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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도박 중독자가 ‘대통령 암살’은 왜?

by 아나코스 2015. 4. 4.

강원랜드 출입하며 10년간 18억 탕진

청와대에 ‘내국인 출입 제한’ 요구하며 협박 편지 보내 
 
[1095호] 2010.10.11  18:11:38(월)  안성모 기자

 

육군 장교 출신의 30대 남성이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춘천지검 영월지청은 지난 10월4일 강원랜드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을 제한하지 않으면 “이명박 대통령을 암살하고 할복하겠다”라는 협박 편지를 청와대에 보내고 암살 계획 동참자를 모집한 혐의로 박 아무개씨(37)를 붙잡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이와 같은 내용의 글을 지난 9월12일 자신의 블로그에도 올렸다. 며칠 뒤에는 청와대와 강원랜드 등에도 같은 내용의 협박 편지를 보냈고, 같은 달 24일에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일러스트 김영석

 

당시에는 비무장 상태여서 훈방 조치되었지만, 수사 당국은 박씨가 암살 준비 행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총포 구입처 등을 파악했는데 집에서 쇠구슬을 사용하는 새총이 발견되기도 했다. 태백경찰서 관계자는 “박씨 주변으로부터 대통령 암살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해왔다. 압수수색까지 했는데, 암살 계획을 세우고 실제 준비를 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박씨는 왜 이런 무모한 일을 벌인 것일까. 그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31일 박씨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서 손도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수차례 내리치는 자해 소동을 벌였다. 20여 분 만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뼈가 드러나 봉합수술을 받을 만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이때도 박씨는 “강원랜드의 내국인 카지노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박 중독자가 양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국인 카지노 금지 법안을 서둘러 만들어달라”라고 요구했다. 자해를 하기 전 그는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국회 앞에서 생을 마감할 계획이다”라는 내용의 공문과 유서 등을 이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보내기도 했다.

이에 앞서 박씨는 지난 1월15일과 22일 강원랜드에 협박 편지를 보낸 혐의로 경찰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정선경찰서 관계자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강원랜드에 협박 편지를 보내 불구속 수사를 했다”라고 밝혔다.

    
장교 출신 박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강원도 태백 출신인 박씨는 자신을 ‘10년 동안 도박이라는 더러운 죄에 빠져 도박 중독자로 전락한 범죄자’라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6백여 차례나 강원랜드에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0년 대위로 예편한 박씨는 이듬해부터 집 근처에 위치한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박씨는 장교 생활을 하면서 모은 자금을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강원랜드에 출입한 지 2년 만에 그는 9억원가량을 탕진했다. 2003년 스스로 카지노 출입 제한을 신청했지만, 이듬해 출입 제한이 해제된 후 다시 4억원가량을 날렸다. 출입 제한 신청과 해제를 세 차례나 반복한 박씨는 지난해 초까지 18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카지노에 쏟아부었다.

그해 6월 박씨는 교통사고로 인해 척추 다섯 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도박에서 손을 뗄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네 번째 출입 제한을 신청했다. 이후 박씨는 강원랜드가 국민을 도박 중독자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이대통령과 최영 강원랜드 사장에게 “내국인 카지노 사업 부문을 즉각 중단하고, 도박 중독자들의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라”라고 요구해왔다.

박씨는 지난 9월30일 국회에서 또 한 차례 일을 치를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한 달 전에 미리 예고를 했다. 그는 8월 말 사기와 횡령, 절도 등 재산 범죄 용의자의 출입을 제한하고 가족 출입 제한 요청 범위를 확대하는 등 ‘출입 제한 규정의 신설 및 강화’를 강원랜드에 요구했다. 박씨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이대통령과 최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할복 시위를 하겠다고 밝혔다. 9월 초에는 ‘최후 통첩’이라는 비장한 표현까지 썼다.

박씨는 8월24일 개설한 블로그에 총 15건의 글을 올렸다. 대부분 강원랜드를 비판하는 글과 도박 중독의 위험성을 알리는 기사들이다. 8월26일 올린 글에서부터 그는 ‘도박 중독으로 인한 범죄 행위를 방관하면서까지 영업을 하는 강원랜드는 회개하라’라고 주장했다. 9월12일 올린 문제의 글은 지금 비공개로 처리된 상태이다.

9월20일 박씨는 마지막 글을 올렸다. 공문에 답신조차 없다며 이대통령에게 ‘상황 파악을 잘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다. 하루 전날인 9월19일에는 “이씨가 마음을 안 바꾸니 최씨인들 별 수 있으랴. 이씨를 먼저 ‘게헨나’로 보내는 수밖에…”라는 글을 올렸다. 게헨나는 성경에서 지옥을 의미한다.

검찰이 박씨에게 살인 예비죄를 적용해 기소할지 여부는 10월8일 현재 결정이 나지 않았다. 영월지청 관계자는 “아직 기소는 되지 않은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수사와는 별개로 박씨에 대한 재판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는 올해 6월 강원랜드 폭파 협박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항소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박씨의 구속을 두고 부당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강원랜드를 폭파한다거나 대통령을 암살한다는 표현은 단지 선언적인 의미인데 수사 당국에서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도박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그의 요구를 강원랜드에서 들어주지 않아서 사장 임명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도박을 걱정하는 성직자들의 모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방은근 고한남부교회 목사는 “군에서 대위까지 지낸 사람이 무슨 폭파를 하고 암살을 한다는 것인가. 가능하지도 않은 일로 구속까지 시킨 것은 웃기는 코미디이다”라고 주장했다. 강원랜드 카지노 앞에서 10년째 도박 중독 예방 활동을 해 오고 있는 방목사는 평소에 박씨를 잘 알고 지내왔다고 한다.

그는 “박씨를 마치 정신 이상자처럼 내모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상식 밖의 사람이 아니며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다. 단지 자신이 겪었던 도박 중독 피해를 막기 위해 마지막 방법까지 동원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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