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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정치

“박영준·이상득에 줘야 한다며 돈 달라고 했다”

by 아나코스 2016. 3. 10.

‘원전 게이트’에 MB 정권 실세 이름 본격 등장 


안성모·조해수·엄민우 기자 | 승인 2013.08.15(목) 17:58|1243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로비로 촉발된 검찰의 ‘원전 비리’ 수사가 MB(이명박) 정권 실세가 연루된 ‘원전 게이트’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검찰의 칼날은 이제 원전업계를 넘어 정치권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원전 수처리 설비업체인 한국정수공업을 둘러싼 금품 로비에 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해 집중 취재해왔다. 취재 과정에서 입수한 관련 문서와 증언 등으로 확인한 정치권력의 비리와 부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시사저널>은 7월23일자(제1240호) ‘“내가 힘써줬으니 약속한 돈 달라”’ 기사를 통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고위 당직자 출신인 이윤영씨(51·구속)가 로비의 대가에 대한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한국정수공업 측에 팩스로 보낸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8월5일 본지 인터넷판으로 보도한 ‘“박영준 차관에 줘야 한다며 돈 요구했다”’ 기사에서는 문제의 문서를 입수해 그 내용을 최초 보도했다. 이와 함께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지경부) 2차관에게 줘야 한다며 돈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시사저널>이 제기한 의혹은 이씨가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으면서 하나 둘씩 외부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검찰은 한국정수공업 부회장으로 일했던 오희택씨(55·구속)로부터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받은 13억원 가운데 3억원을 박 전 차관한테 전달해달라며 이씨한테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오씨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건설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이씨는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노동분과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씨, ‘돈 요구’ 팩스 이어 내용증명까지 보내

 

이씨가 한국정수공업 측에 팩스로 보낸 문서의 내용은 원전업체를 사실상 비자금 창구로 여겨온 정치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수신인이 ‘이규철 대표이사님’으로 되어 있는 두 장짜리 문서는 2012년 5월1일에 팩스로 전달됐다. 이규철 대표(75)는 한국정수공업 회장이다. 이씨는 이 문서에서 ‘귀사의 오희택 부회장이 수처리 설비와 관련해서 한수원의 기존 계약을 유지시켜달라,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의 수처리를 하게 해달라고 자주 찾아와 부탁한바, 이를 수락하고 일을 성사시켜서 한국정수공업이 한수원 수처리 관리와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 수처리를 수주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2010년 당시 ㅇ사가 한국정수공업 인수를 시도할 때 이를 막아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이씨는 ‘ㅇ사 소재 지방국세청을 통해 압력을 넣어달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으며, 인수 주간사인 ㅅ회계법인 담당 상무가 계속 일을 추진한다 하여 ㅅ회계법인 고위층을 통하여 해결하였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러한 내용의 문서를 보낸 이유와 관련해 ‘계약을 성사시키고 난 후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현재까지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에 따라 중간 역할을 해온 오씨를 신뢰할 수 없어 이 회장에게 직접 ‘약속 이행’을 요구한 것이다. 문서에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무슨 일이든 못 하겠느냐’ ‘입증할 자료도 있다’ ‘관계 기관과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내용을 다 밝히고 싶은 심정이다’ 등 협박성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시사저널>이 이규철 회장측에 확인한 결과, 이씨는 당시 팩스로 문서를 보낸 후 내용증명까지 보내는 대담함을 보였다. MB 정권 말기 권력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다급해진 이씨가 돈 독촉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법 로비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내용을 문서로 작성해 팩스로 보낸 데 이어 내용증명까지 추가로 보냈다는 점은 상식적인 행동으로 보기 힘들다. 정치권력이 부정부패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뇌물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7월7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 출두했다. ⓒ 연합뉴스 

13억원 건네받은 나오스 업체 계약서 입수

 

