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1위 NGO 지도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인터뷰
“늘 새로운 생각과 발상 실천하기 위해 애써”
[1087호] 2010.08.17 11:46:17(월) 안성모 기자
ⓒ시사저널 이종현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4)가 걸어온 발자취를 되짚어가면 한국의 시민운동이 어떻게 변화·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그는 1990년대 중반 참여연대의 창립을 이끌었다. 이후 2000년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열어 나눔 문화를 생활 속으로 확산시킨 그는, 2006년 희망제작소를 설립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설계해 나가고 있다. 대권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정치권의 영입 제의가 잇따랐지만 그는 시민사회 진영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난 8월12일 지방에서 강연을 마치고 상경 중이던 그로부터 한국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들었다.
‘시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없나?
당연히 부담스럽다. 시민사회에서 ‘대부’라는 표현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의 리더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달리 시민사회는 공동체를 형성해 함께 일을 해나간다. 모든 활동가, 회원들이 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 진영의 세대교체가 미흡한 것은 아닌가?
세대교체가 안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빨리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현재 시민단체의 실무 책임자들은 대부분 40대이다. 물론 고민이 있다. NGO 리더들이 향후 어떤 분야로 진출해야 할지 아직 선례가 많지 않다.
시민운동을 하기에 과거와 현재의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나?
객관적으로 예전보다 환경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시민사회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 회원도 과거보다 늘고, 관련 전문가도 많아졌다. 그만큼 활동도 활발하다. 단기적으로 위기와 시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재정적인 위기와 활동의 한계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위기가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희망제작소의 경우 정부와의 관계 때문에 많은 지원이 중단되었지만 대신 회원 수가 늘어나 오히려 안정적인 재정 구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일이 잘되면 재미가 없는 것이 시민운동이기도 하다. 흥미를 잃게 된다. 이제 희망제작소도 안정이 되고 해서 다시 고민을 하고 있다. 늘 새로운 생각과 발상을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할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
현 정부가 시민사회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굉장히 단절되어 있다. 좋은 정부는 스스로 일을 다 하겠다고 나서기보다 국민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공무원들을 닦달해서 외형상의 지표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미소 금융이나 사회적 기업 등은 시민사회가 잘할 수 있는 일인데, 이를 정부가 직접 하고 있다. 정부에서 중단하면 그 사업은 다 없어진다. 똑똑한 정부는 직접 하지 않아도 그 일이 잘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4대강 사업을 놓고 정부와 시민사회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데.
자연을 파괴하는 내용도 문제이지만, 추진하는 과정도 큰 문제이다. 국민이 그렇게 반대한다면 최소한 동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동의를 넓혀가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이 정부에서는 그런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이 없다.
시민사회가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시민사회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 단체 중에는 친정부도 많다. 뜻은 다르지만 존립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에 협력하는 NGO만 있어서는 안 된다. NGO의 첫째 기능은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데 있다. 둘째가 보완적인 기능이다.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생산적인 긴장 관계, 서로 견제하면서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NGO에 대해 공부를 좀 했으면 한다.
참여연대의 ‘유엔 서한’에 대해서도 정부의 비판이 거셌다.
이 또한 NGO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유엔이 국가적인 연합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유엔을 움직이는 것은 NGO이다. 어느 국가의 정부가 자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나. 그렇지만 NGO는 자유롭다. 유엔에서 이러한 NGO의 기능을 인정해 자문 자격을 주었고 참여연대도 받았다. 유엔에 의견을 내고 말할 수 있는 발언권이 있다. 이런 기능을 주목한다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얼마든지 이견을 말할 수 있다. 진실 여부를 떠나 과도한 반응이었다.
지난해 국정원의 사찰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최근 ‘민간인 사찰’ 파문을 어떻게 보고 있나?
밑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청와대에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제대로 보고할 수 있는 라인이나 용기 있는 참모가 이 정부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례를 수없이 듣고 있다. 현재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검찰에서 첩보에 의해 얼마든지 수사할 수 있다. 못 들을 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세월이 지나면 다 드러나고 공개될 일들이다.
나눔과 기부를 강조해왔는데 이를 통해 사회가 바뀔 수 있다고 보나?
우리 삶이라는 것이 결국 나눔이다. 누군가와 나누면서 성장하고 함께하면서 성취를 맛보게 된다. 돈과 명망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실천해나간다면 사회가 정말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오히려 나눔과 기부 문화를 잘 이끌고 있다.
정치권에 들어가 사회를 바꿀 생각은 없나?
그럴 생각은 없다. 물론 정치 제도를 통해 바꿀 수 있는 것도 많다. 그 정도는 아닐 수 있겠지만 시민들의 열정적인 참여를 통해 이만큼 바꿔간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좋은 정치 세력이 탄생해 현재의 정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의 인프라와 문화를 튼실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지방선거 후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시장 학교’를 열었는데.
풀뿌리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단체장이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한 지자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깊이 있고 전문적인 식견이 있어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린 것이다. 그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시민운동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보나?
늘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민운동가는 공인 아닌 공인이다. 받는 것은 없는 대신에 부담해야 하는 짐은 무겁다. 끊임없는 시대 과제를 짊어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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