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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죽음에 내몰린 집배원들의 절규

by 아나코스 2020. 5. 6.

사상 첫 파업 결의한 집배원…왜 사망 이어지나

 

안성모·김종일 기자 (asm@sisajournal.com) 승인 2019.06.28 14:00

 

“오늘도 퇴근 도장을 찍고 야간 잔업을 하고 있다. 과로가 너무 심해 근무자가 사망할 지경이지만 물량을 소화하려면 어쩔 수 없다.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근무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5년 차 우체국 집배원 김아무개씨는 올해 초 무릎연골이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재활까지 보통 6개월가량 걸리지만, 김씨는 두 달 만에 근무에 복귀했다. 동료들의 업무 과중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회복이 덜 된 무릎이 매일 붓는 와중에도 그는 하루에 80km가량 이동하며 배송에 나서고 있다. 일상이 곧 전쟁이다. 연휴가 낀 날에는 오토바이 연료를 페트병에 담아 들고 다닐 정도다. 김씨는 “업무량이 너무 많아 충분히 회복한 후에 일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두 달 사이 집배원 두 명이 사망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9명째다. 지난해에는 25명의 집배원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10년 동안 사망한 집배원 수가 175명에 이른다. 근무 중 교통사고부터 뇌심혈관계 질환까지 사망원인은 다양하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결국 과도한 업무량이라는 지적이 많다.

 

ⓒ 일러스트 신춘성

 

이런 상황에 뿔난 집배원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노조 설립 후 처음으로 파업을 결의했다. 국민 생활과 밀접한 집배 업무에 차질이 생길 경우 사회적으로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국민 여론은 집배원 파업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그만큼 집배원이 처한 상황이 심각하고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

집배원들이 집단 반발하는 배경에는 불신이 놓여 있다. 집배원이 사망해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는 노동환경 개선을 약속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슈가 가라앉으면 없던 일이 되기 일쑤였다. 개선하겠다는 약속이 공염불에 거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 노사정이 참여하는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 구성됐다. 이듬해 9월 기획추진단은 ‘집배원 노동조건 실태 및 개선 방안’을 내놓으며 집배원 2000명 증원을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집배원 증원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지금도 집배원 증원은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6월25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동탄우체국에서 집배원들이 택배 배송을 위한 화물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 최준필

 

말로만 노동환경 개선, 실질적 대책은 뒷전

집배원의 업무 과중은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기획추진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집배원 10명 중 7명이 하루 근무시간 대비 업무량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특히 10명 중 4명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해 집배원들의 업무량에 대한 부담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을 보면 집배원의 과중한 업무가 잘 드러난다.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2052시간보다 693시간 더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763시간과는 무려 982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하면 집배원은 연간 한국 임금노동자보다 87일, OECD 국가 임금노동자보다 123일을 더 일하고 있다.

노동 강도도 마찬가지다. 집배원은 육체적인 노동 강도를 평가하는 보그지수가 평균 14점(힘듦)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평균 이상인 경우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보그지수 15점 ‘많이 힘듦’이 29.8%, 17점 ‘매우 힘듦’이 14.6%, 19점 ‘최대로 힘듦’이 5.4%였다. 일반적으로 보그지수에 10을 곱하면 심박수가 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집배원의 5%가 심박수 190 이상인 상태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집배원 수는 해마다 조금씩 늘었다. 2013~17년 5년간 인력현황을 보면 1만8301명에서 1만9149명으로 848명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전체적으로 인구수가 줄고 있는데 왜 업무가 과중되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와 관련해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15.6%에 불과했던 1인 가구는 2010년 23.9%로 증가했고 2020년 29.6%, 2030년 32.7%로 확산될 전망이다. 2인 가구도 비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미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집배원이 담당해야 할 세대수도 기존보다 더 많아진 것이다.

여기에다 귀농·귀촌 가구의 증가로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업무 부담도 늘었다. 집배원의 하루 평균 이동거리는 44.7km에 이른다. 100명 중 36명은 40km 이상을 이동하며, 5명은 하루에 100km 이상을 이동하며 업무를 보고 있다.

 

직무 스트레스, 소방관보다 많아

 

집배원의 사망 유형에서 눈여겨볼 대목 중 하나가 자살이다. 2011년부터 올해 초까지 28명이 자살로 사망했다. 사망 유형 가운데 자살은 암, 뇌심혈관계 질환 다음으로 많았다. 최근 들어 자살이 급격히 느는 추세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집배원의 직무 스트레스가 다른 직종보다 심한 것으로 파악돼 눈길을 끈다. 집배원의 직무 스트레스(54.6)는 원전종사자(38.2) 임상간호사(47.2), 소방관(48.8), 공군조종사(49.1)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민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으로 심한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공공기관 특성상 스트레스가 더 심화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배원 증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런데 왜 증원이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기획추진단은 주 52시간이 실현되려면 2853명의 인력이 증원돼야 한다고 봤다. 주 50시간의 경우 3626명으로 증원 규모가 더 커진다. 

그동안 우정사업본부는 해마다 우편사업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라 집배원 인력 증원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올해도 우편사업에서 1960억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배원 파업이 결의되자 우정사업본부는 “실제 파업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은 기간 동안 우정노조와 대화를 지속해 최대한 조속히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집배원의 업무 과중에 대한 노사 간 인식 차를 어떻게 좁히느냐가 사태를 해결하는 기본 관건이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노동 강도를 상대 비교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집배원의 노동 강도를 민간택배와 비교하는 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사고는 집배원의 업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로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집배원의 경우 안전사고가 나더라도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고 은폐의 원인이 된다.

무엇보다 집배 업무가 갖는 ‘공공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제논리에 매몰될 경우 다수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서비스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중한 업무로 죽음에 내몰린 집배원의 노동환경 개선은 비단 집배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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