그렇다면 이씨가 말한 ‘약속’은 과연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해 한국정수공업이 미국 법인인 나오스비전시스템(NAOS VISION SYSTEM, 이하 나오스)과 맺은 컨설팅 계약서를 입수했다. 2010년 6월30일 체결된 계약서에는 나오스가 UAE 원전 수주와 관련해 발주자인 UAE 및 수주사인 KEPCO(한국전력공사) 관계자들에게 한국정수공업의 기술과 그 이점을 사업적으로나 개인 친분적으로 설명해줘 사업을 성취토록 도와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정수공업이 UAE 원전 수출과 관련해 수처리 부문 수주를 받도록 해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대가에 대해서도 상세히 나와 있다. 성공적으로 사업 계약을 마치면 프로젝트 계약금의 8%를 컨설팅 용역비로 지급하고, 매회 프로젝트 수령 금액에 따라 같은 비율로 수령 후 즉시 또는 늦어도 10일 이내에 지불하기로 돼 있다. 또 선급금으로 5억원을 계약 후 30일 이내에 지불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정수공업의 지출결의서와 송금 내역을 확인한 결과 한국정수공업은 2010년 8월30일 나오스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나라은행 계좌로 5억원을 송금했다. 그해 12월31일에는 8억원이 추가로 송금됐다. 계약상에 없는 돈인데 지출결의서에는 앞선 5억원과 마찬가지로 ‘UAE 원전 수주 계약에 따른 컨설팅 수수료’로 기재돼 있다. 어떤 대가였는지를 떠나 두 차례에 걸쳐 13억원이 미국 법인의 한 통장으로 입금된 셈이다.

그런데 이 계약은 면밀히 살펴보면 허점투성이다. 우선은 나오스가 원전 사업과는 무관한 회사의 미국 자회사로 알려져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회사의 한국 본사 격인 업체는 IT업체인 S사로 원전 관련 실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S사는 이 계약과는 별개로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4억원을 받아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나오스가 컨설팅 비용을 받기 위해 급조한 페이퍼컴퍼니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22쪽 상자기사 참조).

계약 내용도 시기적으로 잘 맞지 않는다. 계약서에 따르면 수주하고자 하는 UAE 원전은 1·2·3·4호기다. 그런데 한전이 원전 수주를 한 것은 2009년 12월이다. 물론 한전과 한국정수공업 간의 계약은 2011년 9월에 체결됐지만 국내 원전의 수처리 사업을 사실상 독점해왔다는 점에서 계약은 예정된 수순으로 볼 수 있다. 별도의 로비가 필요 없었다는 게 이 회장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는 계약서 내용과 달리 아직 수출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UAE 원전 5·6·7·8호기 수주를 계약해줄 테니 컨설팅 비용을 지급해달고 했다고 한다.

 
이규철 회장 “돈 요구할 때 이상득도 들먹여”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이씨가 팩스로 보낸 문서에서 한수원 계약 유지와 UAE 원전 수출 수주를 언급하면서 ‘누구를 통해 어떻게 했는지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이규철 대표님이 더 잘 아실 것으로 믿는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이씨 자신 뒤에 MB 정권 실세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이 실세가 바로 박영준 전 차관이라는 주변 증언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이씨는 박 전 차관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27쪽 딸린 기사 참조).

계약 당사자인 이규철 한국정수공업 회장도 8월7일 <시사저널>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박영준이 도와주니까 돈을 줘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 회장과 이씨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 오씨가 정권 실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거론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 회장은 원전 비리로 구속된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의 연임과 관련해서도 “김종신이 연임되게 하려면 박영준한테 돈을 좀 써야 한다고도 했다”고 밝혔다. 실제 김 전 사장이 연임한 데 대해 정치권 주변에서는 박 전 차관이 힘을 썼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MB 정권 실세의 이름 등장은 박 전 차관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이상득에게도 뭘 해야 잘될 테니까 돈을 좀 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MB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친하다고 밝힌 오씨가 돈을 요구하면서 이 전 의원의 이름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어떻게 친하다고 했냐면, 같은 동네 살았다고 했다. 이명박이 살던 근처에 살았다더라”고 전했다. 한국정수공업의 자회사에서 생산한 생수를 박 전 차관과 이 전 의원에게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자기 기사 시켜서 당시 회사 물도 박영준·이상득에게 전달하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오씨가 실제 이 전 의원과 얼마나 친분이 두터운지에 대해서는 말이 엇갈린다. 포항중·고 재경 동문회장을 맡기도 한 오씨를 ‘영포 라인’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 여기는 측에서는 이 전 의원과 가깝게 지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2000년대 중순 건설 사업이 망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한 오씨가 로비 청탁을 할 정도로 이 전 의원과 가깝지는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오씨와 오랫동안 당에서 함께 일해온 한 인사는 “오히려 포항 출신의 다른 의원과 가까웠지 이 전 의원과는 친한 사이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는 현재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회장 측 관계자는 “컨설팅 계약하면서 5억원, 그해 말에 8억원이다. 그것을 이씨가 3억원, 오씨가 10억원 가져갔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를 오씨의 검찰 진술에 대입하면, 이 3억원은 박 전 차관에게 전달해달라며 이씨에게 건넨 셈이 된다. 당초 계약대로라면 13억원이 끝이 아니다. 한국정수공업이 수주한 금액이 1000억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이 금액의 8%면 컨설팅 용역비는 무려 80억원에 이른다. 이씨가 이 회장에게 약속을 이행하라고 한 것은 나머지 67억원을 내놓으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원전 사업은 MB 정권을 상징하는 열쇳말 중 하나다. 박 전 차관과 이 전 의원은 자원 외교의 한 축으로서 원전 수출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UAE 원전 수주는 MB 정권의 자랑거리였다. 당시 400억 달러 규모의 원전 수출을 이뤄냈다며 그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를 통해 집권 초기 촛불 집회로 잃었던 정국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원전 사업을 둘러싼 권력의 추악한 뒷거래는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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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페이퍼컴퍼니에 13억 들어갔다”

