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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경제

로비 연결 고리가 된 ‘대우 인맥’

by 아나코스 2015. 6. 7.

의혹의 핵심 인물 이정배·이동율·박영준 3인 모두 대우 출신

건설업계에도 ‘대우 파워’ 막강 
 
[1176호] 2012.05.03  18:20:50(월)  안성모 기자

 

이정배 전 대표가 같은 대우건설 출신인 최성남 회장과 함께 설립한 넥서스건설의 사무실. ⓒ 시사저널 박은숙

 

파이시티 로비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대우 인맥’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룹이 해체된 지 15년 가까이 되었지만 대우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대우맨’이라는 자부심으로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와 이동율 디와이랜드건설 대표도 대우건설에서 일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로비 창구로 지목받고 있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전략팀장 출신이다.

‘대우 파워’는 특히 건설업계에서 막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매각을 반복하며 부침이 심했던 대우건설은 ‘인재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출신 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지금도 대형 건설사 CEO 중 상당수가 대우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대우맨들이다. 특히 디벨로퍼(부동산 개발 사업) 분야는 대우건설 출신들이 업계를 선도해왔다.

 

다른 대우맨들 회사도 상당수 파이시티 관여

‘디벨로퍼의 대부’로 불리는 최성남 넥서스건설 회장이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최회장은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 초창기 임원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진출해 대우건설 주택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회사를 나와 1998년 넥서스건설을 설립한 그는 이듬해인 1999년 서울 영등포 OB맥주 공장 부지를 개발해 ‘영등포 대우 드림타운’ 분양에 성공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정배 전 대표가 넥서스건설 설립 때부터 최회장과 함께 일했다는 점이다. 이 전 대표는 1983년 대우건설에 입사해 1993년 과장으로 퇴사한 후 우림건설에 스카우트되어 전무와 부사장을 지냈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우림건설에서 나온 그는 최회장과 함께 넥서스건설을 설립했다. 이 전 대표 역시 최회장과 마찬가지로 ‘성공 신화’의 주역으로서 승승장구했다. 넥서스건설 대표를 맡았던 그는 지금도 등기부등본에 사내이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 넥서스건설은 파이시티의 특수관계회사이기도 하다.

최회장과 이 전 대표는 대우건설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도 고려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나이 차이가 열두 살이 나지만 대학과 회사 모두 선후배 사이로 인연이 남다른 셈이다. 최회장은 업계에서 인맥이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 출신 모임인 ‘우건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우건회는 회사에서 퇴직한 임원을 정회원으로 두는 한편, 현재 근무하고 있는 임원의 경우 특별회원 자격을 주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넥서스건설 이외에도 파이시티에 관여했던 회사 중 상당수가 대우건설 출신들이 대표로 있던 회사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대우건설이 배출한 잘나가는 부동산 개발업자 상당수가 개발 이익이 1조원에 이른다던 파이시티 사업에 참여한 셈이다. 김종은 우인플래닝 대표, 김광식 태화플래닝 대표, 김양곤 시우피앤디 대표, 김창민 씨엠케이건설 대표 등이 대우건설 출신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파이시티 사업이 난항을 겪는 과정에서 이름과 대표가 바뀌거나 사무실을 이전한 회사도 여럿 되었다.

 

(왼쪽부터)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시사저널 유장훈), 류철호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연합뉴스),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 시사저널 박은숙)


공기업 대표 등 인사에 ‘대우 커넥션’ 소문도

거액의 로비 자금을 전달한 이동율 대표는 이 전 대표보다 앞서 1978년 경력사원으로 대우건설에 입사했지만, 1987년 차장으로 승진한 뒤 대우전자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부터 이에이디자인의 대표를 맡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테리어 전문 회사인 이에이디자인은 대형 건설사와 백화점, 은행 등으로부터 수주를 받아온 연 매출 3백억원 정도의 중견 업체로 알려졌다. 가장 큰 고객은 대우건설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가까이 된다고 한다. 이대표는 이 회사와 별도로 2006년 디와이랜드건설을 설립했다.

이동율 대표와 이정배 전 대표는 5년 정도 같은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근무할 당시에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맡았던 업무가 달랐던 데다가 고향도 영·호남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대표는 경북 포항 구룡포, 이 전 대표는 전북 익산 출신이다. 이 전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대표와 처음 만난 시점은 2004년 9월쯤이라고 했다. 이대표가 사무실로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대우에서 같이 근무한 사이이지만 그 시절에는 몰랐는데 대우에서 내가 가장 존경했던 선배가 소개해줘서 만난 날 바로 의형제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출신인 데다가 믿을 수 있는 ‘대우 인맥’을 통해 소개받았기 때문에 곧바로 친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이듬해인 2005년 1월쯤 이대표와 함께 박영준 전 차관을 만났다. 박 전 차관이 서울시 정무국장에 막 부임했을 때였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이후 1년 반 정도 기간 동안 11~12차례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영준이가 대학 후배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차관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1986년부터 대우그룹에서 9년간 근무했다. 이후 이상득 의원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 전 대표와 박 전 차관은 고려대 학맥과 대우 인맥이 겹치는 사이인 셈이다.

청와대에서 ‘왕비서관’, 정부에서 ‘왕차관’으로 불리며 정권 실세로 통했던 박 전 차관은 대우건설과 관련한 소문이 나올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렸다. 현 정권 초기부터 업계 안팎에 소문이 무성했다. 청와대 인사가 도로공사 관계자에게 ‘대우건설 수주’를 청탁했다는 소문이 나도는가 하면, 류철호 대우건설 부사장이 도로공사 사장에 임명된 것과 연결 짓는 시각도 있었다.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에게 상품권 1천만원어치를 준 서종욱 대우건설 사장이 연임에 성공한 막후에도 정권 최고 실세와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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