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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입사 15년 차 ‘왕고참’ 정 과장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만날 열 받다

by 아나코스 2016. 3. 14.

승진·자녀 교육·정치권 싸움질 등 어딜 봐도 스트레스 


안성모 기자 | 승인 2013.12.26(목) 22:26|1262호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스트레스’다. 우리말로 ‘긴장’ ‘불안’ ‘짜증’ 정도로 순화할 수 있는 이 스트레스는 한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말 그대로 ‘스트레스 공화국’이다. 정치권을 보면 짜증만 나고, 직장에서는 눈치 보고, 자녀 교육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어느 하나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 스트레스만 차곡차곡 쌓여간다.

시사저널은 ‘응사(<응답하라 1994>의 줄임말) 세대’로 한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초반 직장인을 통해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 요인이 숨어 있는지를 살펴봤다. 또 직무 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이용해 직장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봤다. 이와 함께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 게 효과적인지 전문가로부터 조언도 들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불안한 미래가 스트레스 더 키워

대학 졸업 후 한 대기업에 입사한 정 아무개씨는 15년 동안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입사 초기부터 상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 여세를 몰아 과장까지 고속 승진했다. 그런데 공짜는 없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자리 이동이 있을 때마다 동기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말이 좋아 경쟁이지 피 말리는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은 패자뿐 아니라 승자에게도 고통을 남긴다. 승전고를 올렸지만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선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술·담배부터 끊어야 할 처지였다. 몇 차례 끊다 말다를 반복하다 올해 들어 두 가지 모두 확실하게 끊었다. 이로 인해 회식 자리가 곤혹스럽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술자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오래 앉아 있기가 부담스럽다. 직장 상사는 물론 부하 직원에게도 눈치가 보인다. 다들 이해한다고 한마디씩 거드는 게 더 신경 쓰인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가 뒷목을 꾹 누른다.

승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물을 먹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자위하지만 가슴이 갑갑해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멍하니 있다가 덜컹 명예퇴직이라도 당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때도 있다. 회사에서 나와 가게를 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그러면 머리가 더 복잡해진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미래, 이에 대한 설익은 생각이 스트레스만 더 키우는 꼴이다. 물론 아직 기회가 남은 만큼 주먹을 불끈 쥐고 각오를 다져보기도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그렇다면 정 과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일까. 한국형 직무 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통해 확인해봤다. 이 측정 도구는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가 산업안전공단의 용역을 받아 2년에 걸쳐 개발한 것이다. 모두 43문항으로 물리 환경, 직무 요구, 직무 자율, 관계 갈등, 직업 불안정, 조직 체계, 보상 부적절, 직장 문화 등 총 8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정 과장의 경우 채점 결과 전 영역에 걸쳐 직무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 환경과 보상 부적절 영역만 상위 50%였고, 나머지 영역은 모두 상위 25%였다. 총점도 상위 25%에 속했는데, 이 그룹 내에서도 스트레스가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에게 유일한 안식처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바탕 전투를 치른 후 돌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정 과장의 경우 아들 둘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돈 들어갈 일이 부쩍 늘어났다. 교육비 부담이 커지자 아내도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일찍 집에 들어가도 네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일은 드물어졌다. 오히려 아내와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부딪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족 구성원 간 전염되기도

직장인에게 가정은 또 다른 스트레스의 진원지다. 회사 일에 매달리다 보면 자칫 가족에게 소홀하게 되고,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면 회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일과 가정의 균형(Work and Family Balance)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 일과 가정은 따로 놓인 게 아니라 서로 얽혀 있다고 봐야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스트레스만 더 쌓인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전염이 된다. 가족 구성원 한 명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구성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정을 떠나 사회에서 돌고 도는 전염병이 된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쓴

<스트레스 힐링> 서평에 재밌는 예가 나온다.

‘김 대리가 직장에서 열 받았다고 집에 가서 배우자에게 풀면, 부부 싸움 뒤에 아내는 애들을 들볶게 되고, 그 애들은 학교에 가서 자기보다 힘이 약한 만만한 아이를 괴롭힌다. 그러면 그 애는 다시 자기 집에 가서 엄마에게 신경질을 내고, 그 엄마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고, 결국 그 남편은 회사에 가서 아랫사람인 김 대리에게 다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우 교수는 책에서 “사람의 몸과 마음은 고무줄과 같다. 양손으로 고무줄을 팽팽히 당겼다가 바로 놓으면 처음 상태로 돌아가지만, 너무 오랫동안 세게 당기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탄성을 잃고 힘없이 늘어지거나 결국 끊어지게 된다. 너무 오랫동안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소진돼 회복하기 어렵다”고 경고하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선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근래 들어 사무직으로 일하는 화이트칼라가 생산직으로 일하는 블루칼라보다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과거에는 육체적인 스트레스가 강했던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강도가 훨씬 더 세졌다는 설명이다. 물론 환경의 차이와 개인의 주관이 다른 만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경향이 주목받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스트레스 해소도 정신력에서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다.

 

머리로만 해결하려 하면 안 돼

하지만 스트레스를 머리로만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생각만으로 스트레스를 해결하려고 하면 해결이 안 될뿐더러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마인드 컨트롤 자체가 스트레스를 더 유발시킨다. 흔히 마음을 잡으라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마음의 변화는 몸을 통해서야 가능하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심하면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스트레스를 받아 마음이 우울해지는 현상을 몸이 자연스럽게 해결해준다”고 조언했다.

통제할 수 있는 스트레스냐, 통제 불가능한 스트레스냐를 먼저 따져볼 필요도 있다. 김 교수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워낙 다양하다. 그래서 통제가 가능한 것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으면 힘만 들게 된다. 그러한 스트레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최근의 경향이다. 수용력을 길러 주는 치료법인데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수용이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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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전화 어딨지?”…디지털 스트레스 위험수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오른 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깜짝 놀란다. 늘 손안에 있던 휴대전화가 없다. 다른 주머니를 뒤져봐도 마찬가지다. 혹시 누가 중요한 전화라도 하지 않았을까, 초조함이 밀려든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몽실몽실 맺힌다. 지하철 안에서는 뭘 해야 할지 안절부절못한다. 하루 종일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 낭패를 봤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기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DMC미디어가 최근 발표한 ‘2013년 한국인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한국인의 디지털화 지수는 100점 만점에 68.4점이다. 지난해 63.1점보다 5.3점 상승했다. 디지털화 지수가 높을수록 디지털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디지털 기기·미디어 이용 경험은 86.9점으로, 지난해보다 15.6점이나 올랐다. 디지털을 모르면 살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반면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를 실제로 이용하면서 생기는 스트레스 지수는 51.7점으로 지난해 54.3점보다 2.6점 감소하는 데 그쳤다.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가 주위에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정도는 58.7점으로 지난해보다 1.4점 낮았다. 디지털 기기나 미디어의 중독에 의한 스트레스가 여전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손안에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사람이 특별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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