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탁번 시인(충북 제천)
“해 지는 서쪽, 고향은 내 몸의 일부”
[1091호] 2010.09.13 15:42:39(월) 안성모 기자
우리에게 진정한 휴식과 편안함을 주는 것은 자연이다. 한가위를 맞아 고향으로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야트막한 산과 너른 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시사저널>은 추석을 맞아 팍팍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생명의 본향을 찾아 시골로 간 유명 인사들을 찾아보았다.
ⓒ시사저널 박은숙
‘내가 사는 애련리(愛蓮里)의 삼절(三絶)은 / 제비, 수달, 반딧불이다. /
나는 이제 / 제비똥, 수달똥, 반딧불이똥이나 돼야겠다’.
충북 제천시 백운면 애련리, 천둥산과 박달재 사이 수줍은 야생화가 숨어 있는 곳.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67)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다.
오교수는 지난 2003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년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노년은 자연과 벗하고 살자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가난했던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적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못생긴 산도, 물 마른 개천도 마치 몸의 일부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전원주택은 애초부터 싫었다. 모교인 백운초등학교 애련분교에 원서문학관을 차렸다. ‘먼 서쪽’을 의미하는 원서는 백운면의 조선 시대 지명이다. 제천에서 가장 서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교수는 “서쪽으로 해가 지지만 그때부터 해는 다시 뜨기를 준비한다. 소멸이면서 시작이다”라고 설명했다.
적막했던 작은 폐교는 따스한 문학 쉼터로 바뀌었다. 운동장에 야생화를 심어 정원을 가꾸고, 옥수수와 고구마가 자라는 텃밭도 마련했다.
생활은 사택에서 하고 있다. 오래된 집이지만 손질을 해서 불편함이 없다. 관리인은 따로 없다. 오교수와 한림대 교수인 부인의 몫이다.
원서문학관에서는 매월 시낭송회가 열린다. 또 해마다 가을이면 ‘시의 축제’가 개최된다. 충청 지역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문인들이 발걸음을 한다. 지난해까지 다섯 차례 열렸다. 축제 기간에는 지역 농산물 장터도 열려 고향 주민들도 함께 즐긴다. 한글날에는 백일장도 치렀다.
오교수는 문학 계간지 <시안>을 13년째 내고 있다. 올해 3월까지 2년 동안 한국시인협회장도 맡았다. 그런 만큼 여느 때보다 서울을 자주 오갔다. 이제 회장직에서 물러나 다시 고향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일과는 농부와 다를 바 없이 일찍 시작된다. 텃밭을 가꾸고 산책을 하고 글을 쓴다.
오교수는 “새싹이 올라오면 교실 안에서 글을 쓸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밖이 궁금해서다. 그래서 꼭 써야 할 글이 있으면 커튼을 친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 무엇이든지 신기하고 궁금하듯이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 때로 돌아간다. 솔잎에 맺힌 빗물도, 처마에 달린 거미줄도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향의 자연은 살아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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