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뒤덮은 발전시설에 ‘지자체장 뒷주머니 전락’ 의혹도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승인 2019.06.25 10:00 호수 1549
한반도가 태양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 훼손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여전히 거세고,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 시비도 일고 있다.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경우 법적 다툼까지 벌어지고, 일부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사실상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6월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국무회의에서 태양광 발전과 관련한 비위 행태와 불법 행위에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공공기관을 사칭하거나 무상 설치를 약속하는 허위·과장 광고도 있다. 축사 같은 건축물 지붕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해 정부의 지원을 받고는 건축물을 본래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현장을 점검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지원 회수와 수사 의뢰를 포함해 응분의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0월30일 전북 군산시 유수지 수상태양광 부지에서 열린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 행사를 마치고 수상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3년 새 태양광 보급 2배 늘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태양광이다. 화석연료와 원자력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 가운데 태양광이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체 신재생에너지 보급에서 태양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최근 3년 사이 보급 규모가 2배나 늘었다. 1998~2017년 누적 보급용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27㎽의 설비가 2018년 한 해 동안 보급됐다.
현재 전국적으로 4만여 개인 상업용 태양광 시설은 5년 후 20만 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6월4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확정된 산업부의 ‘제3차 에너지기본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현재 7%대에서 최대 3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태양광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기존의 화석연료보다 친환경적이고 원자력보다 안정성이 뛰어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극도로 높은 상황이라 에너지 안보(자립) 차원에서도 필요성이 거론된다. 태양광 관련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집중 투자에 나선 것도 한 이유다. 업계에서는 2025년 세계시장 규모가 600조~800조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버금가는 규모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전망을 현실화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발전시설과 관련해 초기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의 ‘횡포’로 인해 주민들의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10여 년 동안 태양광 관련 정책 자문을 해 온 한 인사는 “초창기 사업자들이 싼 가격에 토지를 매입하고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주민들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난개발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태양광 발전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어느 특정 지역의 문제라기보다는 전국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태양광 발전사업 전반을 점검해야 하는 난제 중의 난제다. 지자체와 주민, 사업자 등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태양광 발전시설이 전국을 뒤덮으면서 관련 논란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태양광 설치 비중이 높은 호남의 경우 지역 곳곳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전남 영광군의 경우 폐염전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조성한다는 당초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다. 4000억원을 들여 추진 예정인 민간 태양광발전소 조성 과정에서 법인사업자와 주주 간 법적 다툼이 발생한 것이다.
‘환경훼손’에 ‘지분 갈등’까지 주민 반발 거세
영광군은 지난해 12월 44개 법인이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 일대 118만㎡(35만6950평) 부지에 신청한 태양광 발전사업단지 조성 개발행위를 5월29일 허가했다. 법인사업자는 앞서 지난해 9월 전남도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업부지 소유 회사의 일부 주주들이 “회사가 주주총회도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토지 사용을 허가해 줬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 주주는 영광군의 개발행위 심의를 앞두고 회사 대표와 관계자들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이와 별개로 인근 염전사업자와 양식업자들도 수질과 환경오염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흥군에서는 주민참여형으로 해창만 일원에 추진되고 있는 수상태양광발전소 설립사업을 두고 잡음이 나왔다. 담수호 100ha(30만2500평) 면적에 2000억여원이 투입될 예정인 사업은 주민 87%의 지지를 받아 의욕적으로 시작됐지만, 지분 갈등이 빚어지면서 주민들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제동을 걸었다.
주민들은 지분율이 전체 출자 지분의 22%로 알고 사업 참여를 결정했는데 실제로는 4.4%밖에 안 된다고 반발했다. 반면 업체는 전체 출자 지분 가운데 금융권 지분 80%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의 22%가 주민 지분율이라는 설명이다. 전체 출자 지분 대비 4.4%가 맞다는 것이다. 지분율은 향후 수익 분배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충남 천안시에서는 마을 인근에 축구장 5개 면적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설 계획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광덕면 매당리 일대 3만3000㎡(9982평) 규모의 숲에 들어설 태양광 발전시설이 산림을 훼손하고 집중호우 시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공사로 인한 식수 오염과 농작물 피해도 반대 이유로 거론됐다. 청정지역 내 태양광 사업이 과연 적합하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아산시의 경우 한국농어촌공사가 13개 저수지에 설치하려던 수상태양광발전소 사업을 주민동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사업이 백지화할 상황에 놓였다. 주민들은 24만762㎡(7만2830평) 면적에 수상태양광 패널이 설치되면 수중으로 들어오는 햇빛양이 줄어들어 녹조현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며 허가 취소를 요구해 왔다.
충남 홍성군에서는 석면광산 터에 들어설 태양광 발전시설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은하면 화봉리 일대 1만1644㎡(3522평) 부지에 태양광발전소를 조성하는 해당 사업은 이 지역이 일제강점기 시절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으로 불렸던 곳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1급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던 마을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경기도 가평군의 경우 ‘허위 도면’ 논란이 일었다. 설곡리 일대 2만3000여㎡(6957평) 부지에 들어설 예정인 태양광발전 사업자가 배수로 부지를 확보하지 않은 채 허위 설계도면을 제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주민들은 가평군이 현장 확인도 없이 도면만 보고 허가를 한 것 아니냐며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생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잣나무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설곡리 주민들은 농사와 함께 잣 채취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동해시에서는 화력발전소가 도로변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지난 2월 동해시가 과도한 설치라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이번에는 해당 전력회사가 이미 상당한 예산이 투입된 상태라며 반발하고 있다. 추암 관광지 진입 도로변인 구호동 화력발전소 일대 1만4240㎡(4307평) 부지에 들어선 태양광 발전시설은 공정률이 95%에 이른 상태에서 공사가 중단됐다
태백시의 경우 ‘소통 부재’ 논란이 불거졌다. 통동 솔안마을 주민들이 인근에 태양광 발전사업이 추진되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태양광시설 반대위원회를 구성해 지자체와 주민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반대위는 마을 앞 폐탄광 부지 인근에서 진행되는 공사가 광산 피해복구사업으로 알았다가 나중에 태양광 발전시설 조성사업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통동 지역의 태양광 발전사업은 지난해 11월 태백시로부터 개발행위 허가를 받았다. 반대위는 태백시가 주민에게 사업 내용에 관해 사전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한 반면, 태백시는 부지가 솔안마을에서 떨어져 있고 주민 동의나 주민 설명회를 해야 할 사업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제주에서는 우량농지까지 태양광 발전시설이 뒤덮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인근 농지면적 합계가 10ha(3만250평) 이상이면 우량농지에 해당되는데, 농지법은 우량농지의 경우 농지전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한경면 고산지구와 대정읍 무릉지구를 비롯해 일부 우량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이 들어서 논란이 일었던 것이다. 제주의 경우 최근 5년간 태양광 발전으로 농지 195.9㏊(59만2597평)가 잠식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광은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사업”
이처럼 태양광 발전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배경에 사업 구조상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태양광 사업을 잘 아는 업계 인사는 “일단 허가가 나면 TF가 구성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투자자금이 없더라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보니 사업 허가 과정에 ‘힘’을 쓸 수 있는 지자체장이 ‘뒷주머니’를 챙기기 좋은 사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몇몇 지자체장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남권 한 지자체장의 경우 허가를 내준 업체와 설비 납품과 관련한 이면 계약을 해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충청권의 한 지자체장은 친인척이 태양광 사업에 관여해 돈을 챙기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태양광 전문가는 “에너지 수급 문제는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데 정부가 태양광 사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해관계가 복잡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컨트롤타워를 세워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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