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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문화

[인터뷰] 이문열 작가가 말하는 ‘보수의 길’

by 아나코스 2020. 5. 6.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승인 2019.06.17 15:00  호수 1548

 

“글쎄, 할 얘기가 특별히 있는 건 아닌데….”

작가의 휴대전화 벨이 연신 울렸다. 전화를 끊으면 곧바로 또 전화가 오는 식이었다. 그럴 때마다 “할 얘기가 있는 건 아니다”는 작가의 말이 호탕한 웃음소리에 뒤섞였다. 간간이 한숨을 짓기도 한 작가는 서울에서 온 취재진을 반갑게 맞았다.

시사저널이 소설가 이문열 작가와의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을 찾은 건 6월7일 오후 1시30분경이었다. 부악문원은 이문열 작가가 30여 년간 머물며 집필활동과 후진 양성을 해 온 문학사숙이다. 그동안 문인뿐 아니라 사회각계 인사들이 작가를 만나러 이곳을 찾았다.

취재진의 방문 시기가 묘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다음 날 아침 8시 이곳에 들러 이문열 작가와 ‘차담’을 나눌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작가의 휴대전화에 불이 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황 대표와의 만남을 사전 취재하려는 기자와 방송에 섭외하려는 작가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황교안 대표 정치 신병치고 전투력 있어 보여” 

자연스럽게 근황을 묻는 대신 차담을 첫 질문에 올렸다. 황 대표와의 만남은 어떻게 성사된 걸까. 이문열 작가는 “그전부터 한번 보자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침 황 대표가 이 근처에 일정이 있었다”며 “만찬이나 조찬을 할 수 있느냐 해서 가시는 길에 차나 한잔하자고 한 거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가 직접 찾아온다고 하니 무슨 얘기를 나눌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황 대표에게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2~3일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예정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갑작스럽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좀 등한한 편인데, 오신다고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지금부터 생각하고 있는 중이에요.”€

특별히 생각해 두신 말씀은 없다는 거네요.

“지금부터 생각하는 중인데, 현실적인 부분은 황 대표가 일을 훨씬 더 많이 벌였고, 만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더 잘 파악하고 있을 거예요. 제가 뭘 얘기해 주기보다는 들을 게 훨씬 많을 겁니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듣고 싶어요, 오히려. 많은 분들이 여길 오시는데 제가 해 줄 얘기가 있고 훈수 둘 게 있어서 오라는 게 아니라 상대방 얘기를 듣는 게 좋아서 오라는 겁니다. 그런 기준을 정하고 만납니다. 제가 지금 정치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런저런 사람들이 수군거리겠죠.”€

자유한국당이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황 대표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어떤 구체적인 요청을 받는다고 해도 아마 다 밝힐 수는 없을 거고, 실제로 제가 할 일도 없을 거예요. 본인들도 판을 짜 가지고 나름대로는 일사불란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니까. 다소간에 시행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황 대표도 정치 신병치고는 순발력 있게 잘하더만. 제법 전투력도 있어 보이고.”

황 대표는 보수진영에서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행보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황 대표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계속 성공할지 그건 모르죠. 정치라는 게 그렇잖아요. 아직 판이 끝난 게 아니고 지금 현재는 대표죠. 나중에 (대선후보를) 정할 때 그 말을 탈 수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가 아직 남아 있고. 바깥 변수가 그리 많은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아직 이쪽저쪽이 다 날아간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선거를 2~3년 앞두고 빛났던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 대선을 얘기하기는 너무 이르죠. 아직 3년이 남았지 않습니까.”


“총선 전후 이합집산 변화 많이 생길 것”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얼결에 그리 됐죠. 호된 맛도 많이 봤고. 그게 빌미가 돼 가지고 지금도 저를 가장 정치적인 작가로 만들어놨죠. 그런데 저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도 알 거예요. 그 뒤로 정치 모퉁이 어디에도 한 번 서 본 적이 없어요.”

공천심사위원 하실 때 보인 모습이 강렬했기 때문 아닐까요. 정치권에도 그랬고 국민에게도 그렇고.

“글쎄, 강렬한 건 아닐 텐데. 저는 그때도 어리둥절했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사건인지 몰랐어요. 공천심사위원이라는 게 정식 직책도 아니고 단기간 참여하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위원 15명 중 1명일 뿐이었죠. 그런데 이후에 인터넷을 보면 제가 (작가로 살아오며) 한 게 참 많은데 그런 건 아무것도 없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한 것 그것만 딱 나와요.”

