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춤추는 대입 제도 수험생 울려
혼란 틈타 학원만 돈 잔치
[1227호] 2013.04.25 18:03:31(월) 안성모 기자
한국에서 교육은 ‘오년지대계(午年之大計)’가 된 지 오래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라는 말은 철 지난 옛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면 으레 교육 정책도 뒤집힌다. 특히 대입 정책을 보고 있자면 100년은커녕 5년도 길어 보인다. 한 정권 내에서도 입시 방식은 이랬다저랬다 요동을 친다. “대입을 어떻게 치를지는 자고 나봐야 알 수 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다.
물론 현행 입시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손을 보는 것이 당연하다. 부작용은 최소화시켜야 한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교육 정책의 시험 무대로 삼기에는 그 후유증이 너무 크다. 수치 하나가 바뀌는 데 따라 입시생과 학부모는 갈팡질팡 엄청난 혼란에 빠진다. 그런 만큼 교육 정책은 어떤 것보다 신중히 다뤄야 한다.
2013학년 수시 1차 입학사정관제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토론 면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사들 입시 정보 파악에 한계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엔 전국적으로 입시설명회가 봇물을 이룬다. 유명 학원에서 진행하는 입시설명회의 경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다. 특히 올해 수능은 처음으로 국어·수학·영어에서 난이도에 따라 A·B형을 선택해 치르게 된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늘어난 셈이다.
일반적으로 인문계열은 국어B·수학A, 자연계열은 국어A·수학B를 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영어의 경우 난이도가 낮은 A형과 현행 수준의 B형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3월에 치러진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는 영어 B형을 선택한 학생 비율이 87.2%에 달했다. 중·상위권 대학 대부분이 영어 B형을 필수 반영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수능에서는 A형을 택할 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학생 입장에서는 경쟁에서 밀릴 경우를 대비해 A형과 B형 모두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국어와 수학도 전략적 선택의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문제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에서 이러한 점까지 고려해 교육할 여건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사교육을 맡고 있는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학원 입장에서는 수강료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이 더 많아진 셈이다. 입시컨설팅업체에게도 유료 상담 항목이 더 늘어났다.
하병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교사들이 입시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학생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니까 입시 전문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택형 수능의 부작용도 우려했다. 그는 “학생 수준에 맞게 교육하고 시험을 치게 하자는 게 취지인데, 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뽑기 위해 B형을 고집하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이런 점을 예견하지 못했다면 무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4월13일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2014학년도 입학 전형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입학사정관제 불신 여전
MB(이명박) 정부 때 대입 정책은 ‘학생 선발 자율화’에 맞춰졌다. 대학이 저마다의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대입 전형이 3000여 개에 이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올해 자녀를 대학에 보낸 한 학부모는 “대입 전형을 어떻게 할지 학부모가 판단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 모집 요강만 봐서는 도저히 어떻게 뽑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적성을 고려해 진로를 선택하면 된다고 하는데, 실제 대학에서는 수능도 잘 봐라, 논술도 잘 써라, 그리고 학생부도 보겠다고 한다. 모든 걸 다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푸념했다.
MB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입학사정관제도에 대한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박이선 참교육학부모회 정책위원장은 “학생 입장에서 입학사정관이 뭘 보는지를 모르니까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어디를 지원해야 하는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대학 마음대로 학생을 뽑는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입학사정관용 경력 쌓기’는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일상적인 용어가 됐다. 부모가 한 학기 동안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하니까 나중에 봉사 시간이 합산돼 자녀 이름으로 등록이 됐다거나, 부모가 제빵학원에서 수강을 하고 자녀는 집에서 빵 만드는 사진 한 장 달랑 찍어 제출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부지기수다.
전형 간소화, 학생 부담은 그대로
입학사정관제 자체는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무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대변인은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입학사정관제가 필요하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잘못된 점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하지만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한다면 점수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문제를 푸는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정부가 앞으로 펼칠 교육 정책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대입 전형을 간소화하겠다는 입장은 여러 차례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현재 전형 수가 무려 3000개가 넘어 학생·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사들도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것부터 고쳐나가는 게 개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같은 이유를 들며 “대입 전형을 단순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교육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간소화라고 하는데, 그냥 전형의 이름만 바뀌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학마다 다른 전형 이름을 통일하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학생 입장에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무성 교총 대변인도 “전형을 간소화해도 학생 부담은 그대로다. 모든 걸 다 준비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또 “겉으로는 간소화라고 하지만 대학에서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 학교 자율성을 막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공약한 ‘대입 전형 변경 시 3년 전 예고 의무화’도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3년 전 예고’라는 형식적인 시간에 묶여 왜곡된 입시 제도에 대한 개선이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변화를 주면 혼선이 온다고 해서 개혁 자체를 미루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입 제도가 자주 바뀌는 데 따른 피로감은 분명하지만, 이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데 따른 실망감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상위 학생 중심의 틀 속에서 바뀌어 봐야 그게 그것이라는 허탈감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이선 위원장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려면 수능 등급이 평균 2.2~2.3은 돼야 한다. 나머지 학생들은 다 들러리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설익은 ‘중학교 자유학기제’ 성공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교육 정책 중 하나는 ‘중학교 자유학기제’다. 중학생들이 과도한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적성과 소질을 찾도록 한 학기 동안 강의 수업 대신 다양한 진로·예술·체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과 그 이듬해에는 희망 학교에 적용하고, 2016년부터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학기라도 지나친 공부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발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현재 상태로는 제대로 된 진로 교육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 입장에서 보면, 자원은 부족한데 실적은 내야 하니까 억지 프로그램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좋기는 한데 꿈과 적성을 찾아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가 마련돼 있는지 궁금하다. 단지 시험 부담 없이 한 학기를 보내는 것이라면 학원에 보내 공부를 더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행한 보고서에서 자유학기제가 교육 격차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준비·수행·참여하고 체험 중심으로 운영되다 보면 교육 인프라 부족에 따른 교육 격차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수능 시대=수난 시대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됐다. 이때부터 학력고사 대신 수능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수능은 여러 차례 수난을 겪었다. 사실상 2~3년마다 한 번씩 변경되면서 입시 현장에 혼선을 안겼다. 첫 수능부터 논란이 됐다. 8월과 11월 두 차례 시행됐는데, 난이도 실패 등으로 혼란이 생기자 이듬해부터 한 차례로 바뀌었다.
만점도 처음에는 200점이었다가 1997학년도부터 400점으로 변경됐고, 2005학년도에는 탐구과목 4개 응시 기준 500점으로 상향됐다. 성적 통보 방식을 놓고 혼선을 빚기도 했다. 2003학년도 수능에서 수험생에게는 소수점까지 표기해 성적을 통보하고 대학에는 반올림한 점수를 제공해 점수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이듬해부터는 문항별 배점을 모두 정수로 바꿨다. 1년 만에 뒤바뀐 경우는 또 있다. 2008학년도 수능에서는 표준점수까지 없애고 등급만 표기했는데, 변별력 논란이 일자 이듬해부터 다시 표준점수를 성적표에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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