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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13조원 대란’을 꼼수로 막으려고?

by 아나코스 2016. 3. 22.

고액 등록금 주범 기성회비…“법적 근거 없다” 판결 잇따라 


안성모 기자 | 승인 2014.02.20(목) 18:00|1270호

국공립대학의 기성회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기성회비는 본래 일반회계를 보충하는 역할을 해왔다. 과거 국가 재정만으로 대학을 운영하기 어려워 학부모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준 일종의 후원금이다. 사립대는 2000년대 초 폐지한 반면 국립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등록금에서 기성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성회비가 등록금 인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실제 2013년 국공립대학의 등록금 현황을 살펴보면 기성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수업료는 금액이 가장 큰 대학도 80만원에 못 미친다. 반면 기성회비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대부분 300만원을 웃돈다. 서울과학기술대가 연 520만7000원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밭대가 425만400원이었다. 경남과학기술대·경북대·한경대·한국교통대·한국체육대 등도 350만원이 넘었고, 강릉원주대·부산대도 350만원 가까이 됐다. 가장 적은 곳은 한국방송통신대로 64만8500원이었다.

 

반값등록금국민본부와 한국대학생연합 관계자 등이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성회비 폐지와 국공립대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법원은 부산대를 포함한 전국 8개 대학 학생들이 제기한 기성회비 반환 청구 소송과 관련해 ‘현행 기성회비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며 연이어 소송인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법적 근거가 없는 돈을 거둬왔다는 얘기다. 해당 대학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최근 10년간 국공립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줄소송에 나설 경우 대학이 반환해야 할 금액이 13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각 대학 기성회는 파산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기성회비로 교직원 급여 보조

한국방송통신대(방송대) 학생 10명이 제기한 기성회비 전액 반환 청구 소송에 대해 ‘대학이 원고에게 각각 79만2500~396만7000원을 반환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방송대는 국공립대 가운데서도 전체 기성회비 규모가 큰 대학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대학알리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3년 기성회 회계 예산이 1796억원에 이른다. 같은 기간 일반 회계 예산이 84억750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재학생 수는 15만5620명인데, 이들이 내는 등록금 중 대부분이 기성회비다. 등록금 평균 70만2500원 가운데 수업료는 5만4000원에 불과하고 나머지 64만8500원은 기성회비다.

이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74만4100원이다. 기성회비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간판만 국립대지 사실상 기성회 사립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성회비반환추진위원회(추진위)를 운영하고 있는 강동근 대표는 “예산의 80% 이상을 기성회비로 충당한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금액은 10%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대’라는 말이 무색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기성회비는 용도에 맞게 제대로 사용되고 있을까. 방송대는 이미 2010년 종합 감사에서 기성회 회계 내에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 수당을 신설해 총 61억3000만원을 교직원에게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향후 기성회 회계에서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를 지급하는 사례가 없도록 하라”는 교과부장관의 통보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감사원의 재정 운용 실태 감사에서 또 한 번 덜미가 잡혔다. 당시 감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방송대는 문제로 지적된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기존에 지급하던 연구보조비 항목에 포함시켜 총 41억2400만원을 지급했다. 감사원은 “연구촉진장려금과 행정개선연구비를 폐지한 것처럼 하고 해당 금액만큼 연구보조비를 인상해 교직원에게 지급한 행위는 교과부장관의 감사 지적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감독관청을 기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방송대 측은 “지금은 관련 금액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대는 1972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교육 기회를 갖지 못한 국민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국가 차원에서 설립됐다. 그런데 국가의 지원이 뒤처지면서 부족한 비용을 기성회비로 메우고 있다. 2012년 전국 국립대 국고 지원 현황에 따르면 방송대의 국고 지원 비율은 18.9%로 평균 지원 비율 50.6%에 크게 못 미친다.

