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단체들, 실태와 근거 제시하며 경고
“사회 기반 시설 공격해올 경우 국가적 대혼란 초래할 수도”
[1168호] 2012.03.08 20:18:11(월) 안성모 기자
2009년 7월10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북 핵미사일 발사와 사이버 테러 도발 규탄대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4월 총선을 대비해서 이미 여론 작업에 들어갔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북한 관련 단체(대북 단체) 대표가 ‘인터넷을 통한 북한의 대남 심리전’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북한이 남한 내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성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공작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선거철이 되면 3개월 전부터 수백 명의 전문 요원이 중국으로 넘어가 작업을 한다. 이들이 포털 사이트 내에 있는 토론방 등에 들어가 여론 조작을 시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선거 3개월 전부터 여론 조작 시도”
북한의 이른바 ‘사이버 공격’에 대한 주장은 그동안 대북 단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인터넷을 통한 여론 조작설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전이 진행되고, 영향력은 어느 정도에 이르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주목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이해에 따른 공방만 펼쳐질 뿐이다. <시사저널>은 탈북에 성공해 현재 남한에 정착한 대북 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북한의 ‘사이버 공격’ 실태와 그 근거를 직접 들어보았다.
북한의 작전 요원들은 남한의 유명 포털 사이트에 어떤 방식으로 접속을 할까. 방법은 간단했다. 우선 한국 국민의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입수한다. 이런 자료는 해킹 등을 통해 쉽게 모을 수 있다. 인터넷을 잘 사용하지 않는 장년층이 주요 타깃이다. 개인정보가 도용된 사실을 대부분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주민등록번호로 회원 가입을 한 후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북한에서 사이버 심리전을 담당하는 곳은 총참모부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 204소로 알려져 있다. 5~10명 단위로 꾸려진 팀들이 중국을 오가면서 활동한다. 선거철이 되면 그 수가 3백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북한 대좌(대령) 출신인 채명민 하나컬쳐 대표는 “중국으로 건너가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요원들은 북한 내부에서 철저히 검증을 받은 사람들이다. 선거철이 되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논쟁 거리를 던지는 등 여론 환기에 집중한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IP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들의 접속을 막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단순히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등의 활동 내역만 보고 어떻게 북한측의 공작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중국 IP라는 것만으로 확인이 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탈북자 출신의 대북 단체 관계자들은 ‘북한식 어법’을 들었다. 북한 요원들은 사전에 훈련을 받아서 남한식 어법을 사용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북한 표현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채대표는 “물론 중국에서 들어온다고 해서 다 북한에서 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식 어법이 있다. 최근의 예를 든다면, 부산에 사는 누구라면서 한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중간에 ‘인차’라는 표현을 썼다. ‘금세’라는 뜻의 북한 말인데, 남한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정말 부산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쓰겠나. 그리고 습관적으로 두음 법칙을 쓰지 않아서 표시가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의심스러운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조사를 해보면 대부분 중국 IP가 나온다. 중국에서 한국 선거에 그토록 관심이 높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우리가 보면 북한 사람이 쓴 글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북 단체 대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한 언론에 기고를 했는데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중 한 네티즌이 10여 개의 댓글을 달면서 엄청나게 공격을 했다. 그런데 한두 단어를 보는 순간 ‘아, 북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다. 그중 하나가 ‘인터네트’이다. 여러 차례 ‘인터네트’라고 반복해 썼는데, ‘인터네트’는 ‘인터넷’의 북한식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선거 때가 되면 이런 일이 더 늘어나는데, 이제는 인터넷이 개방되어서 북한 내에서도 중국 IP로 작업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글의 내용 전개 방식을 살펴보면 북한측 작업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채대표는 “‘이명박 정권이 싫다’라는 같은 내용이라도 정부를 비판하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측에서 즐겨 사용하는 정치적 맥락이 섞여 있다”라고 밝혔다.
“10대 컴퓨터 영재들을 ‘사이버 전사’로 양성”
지난해 6월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 사이버 테러 관련 긴급 세미나’. ⓒ 연합뉴스
포털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인기 검색어 순위에 대해서도 조작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북한측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특정 검색어의 순위를 높게 혹은 낮게 나오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한 대북 단체 대표는 “검색 순위 조작은 해킹으로 가능하다. 자신들의 의도에 맞추어 몰아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해킹 등 실질적인 ‘사이버 전투’를 담당하는 곳은 정찰총국 내에 있는 121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속한 요원들의 실력은 상당하다고 한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10대 컴퓨터 영재들을 전국적으로 모집해서 특별 교육을 시킨 다음 중국을 비롯한 외국의 대학에 유학까지 보내서 사이버 전사를 양성하고 있다. 일반인에 비해 좋은 대우를 받고 좋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서로 가기를 원하는 곳이다. 현재 121국 휘하에 3천여 명의 전문 요원이 있다”라고 밝혔다.
김대표는 지난 2004년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까지 19년 동안 북한의 한 기술대학에서 컴퓨터학과 교수를 지냈다. 본인이 북한의 ‘사이버 전사’ 양성에 직접 참여했던 셈이다. 그는 “이제는 여론 조작을 넘어서 사이버 테러에 나서고 있다. 주요 탈북 인사들의 이메일 해킹은 비일비재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들 대북 단체 대표들은 북한의 사이버 테러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 기관과 기업에 대한 공격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했다. 김대표는 “디도스 공격으로 서버를 다운시키는 정도는 가벼운 시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나 통신, 가스 등 사회 기반 시설을 공격할 경우 국가적 차원의 대혼란이 올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채대표는 “총선 전에 사이버 테러가 한 번은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 남한을 향해 ‘불바다’ 운운하는 것은 대포나 미사일을 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전쟁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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