컨설팅 계약 후 설립된 ‘나오스비전시스템’의 실체

 

5억원과 8억원을 나오스의 미국 계좌로 보낸 송금내역서.

MB 정권 실세를 거론하며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13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는 오희택씨와 이윤영씨는 로비 자금 창구로 ‘나오스비전시스템(NAOS VISION SYSTEM, 이하 나오스)’이라는 미국 법인 회사를 활용했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정수공업과 나오스가 2010년 6월30일 맺은 컨설팅 계약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계약서에 따라 한국정수공업은 2010년 8월과 12월에 각각 5억원, 8억원을 나오스 계좌로 송금했다.

그런데 나오스는 한국정수공업과 계약이 성사된 후인 2010년 7월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설립 등록이 된 회사다. 회사 설립도 하기 전에 계약부터 맺은 셈이다. 나오스의 소재지 주소로 나와 있는 곳은 이전에 카메라 수리점이 있었던 곳으로, 일반 상가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원전 비리를 추적해오고 있는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원전 사업 실적이 전무한 회사가 컨설팅비 명목으로 거액의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나오스는 한국정수공업으로부터 로비 자금을 입금받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다. 자금 추적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해외 법인을 활용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나오스의 실소유주는 누구일까? 나오스를 통해 로비 자금을 관리한 인물로는 박영준 전 지경부 제2차관의 이름이 거론된다. MB 정권 당시 박 전 차관과 함께 일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박 전 차관이 해외 비자금 조성을 위해 미국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안다. 박 전 차관 개인 것이 아니라 정권 차원의 회사라는 얘기도 있다”고 귀띔한 적이 있다. 나오스가 이 회사인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설립 시기와 설립 목적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

그러나 박 전 차관은 실제 나오스의 지분이나 직함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씨와 이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오스의 실소유주를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정수공업과 또 다른 채무 관계를 맺고 있는 S기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S기업은 한국정수공업 측으로부터 투자비 명목으로 4억원을 받아갔다고 한다. 나오스는 S기업의 미국 자회사 성격이 짙은 회사로, 나오스 설립 당시 대표를 맡았던 류 아무개씨는 S기업의 해외 영업 담당이었다.

S기업은 한국정수공업과 나오스의 계약이 이뤄졌던 2010년경에 오씨가 회장 명함을 갖고 다닌 ‘하지디엔씨(HaJI DNC)’와 같은 건물의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다. 회사 명칭을 봤을 때 하지디엔씨는 한국정수공업과 관련 있는 회사로 보이지만, 이규철 한국정수공업 회장 측은 “하지디엔씨도 자금이나 사업 실적이 없는 유령 회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당시 S기업의 대표는 박 아무개씨가 맡고 있었는데, 실질적인 오너는 김 아무개씨인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S기업에서 기술 고문직을 맡고 있지만, S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의 발명자이자 출원인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2007년 수백억 원의 주가 조작 혐의에 연루된 인물이다. 2010년에는 주가 조작 혐의를 받았던 업체로부터 십수억 원의 현금 컨설팅비와 수억 원대의 차량 및 아파트 임차 비용을 받은 사실이 감사원 특별 감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김씨는 언론과 개미 투자자들의 수많은 의혹 제기에도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는데, 당시 MB 정권 실세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런 김씨에게 오희택씨와 이윤영씨를 소개해준 것이 MB 측근 ㄱ씨라는 것이다. 황 소장은 “신성장 동력 펀드가 JKL파트너스를 통해 한국정수공업으로 지원된 것과 UAE 원전 사업 수주는 상당한 특혜라고 볼 수 있다. 이건 오씨와 이씨 수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따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 권력 실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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