정치에 직접 참여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셨죠.

“예 그렇죠. 그런데 지금도 그 인상이 남아 있고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뭐 어쩌고 그래요. 도대체 제가 뭘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웃음).”€

그 후에도 보수 정치권에서 도움을 청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령 작년에는 홍준표 전 대표가 포럼 고문을 맞아 달라 요청한 걸로 압니다.

“가끔씩 그래요. 그런데 그 뒤로 온 건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큰 도움이 되지도 못했을 거예요. 제가 참여할 준비가 돼 있고 도울 준비가 돼 있을 때 오면 다를 건데 갑자기 휩쓸리게 되면 ‘어어’ 하다 지나간다고. 앞으로 정치권이 어떻게 될지,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지만,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보고 있는 겁니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일도 마찬가지였나요.

“뭐 물망에 오른다고 하는데 그건 사실 제가 보기에 심심하면 이용해 보고 찔러보는 거 아닌가 싶어요. 참, 사람 우습게만 만들고. 저의 영향력이나 발언력이 증대될까 겁내는 세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총선을 전후로 정치권이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문열 작가도 “이래저래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변화가 많이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황교안 대표 체제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이 공천을 놓고 내부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 공천 관련 경험이 있는 그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을까.

“친박 병합 문제가 튀어나올 거예요, 싸움이 나기 때문에 지금은 약간 나눠져 있는 게 바로 솟아오를 겁니다. 그때쯤 되면 한 지역구에서 중복되는 후보들이 많을 거예요. 그러면 누가 공천권을 가지느냐를 놓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텐데, 황 대표가 정확히 처리해서 넘어가야 할 일이죠.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을 겁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도 다툼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때는 상당히 괜찮았던 것 같아요. 공천심사위원회를 잘 따라주고 거의 절대적인 권위를 줬으니까. 저항할 수 없었던 게 첫 번째로 공천을 배제한 게 최병렬 대표였어요. 최 대표도 각오하고 있어서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천심사위원회 결정에 반발한 건 제 기억에 없어요.”

최근 몇 번의 선거에서는 반발이 굉장히 심했는데, 공천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참 어렵죠.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게 개개인에게는 정치적 생명이 걸린 건데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1차적으로 경선을 거쳐야 할 거예요. 공천권을 누가 쥐느냐가 중요하겠지만 이번에는 50% 이상 그래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적폐만 쌓여왔다면 우리 사회 발전할 수 없어”


그동안 이문열 작가는 보수진영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을 해 왔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보수는 죽어야 한다. 그래야 빨리 부활할 수 있다. 그런데 죽으려고 하지 않으니 다시 살아날 수가 없는 거다”라는 그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슨 의미일까.

“말 그대로 해석하면 좀 폭탄 같은 말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법체계나 탄핵 자체를 부인하지 않는 한 결국 탄핵 사유가 어디에 있느냐를 봐야죠. 보통 가장 많이 말하는 게 박 대통령의 실정인데 그보다 더 큰 게 불통 구조예요. 누구나 동의할 거라고 보는데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사람들이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칼로 자르듯 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제일 좋은 건 누가 누구를 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주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그게 보수를 살리는 기회가 될 텐데, 그걸 기대할 수 있을는지.”

예전에 ‘보수라는 것은 지나간 사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존중’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부분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렇죠. 지금은 더 심하죠. 지나간 것은 다 옳으니 무조건 존중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어떤 세월을 견뎌서 살아남는다는 건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살기 위해 최소한의 선택을 했을 수 있죠. 순간순간 어렵게 선택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노고를 좀 기억했으면 해요. 그리고 어떤 공로에 대한 인정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적폐청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만약 그렇게 최악의 적폐들만 쌓여왔다면 지금과 같이 우리 사회가 발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1945년 광복 후 우리 상황이 어땠나요. 당시 식민지에서 독립해 출발한 동아시아 국가 중 제대로 성장한 건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나쁜 놈과 악당만 있었다면 그런 사회가 어떻게 됐겠어요.”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깔끔히 청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과거를 청산한다는 환상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과거라는 게 그렇게 쉽게 지워지고 청산되는 게 아니거니와 그 환상 자체가 굉장히 독선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악의적일 수 있습니다. 반성을 한다든가 더 이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든가, 그건 모르겠지만 몇십 년 전에 이미 소멸시효가 사라진 것까지 소멸시효를 없애가면서 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

