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상인·중국 내 북한 주재원·북한 내 정보원이 거래 주축
금액 따라 정보의 질 달라져
[1113호] 2011.02.14 23:12:28(월) 안성모 기자
북한 내부 정보를 둘러싼 ‘쩐[錢]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무대는 국경이 맞닿은 중국이다. 좀 더 정확한 정보를 한 발짝 앞서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거래되는 정보는 다양하다. 식량 사정과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군의 동향과 같은 기밀 사항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이곳에서 정보는 곧 돈이다. 그런 만큼 얼마를 지불하느냐에 따라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중국을 자주 오가는 한 탈북자 인권 단체 대표는 “대북 정보력에서 일본이 우리를 앞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만큼 비용을 쓰기 때문이다. 일본이 여덟 배는 더 낸다고 보면 된다. 한국은 수고비 정도도 안 나온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 정보를 외부로 전하는 정보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시사저널>은 대북 정보에 밝은 탈북 단체 인사들을 통해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원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 과정에서 몇 해 전까지 북한 내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한 한 탈북자를 직접 만나 한국의 정보 기관과 연계된 대북 정보 활동에 관한 증언을 들었다.
정보원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정보 수집 능력에서 차이가 난다. 먼저 북한을 상대로 무역을 하는 조선족 상인들이 있다. 거래처를 통해 북한 내부에 휴대전화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들이 북한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주민들의 생활상 등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
좀 더 가치 있는 정보는 중국에 있는 북한 기업의 주재원들에게서 나온다. 현재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국적의 주재원은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일종의 파견 공무원인 셈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외부로 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탈북 단체 관계자는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으로 왔지만 활동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미리 정보를 가지고 나와서 흥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전했다. 주민을 대상으로 한 강연 책자, 북한 전 지역의 연락처가 담긴 전화번호부 등 다양한 정보가 거래 품목에 오른다. 원본 자료를 가져오면 더 많은 보상이 따른다고 한다.
정보를 거래하는 북한 주재원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북한에서 군 간부를 지낸 한 탈북자는 “보통 건실하고 충성심 강한 사람을 주재원으로 내보낸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그만큼 북한 내부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이미 돈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군복까지 챙겨가지고 나오는 주재원이 있는 이유이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해 11월25일 중국 단둥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북한 국경 도시 신의주의 한 초소 옆에서 한 북한 군인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는 한국 정보 기관과 연계해 활동
가장 긴밀한 정보는 북한 내부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이 주로 다룬다. 탈북자 김 아무개씨는 2008년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까지 4년여 동안 북한에서 정보원 생활을 했다. 고객은 한국의 정보 기관이었다고 한다. 방식은 간단했다. 김씨는 “남한 기관의 요원이 임무를 주면 활동 계획서 같은 것을 작성한다. 여기에 맞추어 정보를 수집한 후 중국으로 와 자료를 넘겨주면 된다. 일이 끝나면 활동 계획서는 소각해 없애버린다”라고 밝혔다.
북한 내부에서 정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능력이 필요하다. 차량도 있어야 하고 촬영 장비도 갖추어야 한다. 임무를 띠고 활동하는 만큼 항시 위험이 따른다. 김씨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여러 번 맞았다고 했다.
한 번은 항공 사진으로 찍힌 미사일 발사 지역의 정보를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다. 눈 덮인 산을 빙빙 돌아 현장에 도착해 촬영을 했는데, 여기가 사진에 나온 곳이 맞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명이 적힌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소달구지를 끌고 가던 주민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다. 그는 “산 위로 엄청 뛰어올라갔다. 통보가 되어 붙잡히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건너오게 된 것도 정보 활동을 하면서 발생한 일 때문이라고 한다. 평소와 같이 중국에서 한국의 정보 기관 요원을 만나 카메라 메모리칩에 담아온 정보를 넘겨주고 있는데, 갑자기 중국 공안이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그는 “19시간 만에 풀려나 북한에 전화를 해보니 이미 체포령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남한으로 왔다”라고 밝혔다.
한국 정보 기관의 요청에 따라 탈북자 중에서도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정보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는 “정보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에 파견하는 정보원은 없을 것이다. 해당 일을 맡은 담당자가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이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보상을 받으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말썽이 일기도 한다.
김씨는 “법원 소송까지 간 경우도 있다. 탈북자는 정보 기관이 시켜서 북한에 갔다 왔다고 주장하지만, 정보 기관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탈북 브로커 일도 하던 탈북자였는데 이로 인해 출국 금지를 당했고, 결국 돈벌이를 못 하니까 빚쟁이들에게 기는 신세가 되었다. 차라리 그때 비밀을 지키는 것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역정보 퍼뜨리는 ‘이중간첩’도 설친다
▲ 중국 세관을 거쳐 단둥 시내로 들어온 북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길을 건너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에서 유통되는 북한 관련 정보들 중에는 ‘거짓 정보’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정보 수요자는 물론 공급자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사실과 다른 내용도 정보 시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일부는 북한 정권측의 역정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보 기관에서 섣불리 정보 판단을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중간첩’으로 의심되는 정보원들도 적지 않다. 주로 북한 내부에서 활동하는 정보원들이 그 대상이다. 우선 북한에 정착해 생활하면서 정보 활동을 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한 탈북 지원 단체 대표는 “군 장교나 보위부 요원 등을 심어서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는데, 이러한 ‘북한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정보가 새 나간다는 것을 다 알고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정보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로 꼽힌다. 북한 정보에 밝은 한 탈북자는 “아직까지도 북한 내부는 통제가 심하기 때문에 숨어 살면서 활동은 못 한다. 그렇다고 월북을 하면 집 한 채와 정착금 3만원을 주는데, 이 돈으로는 한 달도 못 산다. 이런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북한으로 넘어갔다면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가져오는 정보는 역정보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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