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도공 서란》으로 돌아온 손정미 작가
안성모 기자 승인 2019.10.13 11:00 호수 1565
손정미 작가가 고려의 청자와 귀주대첩을 축으로 하는 역사소설 《도공 서란》을 출간했다. 삼국통일 직전의 신라를 무대로 한 《왕경(王京)》과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일대기를 다룬 《광개토태왕》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고려 전기를 배경으로 소녀 도공 서란이 진정한 청자도공이 되는 드라마틱한 성장기와 외세의 위협에 맞섰던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과 서희의 활약상을 담았다.
손 작가는 22년간 기자 생활을 하다가 2012년 작가의 길로 나섰다. 문화부 기자 시절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를 꿈꿔온 그는 오랜 우상이던 박 선생이 자신의 습작을 본 후 “글을 써도 되겠다”고 한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10월2일 오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치밀한 고증을 기반으로 한 ‘고려의 풍경’을 안고 돌아온 손 작가를 만났다.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작가로 나선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교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끊이지 않고 습작을 해 왔다. 신문사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워낙 바쁘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문학 담당 기자로 있을 때 《토지》를 완간하신 박경리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원주 자택을 찾아갔다. 박 선생님은 저의 오랜 우상이셨다. 너무 존경스럽고 너무 훌륭하신 작가를 뵈니까 옛 꿈이 생각나 용기를 내서 습작해 둔 단편을 보여드렸다. 선생님께서 만약 글을 보시고 ‘작가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면 깨끗이 단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글을 보시고 집으로 전화를 주셨다. ‘글을 써도 되겠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큰 용기를 얻게 됐다. 이후에도 고민을 계속했지만 죽기 전에 후회 않으려면 하고 싶은 거 해 보자는 결단을 내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주변의 반대가 많았지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서서 그만둘 수 있었다. 신문기자도 글을 쓰는 거니까 연장선상에 있다. 박경리 선생님도 원래는 신문기자셨다. 기자라는 게 글쓰기의 탄탄한 훈련 과정이라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같은 글쓰기지만 기사를 쓰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기사는 팩트만 있으면 되지만 소설은 기본적으로 창작이다. 물론 역사소설의 경우 팩트가 중요하다. 그렇지만 생선 한 마리를 사서 화려한 궁중음식으로 만드느냐 말려서 북어로 만드느냐는 정말 하기 나름이다. 창작을 어떻게 가미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다. 일종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를 어느 인물을 어떤 사건을 쓸 것인지, 또 그 당시 생활은 어땠는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고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이번 《도공 서란》 같은 경우 11세기 초반 고려 시대가 배경인데 귤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 시절에 실제 귤을 먹었는지 고증을 해야 한다. 지명 같은 경우 지금의 강진이 나오는데 그때는 탐진이라고 했다. 그런 지명도 다 고증을 해야 한다. 공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이번에 출간한 《도공 서란》을 간략히 설명해 달라.
“고려시대 하면 고려청자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이 책은 고려시대의 청자와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두 가지를 축으로 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어떻게 고려청자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됐는지 연구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귀주대첩 하면 단순히 큰 승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연구를 해 보니까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걸 제대로 조명하지 못해서 너무 평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체적으로 역사적 맥락에서 더 돋을새김을 하느라 심혈을 기울여 썼다. 서란이라고 하는 16살 소녀가 개경에서 다점을 경영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거란이 세웠던 요나라까지 갔다가 돌아와서 진정한 청자도공이 되는 과정, 그리고 귀주대첩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는지가 전개돼 있다.”
왜 역사소설을 쓰게 됐나.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역사소설을 쓸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학창 시절 연도를 달달 외우는 국사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설을 쓰겠다고 하니까 저 자신과 또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정체성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지, 이 사회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역사 공부를 해 보자 결심을 하고 시작했는데 그동안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었고 또 너무 드라마틱하다는 걸 알게 됐다. 소설로 재미있게 쓰면 좀 더 많이 공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 공부는 정말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요즘 그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는 것 같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게 많아 보인다. 사료를 살펴야 하고 역사적인 현장도 답사해야 하고 공이 많이 들어갈 것 같다.
“《도공 서란》의 경우 일단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고려 관련 중요한 역사서를 봐야 한다. 요나라 역사서인 《요사》도 봤다. 우리나라 역사서만 보면 편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귀주대첩을 요나라에서는 어떻게 봤는지 보다 객관적으로 알고 싶어서 중국 역사서도 본 거다. 문인들이 낸 문집들도 봤다. 당시 생활상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복식, 음식, 건축, 무기 등등. 개경이 북한이라 못 간 게 제일 아쉽긴 한데, 몇 년 전 다행히 금강산 쪽은 가봤다. 거란 지역인 내몽고도 다녀왔고, 송나라 수도였던 지금의 개봉도 갔다 왔다. 준비하는 데 2년 반 정도 걸렸다.”
이번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
“고려는 굉장히 당당하고 또 활력이 넘치는 사회였다. 그런 힘을 바탕으로 거란이라는 초강대국을 물리칠 수 있었다. 또 고려청자를 비롯해 팔만대장경, 《직지심경》 등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를 꽃피웠던 시기다. 지금 우리나라가 약간 무력감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미국에 치이고 중국의 냉대를 받고 일본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있는데 우리의 과거 굳건했던 시절을 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어’ 하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에서 그런 힘과 교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꼭 쓰고 싶은 건 고조선 소설이다. 그전에 백제를 한번 쓰게 될지도 모르는데, 일단 백제에 대해 공부해 봐서 해 봐야겠다 싶으면 백제를 한번 써볼 생각이다. 백제도 정말 찬란한 문화를 자랑한다.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만한 게 백제 이야기인데, 쓰려면 엄청 공부를 많이 해야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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