 

 

회계 통합 법안, 국회에 계류

추진위에 따르면 기성회비는 상당 부분 인건비로 쓰이고 있다. 2007~11년 기성회비의 지출 항목 중에서 인건비 지출이 시설비 지출보다 3배 높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기성회 회계에서 급여 보조성 인건비로 나간 금액이 교수에게 1인당 2314만2000~2433만6000원, 직원에게 1인당 1332만~1926만원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강 대표는 기성회비에서 교수와 직원에게 지급된 수당과 관련해서도 반환 소송을 준비 중이다.

기성회비 반환 소송이 확산되자 대학들은 진퇴양난이다. 재판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현재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관련 법안을 심사 중이다.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안’으로 제10조에 일반회계와 기성회 회계를 통합한 교비 회계를 설치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고로 지원되는 일반회계와 비국고 회계인 기성회 회계로 이원화되어 있어서 대학 재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런데 관련 법안은 이미 여러 차례 논의가 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번 법안도 2012년 7월에 발의됐는데 상임위원회의 심사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했다. 그해 9월 이주호 교과부장관이 국회에서 “이번만큼은 적극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대학 총장들에게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다. 소송에 대비해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기성회 회계를 폐지한다고 해서 학생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서 기성회비가 고스란히 수업료로 통합된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등록금의 경우 법인화되기 전인 2011년에는 수업료 77만9000원에 기성회비 550만2200원을 더해 628만1200원이었는데, 2012년에는 기성회비가 없어진 대신 수업료가 596만9100원으로 껑충 뛰어 전체 등록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2013년에도 마찬가지다.

결국 기성회 회계 폐지에 따른 정부의 지원 방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불법적인 기성회비’가 ‘합법적인 수업료’로 바뀌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가 2월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립대 등록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원인으로 기성회비가 지목된다. 정부가 재정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국립대 재정에서 기성회 회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7년 35.6%에서 2012년 47.5%로 높아졌다. 따라서 기성회 회계를 폐지하려면 국립대 재정을 누가 책임질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법 기성회비’가 ‘합법 수업료’로 바뀔 수도

이번 법안이 결국에는 MB(이명박) 정권 때 강력하게 추진한 국립대 법인화의 한 과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교연은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로 ‘기성회 회계 폐지에 따른 정부 책임 강화 조항이 전무하다는 점’을 들었다. 국립대 운영의 책임을 국가나 대학이 아니라 학생·학부모에게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에 학생·학부모가 부당하게 부담해왔던 기성회비를 정부 지원으로 충당하고, 대학별로 충원해왔던 기성회 직원 또한 국가공무원으로 임용하는 특례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교연은 “정부가 국립대 육성 의지를 표방하기보다 시장주의 정책에 따라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시키면서 국립대의 위상을 더욱 하락시켰다”며 “국립대 운영에 대한 국가의 의무와 권리 범주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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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회는 동네 친목회보다 못하다”

 

기성회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 중 하나는 회비 운영에 대한 불신이다. 방송대에서 기성회비반환추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강동근 대표는 “회원 명부를 달라고 하자 없다고 하더라. 명부도 없고 회원이 누군지도 모른다. 다른 국립대도 비슷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 40여 년간 기성회 총회가 한 번도 안 열린 것으로 안다. 동네 친목회보다 못한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방송대 측은 “동창회 명부처럼 명부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예·결산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이사회를 열어 결정한다”고 밝혔다.

기성회의 임원은 당연직 이사인 총장을 제외한 6명으로 모두 학부모들이다. 그런데 기성회 규약을 살펴보면 제5조에 ‘이 회의 사업 계획은 총장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제15조에는 사업 계획에 대한 예산 편성, 성립된 예산의 집행 등을 총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기성회에서 총장의 권한이 막강한 셈이다. 강 대표는 “총장이 전횡을 하더라도 사실상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국립대에는 공무원 이외에 기성회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방송대의 경우 2012년 3월 기준으로 직원 544명 중에서 공무원 230명, 기성회 직원 314명이다. 공무원은 교육부에서 정원을 배정하지만 기성회 직원은 학교 자체적으로 설정한다. 기성회 회계를 일반 회계와 통합할 경우 기성회 직원들의 지위가 논란이 될 수 있다. 공무원으로 임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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