨의 주장일 뿐”이라며 “동대표나 부녀회장 집도 (난방량이) ‘0’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ㅇ아파트 입구에는 현수막이 붙었다. ‘난방비 폭로 사건의 주역인 김00 본인도 계량기 검침량이 “0”입니다’라는 문구가 ‘개별난방 찬성 입주민 일동’ 명의로 쓰여 있다. 현수막 앞을 지나던 한 주민은 경비원에게 “누가 붙인 것이냐”고 항의했다. 그는 “김부선씨가 비리 문제를 발견해 공론화를 한 것이다. 십자가를 진 건데 그 집도 0원 나왔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현수막과 관련해 정 관리소장은 “김부선씨의 집 열량계가 고장이 났는데 안 고치고 있다. 열량계 값 15만원을 대신 내준다고 해도 안 고친다”고 했다. 열량계가 고장 났으니 검침량이 ‘0’인 것은 사실인 셈이다. 그렇다고 김씨가 난방비를 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열량계가 고장이 나서 검침량이 ‘0’일 경우 전년도 같은 달 난방비를 내도록 돼 있다. 정 관리소장은 “(김씨는) 난방비를 지난해 같은 달에 냈던 만큼 낸다”며 “지난해보다 올해 난방을 많이 썼다면 난방비를 적게 내는 것이고, 지난해보다 올해 적게 썼다면 난방비를 많이 내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아파트는 중앙난방식이다. 총 난방비를 가구 수로 나눠 공평하게 부담하는 구조다. 1000가구의 전체 난방비가 1000만원이라면 각 가구는 1만원씩 부담하는 식이다. 그런데 500가구의 난방비가 0원이라면 나머지 500가구가 2만원씩 부담해야 한다.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난방비를 실제 사용량보다 적게 내는 가구가 있으면 다른 집이 이를 메워야 한다.

 

난방량 0이 나온 데에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열량계가 고장이거나 의도적으로 조작한 경우다. 어떤 경우든 난방비가 0원으로 나오면 전년도 같은 달의 요금을 적용해 부과한다. 그러나 이 아파트 관리업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파트 관리 경력이 20년인 한 주택관리사는 “열량계는 몇 년만 사용해도 고장이 난다. 그러면 0이 되는데 이런 경우는 지난해 같은 달 기준으로 난방비를 내면 된다”며 “관리업체는 신속히 열량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관리업체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난방량 0인 사실을 몰랐다면 관리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고,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고의성이 있다. 서울시가 관리 소홀로 행정처분을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주열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 대표는 “난방을 하지 않았더라도 몇 천원의 기본요금은 나온다”며 “겨울철에도 동파 등의 이유로 약하게라도 난방을 하므로 난방량이 0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보 받고도 서울시는 실태조사 안 했다”

 

김부선씨는 몇 해 전 월 난방비로 80만원이 나왔는데 앞집은 3000원이어서 관리사무소에 난방비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무시당했다. 김씨는 2012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난방비·온수비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집이 수백 가구가 된다는 황당한 소문이 돌았다”며 “이를 공론화할 목적으로 관리소장에게 주민 소집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2003년 이사 왔을 당시 100가구 이상이 난방비를 내지 않고 공짜로 산다는 얘기를 동대표한테서 들은 바 있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어림잡아 10년 동안 난방비를 내지 않은 주민이 있는 셈이다. 이런 의혹은 아파트 내부에서도 돌기 시작했다.

 

이 아파트의 난방비 비리 문제가 표면으로 떠오른 것은 당시 서울시의회 의원이 지난해 주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곽재웅 전 서울시의회 의원은 “제보를 받고 그 아파트 주민회의에 참석해서 실태를 점검했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서울시에 진정을 내고 실태조사를 요구했다”며 “그러나 서울시는 움직이지 않았고 아파트 관리업체는 내가 난방비 비리를 문제 삼아 의도적으로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비 민원을 담당하는 서울시 직원이 4명뿐이라는 핑계로 시의원의 요구를 무시했던 서울시는 예산 심의 시기가 돼서야 태도를 바꿨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아파트 전체 536가구를 대상으로 5년간 겨울철(27개월)에 부과된 난방비 1만4472건을 조사했다. 난방량이 ‘0’으로 표기된 사례가 300건, 가구 수로는 128가구가 적발됐다. 난방비가 전체 평균 18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만원 이하 사례는 2398건이나 적발됐다.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는 “시의원이 아파트에서 난방비 비리가 있는 것 같다고 알려와 현장 실태조사를 했다”며 “조사 당시 한겨울이었음에도 난방량이 0으로 나온 계량기가 약 300건 발견돼 성동구청장에게 시정할 것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성동구청은 해당 아파트 관리업체에 행정처분을 내리고 올해 5월 성동경찰서에 수사도 의뢰했다. 경찰은 6월 구청 담당 직원과 열량계 판매 직원을 조사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9월26일 오후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나타난 김부선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아파트 난방비 명세서를 공개했다. 아파트 관리비 문제를 이참에 공식적으로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이 아파트 관리소장은 사임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아파트 관리소장의 사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정부의 개입과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상태라며 김씨의 의견에 동감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아파트 동대표는 “아파트 난방비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주민이 낸 관리비가 적절하고 합법적으로 쓰이는지 알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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