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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전두환 장인 돈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by 아나코스 2016. 3. 10.

전두환 장인 돈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 


안성모 기자 | 승인 2013.08.29(목) 18:00|1245호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은 사위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 내 후견인이자 재산 관리인이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텨온 전두환 일가는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돈이 나올 때마다 이 전 회장의 유산이라고 떠넘겨왔다. 최근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를 전격 구속하면서 그의 아버지인 이 전 회장의 재산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측 주장대로라면 이 전 회장의 재산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다. 과연 그랬을까. <시사저널>이 전 전 대통령 처가의 재산을 추적했다.


“외할아버지가 결혼 축의금을 167억원으로 불려서 줬다.”

“연금보험 30억원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돈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이 1988년 10월10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재산이 새롭게 드러날 때마다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을 거론했다. 둘째 아들 재용씨의 괴자금도, 부인 이순자씨의 거액 연금도 2001년 작고한 이 전 회장이 남긴 유산이라는 것이다. 현재 수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전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추징 대상인 불법 재산과 무관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전두환 비자금’의 관리자로 지목된 처남 이창석씨의 재산 역시 아버지인 이 전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대로라면 이 전 회장의 재산은 말 그대로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나 다름없다는 얘기가 된다. 정말 그랬을까. <시사저널>은 제5공화국 인사들의 증언과 1960년 이후 각 언론사의 보도 등을 중심으로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전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내용과는 달랐다. 이 전 회장 일가가 군부 내 유력 집안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맏사위가 최고 권좌에 앉기 전부터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들이 사업 등을 통해 부를 일군 흔적도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가 8월1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치소로 향하던 중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규동·규광 형제가 전씨 후견인 역할

이규동 전 회장은 1911년 경북 고령군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1남 6녀를 뒀으나 딸 셋이 일찍 세상을 떠나 둘째 딸인 이순자씨가 맏딸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군 경리관을 지낸 이 전 회장은 광복 후 1946년 35세의 늦은 나이로 육군사관학교(당시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로 입교했다.

여섯 살 아래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동기다. 육사 2기는 40명에 불과하던 1기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한 데다 민간인도 포함된 공개경쟁 시험을 통해 선발됐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총 263명이 입교해 196명이 소위로 임관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희생자 40명을 제외한 156명 중 절반이 넘는 79명이 별을 달았다.

이 전 회장도 무난한 군 생활을 이어갔다. 동생인 이규승씨(육사 7기·대령 예편)와 이규광씨(육사 3기·준장 예편)도 육사 출신이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4·19 혁명 직후인 1960년 4월29일 준장을 끝으로 군복을 벗었다. 이에 앞서 4월11일 당시 자유당 소속 국방위원이던 손도심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육군본부 경리감과 육군 헌병감으로 각각 재직 중이던 이규동·규광 형제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폭로했다. 이 전 회장이 장군 진급을 위해 국고금 4000만환을 빼돌렸는데 이를 감시할 위치에 있는 이규광씨가 형의 비리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예편 후 1961년 농협중앙회 이사, 1965년 대한주정협회 회장, 1975년 반공연맹 경기도지부장 등 비교적 순탄한 사회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에 있지는 못했다. 이 전 회장보다는 동생인 이규광씨가 더 권력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육사 3기 중 단연 두각을 보였지만 4·19 혁명 다음 날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손도심 의원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부하를 시켜 집에 화염병을 던져 방화케 한 혐의로 1961년 4월 구속됐다. 1963년 3월에는 쿠데타 음모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1심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이 전 회장이 1970년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일대 땅을 대거 매입한 것과 관련해 최근 황실 재산이던 국유지를 매매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가로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동생 부부인 이규광·장성희 씨가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된 사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 부부는 1975년 9월 서울지검 동부지청에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고소·고발 사건이 아니라 검찰 인지 사건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부근의 국유지를 불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고 접근해 그 대가로 몇천만 원을 챙겼다는 정보에 따른 수사였다. 이씨 부부는 청와대와 가깝다며 든든한 배경을 과시했다고 한다. 당시 이씨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장씨는 정식 기소돼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3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규동·규광 형제는 전 전 대통령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보를 다룬 경험이 풍부한 처삼촌 이규광씨가 10·26 이후 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 상당한 힘이 됐다는 얘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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