적폐청산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제가 보기에는 심하죠. 저런 식으로 하면 지금 여기 단 한 사람도 성하지 않을 겁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정치할 생각 없어…이번 생에는 늦었다”

 

이문열 작가는 ‘보수 문인’ ‘우파 지식인’으로 불린다. 문단 내에서 이렇다 할 세를 형성한 적도 없고, 정치권에서 개인적 입지를 다져본 적도 없다. 하지만 보수우파 진영에서 그는 ‘빅스피커’다. 그의 말과 글은 영향력이 상당하다. 이문열 작가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최대 관심사가 ‘이념’이라고 했다. ‘탈이념’이 유행인 시대에 왜 ‘이념’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됐을까.

“우리 시대의 이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념적인 방향에 있어 걱정도 많죠.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어두운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제가 누구를 만나고 얘기하고 하는 건 그 방향에 대해 좀 이해 안 되는 게 많아서죠. 예를 들면 현 정권의 이념적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이념적으로 지향하는 게 무엇인지 이런 겁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알고도 지지를 한 겁니다. 그게 옳다고 생각해 지지할 수도 있고,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지지할 수도 있죠. (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이념 측면에서) 지금 찬성만이 아니라 용인 혹은 묵인 행태로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죠.”

국민이 알고도 지지를 한다고 했을 때 그 부분을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

“거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그래서 고민이 더 깊어지는 것이기도 하죠. 어떤 속임수가 있다면 의심되는 부분을 밝히든지 그걸 가지고 저항해 볼 수 있겠죠.”

그런 상황일수록 보수 정치권의 러브콜이 더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게 그래요. 72살이라는 나이가 직접 나서서 뭐 해 보겠다고 할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제 늙었으니 훈수나 두자고 하기에도 애매합니다. 속은 터지는 거고.”

직접 정치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니에요. 그때(2004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전에 그런 말을 했는데 이번 생(生)에는 늦어버렸어요. 왜 그러냐면 이 정치라는 게 고도의 자질도 필요하지만, 또 고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문제가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이 욕심만 가지고 정치를 하다 보니까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저한테는 기회가 안 왔어요.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 때문에 그랬을 테고, 자라서는 또 다른 것 때문에 정치적으로 단련하고,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도 받지 못했어요. 그보다는 말 다듬고 글 쓰는 쪽 능력을 더 키웠고 그래서 작가가 된 거죠. 지금 와서 바꾸기에는 물어야 할 페널티가 너무 많은 거야. 그게 자신이 없어요. 또 어떤 타고난 자질이라든지 이런 것도 있을 겁니다. 소위 말하는 카리스마 같은 것인데, 장관을 해도 무능한 장관이 될 판이고 기업인이 돼도 무능한 기업인이 될 판인데 그런 모험은 못 하겠어요.”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안도 받으신 걸로 아는데 같은 생각이었나요.

“그렇죠. 제가 화를 냈습니다. 그건 서로 불행한 일이라고.”

정치 쪽 발언을 하면 엉뚱한 해석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직접 정치하시길 꺼리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건 이제 악의가 싫어 가지고 그래요. 사람들은 많이 알면서도 자신이 필요한 대로 말을 바꾸는 기술이 있습니다. 해석을 하면서. 그냥 덮어씌우는데 그런 게 귀찮아서 짜증을 냈겠죠. 요새 뭐 막말이라고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너무 상대편이 만든 말의 프레임에 잘 걸려드는 게 아닌지. 왜냐하면 지금 막말은 (여권도) 비슷비슷하거든요. 근데 자신이 한 말은 다 넘어가고 자유한국당 한마디에 다 난리가 나는 거예요. 가령 거두절미하고 딱 떼어 가지고 ‘문재인이 김정은보다 못한다’ 하면 국가원수를 모욕한 게 맞아요. 그런데 논리학에서 제일 못된 게 거두절미라고 봐요. 말이라 하는 게 전제가 있고 그 전제를 두고 해석을 하는 건데 전제를 빼버리고 결론만 딱 떼 가지고 하는 식으로 막말을 만든 거죠. 전 프레임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거기에 대해 너무 약한 것 같아요.”

이문열 작가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다수결로 뽑았으니 따라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까지 ‘아, 그거 잘했다’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가의 존재 형태의 문제가 가장 크다”며 북한과의 관계를 거론했다.

