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정 경제

“아무리 교묘해도 탈세는 탈세다”

by 아나코스 2015. 4. 27.

권혁 회장 세금 탈루에 대한 국세청 입장

“수법 치밀…탈세 행태의 본질 종합적으로 보아야” 
 

[1122호] 2011.04.18  12:05:02(월)  안성모


국세청은 올해 ‘역외 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역외 탈세 행위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추적해서 과세를 하겠다”라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이 직접 칼을 빼들었다. 2009년 국세청 차장으로서 이례적으로 역외 탈세추적전담센터장을 자원했던 그는 그동안 국제 공조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해왔다. 지난해 8월 청장에 취임한 후 관련 예산 확보에 나섰고, 올해 초 역외 탈세 전담 조직인 역외 탈세담당관실을 출범시켰다.

국내 거주자라면 외국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외국에서의 소득은 감추기 쉽다는 점을 악용해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역외 탈세이다. 국내에 감춰진 소득은 상속이나 증여 등을 통해 언젠가 노출이 되지만, 해외로 나간 소득은 거의 국내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당국 입장에서는 가장 악질적인 탈세로 간주한다.

 

 

국세청 ‘역외 탈세와의 전쟁’ 첫 결과물

국세청은 올 한 해 동안 1조원의 역외 탈세를 추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4월11일 그 첫 작품이 발표되었다. 총 41건에 대한 세금이 4천7백41억원에 이른다. 특히 권혁 시도상선 회장을 상대로 무려 4천1백1억원을 추징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역외 탈세 단일 추징액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이다.

국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권회장은 선박 임대와 해운업 등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소득을 어느 국가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채 조세 피난처에 은닉해왔다. 1백60여 척에 달하는 배를 소유한 ‘선박왕’이 수천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탈세왕’이었던 셈이다.

국세청이 밝힌 권회장의 탈세 수법은 치밀했다. 우선 자신의 신분을 국내 비거주자로 위장했다. 주민등록상 주소와 실제 거주지 주소가 달랐다. 서울 모처에서 수년째 생활하면서 임대차 계약서를 친·인척 명의로 허위 작성해 국내 거주 장소를 은폐했다. 경영 활동도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서울에 있는 회장 집무실 등에서 휴대용 저장 장치(USB)와 구두 지시를 통해 회사 전반에 관한 경영 활동을 수행했지만 형식상 대표이사를 사임해 국내 경영 활동 사실을 감추었다.

국내 자산도 숨겼다. 권회장은 아파트와 상가, 주식 등 국내 보유 자산을 해외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명의만 이전해 보유 사실을 은폐했다. 이렇게 탈루한 소득은 스위스 은행을 비롯해 케이먼 군도, 홍콩 등 해외 계좌에 보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권회장이 철저한 비노출 정책을 유지한 것도 과세 당국에 세원이 포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언론과의 인터뷰 등 일체의 공개적 활동을 피하고, 비거주자로 위장하기 위한 세무 컨설팅도 정보 유출을 우려해 해외 회계 법인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탈루 소득으로 국내 사업체 등 인수

사업체는 외국 법인을 앞세웠다. 국내에서 영업과 운항 등 해운 사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도 조세 피난처인 바하마에 사무실과 직원이 없는 회사를 설립해 이곳에서 해운업을 운영하는 것으로 했다. 이 회사를 운영 주체로 내세우는 데 한계가 있자, 홍콩에 별도의 해운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홍콩에 설립한 회사에는 경리 직원 일부만 근무하고 해운 사업의 핵심 조직인 영업 및 운항 직원은 없었다.

권회장은 사업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관리 및 사업적 의사 결정을 국내에서 수행하면서도, 형식적인 대리점 계약을 통해 실질적인 관리 장소가 국내에 없는 것으로 위장했다. 해운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관련 계약서 및 대금 청구서 등 거래 증빙 자료는 홍콩 회사로 이송해 보관했다.

국세청측은 또 “권회장이 국내 조선사로부터 선박 발주에 따른 리베이트를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우회 수취해 은닉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탈루 소득으로 국내에 호텔을 짓고, 사업체를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해왔다. 선박과 해외 부동산도 취득했다. 이 또한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이번 권회장의 경우 기존에 적발된 탈세 수법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적으로 역외 탈세는 국내에서 납세를 하고 있는 거주자가 비자금 조성 등을 목적으로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소득을 빼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적발이 되면 과세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권회장은 자신이 국내 거주자가 아니라며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 소득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지더라도 납세의 의무가 없다는 식의 모양새를 만들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빠져나갈 수는 없다. 탈세 행태의 본질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