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엮어서 MB 손보나
[1225호] 2013.04.11 19:19:59(월) 안성모 기자
박근혜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MB(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표적이다.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칼날 위에 섰다. 한때 정권 최고 실세로 불렸던 그는 퇴임 직후 출국금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검찰 수사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권력 무상이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도 대대적인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MB 지우기’가 시작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파헤치다 보면 불똥이 MB(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튈 수 있다.” 최근 사정기관 내부 정보에 밝은 한 여권 인사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전직 대통령의 치부까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박근혜 정권이 MB와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원 전 원장과 관련한 의혹은 확실히 짚고 넘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수단체 회원 상대로 한 대선 인터넷 교육 의혹
MB의 복심(腹心)으로 통하는 원세훈 전 원장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행정1부시장을 지냈다. 이 전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는 초대 행정안전부장관에 이어 4년 동안 국정원 수장으로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그런 그가 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검찰 수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야권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원세훈 게이트’라고 부르며 원 전 원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권 내에서도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갈수록 확대되는 양상이다. 당초 한 여직원의 댓글 논란에서 시작된 사안이 국정원의 정치 공작 의혹으로 옮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원세훈 전 원장의 직접 지시에 의해 국정원 직원들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정기관의 한 전직 간부는 “대북심리전단 소속 직원 10여 명이 각자 5명씩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고, 이들에게 매달 100만~200만원의 돈을 지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외부로 드러난 것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대북심리전단이 댓글 작성 이외에 다른 작업도 진행했다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됐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조사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부터 여러 차례 교육이 있었다. 연세가 많은 보수단체 회원들에게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용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아르바이트생 고용’과 ‘보수단체 교육’ 등 제기된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원세훈 미국행’ 소문
원세훈 전 원장 개인에 대한 공세도 강도를 더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이임 서한을 통해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한 해명에 나섰다. 그는 “보안이 생명인 정보기관의 속성상, 일각의 논란과 오해는 속속들이 해명할 수 없었다”며 “언론에 오르내리는 많은 일은 사실과 다르고 편향된 시각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원 전 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원 전 원장의 ‘출국 시도’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의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 해외로 나갈 계획이었다. 3월21일 그가 퇴임한 후 야당을 중심으로 ‘미국 도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를 막겠다는 야권 인사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인천공항 출국장에 진을 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원 전 원장측은 가족이 일본으로 며칠간 온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며, 귀국 비행기 티켓까지 끊었다고 밝혔다. 미국행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원 전 원장이 퇴임 이후 미국으로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 것은 지난해 10월쯤부터다. 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온 한 야권 인사는 “그때부터 관련 제보가 여러 차례 들어와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원 전 원장에게 사실관계를 물어보기도 했다”고 밝혔다. 당시 원 전 원장은 ‘그런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인사는 “원 전 원장이 퇴임 이후를 꾸준히 준비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 움직임이 감지됐기 때문에 확인에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퇴임한 원장의 일을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며 답변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주목되는 부분은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가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원 전 원장이 퇴임을 앞두고 여러 건의 고소·고발을 당하기는 했지만, 국내 최고 정보기관 수장이 퇴임 직후 출국금지 조치를 당할 것이라고는 다들 예상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사정 당국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뿐 아니라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 의혹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정기관 내부 정보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원 전 원장이 해외로 나가면 가장 곤란한 곳은 현 정권이다. 그가 무엇인가를 쥐고 나가 협상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징후가 있으니까 출국금지까지 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원 전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는 현 정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기류가 강하다.
칼자루를 쥔 채동욱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원 전 원장의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 “취임 후 전모를 파악하고 체제를 재정비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채 총장은 취임사에서도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정과 비리를 단죄하는 데 어떤 성역도,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소 원론적인 입장 표명이기는 하지만, 원 전 원장에 대한 수사 강도가 예상보다 높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사정기관 내부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검찰과 경찰에서 내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원 전 원장의 개인 문제까지 들춰내야 정리가 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명박 대통령과 원세훈 국정원장이 정권 출범 초기 해외 순방길에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사정기관 칼끝, 결국 MB 겨누나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경우 그 여파가 MB 정권 전체로 확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원세훈 게이트’를 넘어 ‘이명박 게이트’로 전선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혹시 물 타기 수사로 끝나지 않을까 주시하는 한편, 국정조사 카드까지 꺼내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야권 내부에서는 원 전 원장과 관련한 자금 흐름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원 전 원장이 이른바 ‘MB 비자금’을 관리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원 전 원장은 자금을 잘 조달해 돈 만드는 귀재로 불렸다”고 밝혔다. 만약 이러한 의혹이 확산될 경우 사정기관의 칼끝이 이 전 대통령을 겨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아직은 수사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 예단할 수 없다. 사정기관에서 일했던 한 여권 인사는 “원 전 원장이 비자금을 조성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국정원의 수장이 직접 나서서 그런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정원장 지내며 재산 얼마 늘었나
원세훈 전 원장의 재산은 국정원 수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얼마나 늘어났을까. 3월29일 관보에 게재된 공직자 보유 재산 변동 신고 내역에 따르면, 원 전 원장 본인과 부인 그리고 장남의 재산은 총 33억여 원이다. 지난해 31억8000여 만원보다 1억1000여 만원 늘어났다. 2009년 국정원장으로서 처음으로 신고한 재산은 29억2000여 만원이었다. 그때보다 재산이 3억8000여 만원 불어난 셈이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29억여 원, 2011년에는 31억9000여 만원을 신고했다.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소유한 건물들의 총액이 30억4000여 만원에 달한다. 예금과 유가증권을 합한 금액도 8억4000여 만원이나 되지만 금융회사와 건물 임대 채무가 8억1000여 만원이다.
올해 신고에서는 재산 종류에 변화가 있었다.
우선 2010년식 현대 에쿠스 승용차가 한 대 늘었다. 원래 갖고 있던 승용차는 2006년식 토요타 시에나 한 대였다. 지난해 본인 소유로 신고한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의 근린생활시설은 부인과 절반씩 나눠 공동 소유로 변경했다. 부부 두 명이 합쳐 6000만원인 유명 휘트니스센터 회원권은 계속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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