“아직도 우리의 주적은 북한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빗장을 풀어 통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큰 문제가 생기죠. 통일이 되면 당장 재산 문제가 발생합니다. 국민소득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보트 타는 게 낫겠다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일종의 분배정책인데 조삼모사(朝三暮四)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국가재정, 즉 세금으로 지지를 사는 것 같은 행태입니다. 선심 쓰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거죠. 경제가 회복된다면 문제 없겠지만 안 되면 어떻게 할 건가요.” 

“역대 대통령 중 지지하고픈 사람 없어”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신다면. 

“한 분도 평가해 본 적이 없는데, 별로 지지하고픈 사람이 없어요. 어떤 면에서 평가해 줄 순 있는데, 다른 면에서 이를 상쇄해 버리고.”

정치를 오래 한 YS(김영삼)나 DJ(김대중)는 어떤가요.

“제일 애매한 사람이 오래 했던 사람이에요. YS는 민주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3당 합당하고 민자당 후보로 나왔잖아요. 오히려 DJ가 경제적으로도 후퇴한 게 없고, 전체적으로 보면 나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게 더 많을 거예요. 정치 보복도 없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가요.

“자살로까지 몰아간 데 대해 형평성이 없다든가, 인정머리 없다든가 이런 얘긴 할 수 있을 거예요. 실제 드러난 게 큰돈은 아니었으니까. 보복하지 마라, 누굴 원망하지 마라는 유서까지 쓰고 깨끗하게 간 거죠. 사실 본인이 받아서 주머니에 넣은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상고 나와서 9년을 고시공부 했으니 무에서 유를 만든 사람이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요.

“박 전 대통령은 1990년대에 어느 모임에서 본 적 있어요. 악수 한 번 한 게 끝이고 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죠. 그래서 어떤 분인지 잘 몰라요. (대선에서) 한 표라도 보태자 싶어 투표는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두 번 정도 초대를 받아서 친한 걸로 됐는데 얘기를 많이 나누지는 않았어요.”

두 전직 대통령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아무런 동정의 표시를 못 해서 미안한데, 나쁜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몰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거잖아요. 그런 상황을 만든 게 큰 죄가 되는 거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인터뷰 시간이 어느덧 3시간을 넘어섰다. 이문열 작가는 “너무 진솔하게 인터뷰한 것 아니냐”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바닥에도 책이 쌓인 서재로 취재진을 안내한 그는 “오래전에 출판사에서 단편을 묶어 책을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을 찾아서 보내주는 분들이 있다”며 낡은 표지의 책 여러 권을 자랑스레 보여줬다. 책을 훑어보니 30여 년 전 ‘작가 이문열’을 알게 해 준 소설들이 목차를 채우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작가의 머리에 만설(晩雪)이 쌓였지만 그가 쓴 작품은 늘 젊은 날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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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부당한 피해도 입어”

이문열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교과서에도 실린 단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부터 고전을 재해석한 《삼국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동안 그는 가장 애착 가는 작품으로 ‘아직 안 쓴 작품’ ‘다음에 쓸 작품’을 꼽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애착 가는 작품으로 대하소설 《변경》을 첫손에 꼽았다. 이문열 작가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예전에 ‘아직 안 쓴 작품’이라고 한 건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서였다”며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쓴 것 중에 고르려다 보니까 힘이 많이 들었고 품이 많이 들어간 《변경》을 꼽게 됐다는 거다. 그는 “제일 완숙하다는 30대 후반에 시작해 40대 후반까지 한 10년 동안 쓴 작품”이라며 “그것도 지금 와서 보니까 후회가 많다”고 밝혔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격동의 세월을 배경으로 한 작품 《변경》은 이문열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 한국전쟁 때 월북한 아버지 얘기도 나온다. 당시 수원농대 학장을 맡았던 아버지는 9·28 서울 수복 때 가족을 남겨둔 채 월북했다. 그가 특히 북한 문제에 있어 우파 성향이 강한 게 월북한 아버지 때문은 아닐까.

“그건 맞습니다. 사실 아버지 부분에 있어서는 우파들로부터도 부당한 피해를 입었죠. 특히 어머니는 더 그러셨습니다. 남한에서 살기 위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머니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셨어요. 공산주의를 정말 싫어하셨죠.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월북자 가족으로 연좌제 같은 게 전반적으로 삶에 영향을 줬지만 사상적으로는 제게 큰 영향을 주진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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