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들 마구잡이식 고발…정부의 공안몰이 별동대 역할
안성모 기자·제희원 인턴기자 ㅣ asm@sisapress.com | 승인 2015.01.29(목) 18:07:33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2014년 4월30일. 두 살배기 아이를 둔 전주영씨는 인터넷 카페 ‘엄마라서 말할 수 있다’(약칭 ‘엄마다’)를 개설했다. 엄마로서 어린 학생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음에 내몰린 현실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뜻을 같이한 엄마들과 함께 서울 강남역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를 가졌다. 20개월 된 아이를 맡겨둘 곳이 없어 데리고 나갔다. 다른 회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안전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2열로 줄지어 걸으며 침묵시위를 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도 있고, 아기 띠를 매고 온 엄마도 있고, 혼자 나온 엄마도 있었다. 원활한 이동을 위해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대열 맨 앞에 섰다. 언론에서는 이들에게 ‘유모차 부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며칠 뒤인 5월14일 전씨는 자유청년연합 등 보수단체들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들 단체는 그에게 ‘아동학대죄’라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웠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시위 현장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은 아동학대’라는 것이다. 그해 10월 전씨는 둘째를 임신한 몸을 이끌고 검찰에 출석했다.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당당히 조사를 받았다.
해가 바뀐 지난 1월22일 기자와 만난 전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밖에 없는 엄마들에게 ‘아이를 이용하지 말라’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너희는 이제 나오지 말라’는 협박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놓았다. 검찰 고발에 대해서도 “보수단체의 협박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며 “평범한 엄마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언론이 주목하고 정치권이 관심 갖는 게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검찰 수사 결과가 ‘혐의 없음’으로 나오면 자신을 고발한 보수단체들을 무고죄로 고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들 멋대로 고발장을 남발하는 보수단체들이 앞으로 마구잡이식 고발을 못하도록 선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보수단체 고발→검·경 수사’ 수순
서울시청 광장을 군복 물결로 도배하던 ‘아스팔트 보수’가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로 몰려들고 있다. 손에는 태극기 대신 고발장을 움켜쥐었다.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행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법 위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보수단체들은 전씨가 정말 아동학대를 했다고 믿고 고발한 것일까. 이보다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박근혜정부에 묻는 엄마들이 못마땅해서가 아닐까.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런 엄마들의 시위가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전에 차단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전씨를 고발한 자유청년연합의 장기정 대표는 이 고발 건의 진행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시민단체로서 고발은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만, 그 이후는 “검찰이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아동학대를 저지른 범죄자 엄마를 법의 준엄한 심판대에 올리려 했다면 검찰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근래 들어 보수단체들의 고발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 옥외 집회 중심에서 법적 대응 쪽으로 보수단체의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지만,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유포 등 고발 혐의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여기에다 유력 정치인부터 일반 시민까지 그 대상도 넓어졌다. 주목되는 부분은 서로 다른 고발이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언론에서 이슈로 다루면 보수단체에서 고발을 하고 사정 당국에서 수사에 들어간다.’ 물론 과거에도 보수단체가 고발해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하는 행태가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그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공안통 김기춘 비서실장 있어 통진당 해산”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우선 갈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공안 정국’이 경쟁적으로 펼쳐지는 보수단체들의 고발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박근혜 정권은 해를 거듭할수록 ‘공안’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력의 핵심 요소를 공안이 다 장악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검찰의 경우 업무 전반이 공안 중심으로 흘러간 지 오래다. MB(이명박) 정부에서 검사장을 지낸 한 법조인은 “현 정권은 유난히 공안을 좋아하는 정권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공안을 강조하는 국가는 어디에도 없다.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공안 이슈는 보수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정권 입장에서는 당장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 ‘공안몰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가 이를 잘 말해준다. 벌써부터 우익 성향이 강한 보수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해산을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취재 중 만난 다수의 보수단체 유력 인사들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보수 우파 진영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낸 주역으로 꼽고 있는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본부장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공안검사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는 순간 희망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56쪽 인터뷰 기사 참조).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사무총장도 기자에게 “공안통인 김기춘 비서실장이 있으니까 통진당이 해산되고 전교조 문제까지 처리된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공안 정국’은 이른바 ‘종북몰이’를 통해 극대화됐다. 일부 보수단체가 ‘종북 사냥꾼’을 자처하며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달리기식 고발이 펼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발장이 들어오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안 돼 수사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수단체에서 정권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있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단체들이 공안 당국과 사전에 조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온 한 변호사는 “보수단체들의 고발이 종북몰이와 맞물리면서 심해졌다”며 “사전 조율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짝짜꿍이 잘 맞는 것은 사실이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안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가 연결 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보수단체 대표는 “검찰이나 경찰이 할 일이 따로 있는데 그걸 조율한다는 게 말이 되나. 사전에 조율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이 뒤가 구려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했다. 20년 가까이 보수단체에서 활동한 한 유력 인사는 “예전에 우리가 집회를 하면 24시간도 안 돼 경찰에서 소환 통보가 왔다. 그런데 우리가 고발하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소환도 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소 함부로 못하게 무고죄 폭넓게 적용해야”
이미 이름이 알려진 보수단체들보다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단체들이 고발을 주도해나가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다수의 보수단체가 고발한 사건을 맡은 한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다소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고발 단체 대표들에게 회원이 몇 명인지를 묻자 ‘10여 명 된다’ ‘8명 정도다’ 같은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이들 단체가 제출한 고발장도 거의 똑같다. 제목만 살짝 바꿨다. 누군가 이들 단체를 도와주거나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근래 몇 년 사이 활동 경험이 많은 유력 보수단체 밑에서 별동대 역할을 하는 청년단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단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탈북자단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청년단체를 결성해 활동 중인 유명 보수단체 측은 “아스팔트(집회·시위)는 우리가 뛰고 젊은 친구들은 계몽 활동이나 법정 싸움을 맡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고발을 남발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정 보수단체의 경우 고발을 정치권 진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예전에는 손을 쓰지 못하던 영역을 파고드는 보수단체들도 있다. 블루유니온은 미국 내 한인 여성 커뮤니티인 ‘미시USA’를 국보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미시USA’는 세월호 참사 후 뉴욕타임스에 박근혜정부를 비판하는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됐다. 권유미 블루유니온 대표는 “미국에서 반한 시위를 하는 이적단체 구성원 30명을 선별해 법무부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권 대표는 “보수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안보를 위해 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권 대표도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상태다.
대다수 시민단체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정부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정부를 대신해 무리하게 고발을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활동해온 한 보수단체 간부는 “모금 계좌야 있지만 성금이 잘 들어오는 곳은 별로 없다. MB 때는 정부 지원을 많이들 받았다. 사업 공모로 지원받아 이행을 안 해도 그냥 쌈짓돈으로 쓰고 그랬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들어서 많이 끊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보수단체들의 ‘종북 사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스팔트 보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행동본부는 올해 목표로 ‘종북 잔당 소탕’ ‘종북 쓰레기 청소’ 등을 내놓았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종북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단체가 누구를 고발하게 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지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고소를 함부로 못하게 해야 한다. 지금은 너무 과잉 상태다. 무분별한 고소를 방지하기 위해 무고죄를 더 폭넓게 적용할 필요가 있고 검찰도 고소 각하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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