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찬조금 문제 불거진 대원외고, 시교육청 감사와 경찰 수사에 ‘부실’ ‘늑장’ 비판과 함께 의혹 쏠려
[1081호] 2010.07.06 19:32:06(월) 안성모 기자
신흥 명문고로 발동움한 대원외국어고가 ‘불법 찬조금’ 문제로 홍역을 앓고 있다. 한 학부모의 제보로 시작해 서울시교육청의 감사를 받은 데 이어 현재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검찰에서도 이 학교를 비롯해 서울과 경기 지역의 다른 외국어고에 대한 내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시교육청의 감사는 물론 경찰의 수사를 놓고 ‘부실 감사’ ‘늑장 수사’ 등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원외고를 졸업한 동문들과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 학교 출신 인사들이 사회의 핵심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고, 학부모 상당수가 사회 유력 인사들이다 보니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 대원외고 학생들이 입시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 중학생들에게 깎듯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저널>이 확인한 해당 학부모의 제보 자료에는 ‘3년 동안 전체 학부모회가 낸 불법 찬조금 내역’이 각 학기별로 구체적인 액수까지 적혀 있었다. 특히 ‘2007년 3학년 임원(학부모) 활동 일지’에는, 찬조금이 어떤 과정을 통해 거두어졌는지 날짜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보자가 직접 작성한 이 자료에 따르면, 그해 3월14일에 첫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교장과 교감, 3학년 부장교사 등 세 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임원들이 뽑지도 않았는데 회장과 총무는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다른 학부모로부터 회장과 총무는 학교에서 임명한, 학교가 심어놓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잘 도와 달라’라는 부탁과 함께 학교 관계자들은 자리를 떠났고, 이후 회의를 진행한 회장은 “각반 회장, 부회장 학부모가 각각 40만원씩 내면 어떻겠느냐”라고 동의를 구했다. “참석 못한 분들도 있고, 그 중요한 사항을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에 회장은 “그런 식으로 돈을 못 낼 것이면 그 반 담임은 모든 것에서 빼버릴 테니 그런 줄 알라”라고 했다. 회장은 또 “이 많은 돈을 학기마다 걷어서 어디에 어떻게 썼느냐”라는 질문에 “각 학년 선생님 회식비, 비담임 포함 경조사비, 학교 음료수 값, 고등학교 3학년이니까 대학 관계자 로비 활동비에 쓰는 등 여러 가지이다”라고 설명했다.
4월15일 모임에서는 보름 뒤에 졸업 사진을 찍는 날 담임 회식비로 10만원이 반 회비에서 나가야 한다며 ‘선 결정, 후 통보’를 요청해왔다. 회장은 “근거가 남기 때문에 서류로 작성해 보여 주는 것은 할 수 없다. 여태껏 먼저 쓰고 통보했기 때문에 먼저 허락받고 쓰는 것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4월19일에는 한 임원 학부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른 한 학부모가 교감에게 전화로 “물칠판비 명목으로 반 회비 30만원을 걷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항의를 했다는 것이다. 3년 동안 학교에 진정을 낸 사람은 처음이라고 한다. 5월11일 임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열린 입시 설명회에서 3학년 부장교사는 “3학년에서 잡음이 있으면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마지막 모임이 열린 9월3일 총무가 3학년 1학기 동안 쓴 내역서 한 장을 만들어 왔다. 제보 학부모는 미리 준비해간 디지털 카메라로 세밀하게 동영상을 찍었다. “명문고에서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모교의 수치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자 “혼자 불만을 토로한다”라며 몰아세웠다고 한다. 이 학부모는 동영상으로 찍은 ‘2007년 3학년 학급 간부 학부모회 결산서’를 포함한 모든 증빙 자료를 불법 찬조금 모집의 근거로 제시했다.
▲ 전국 외국어고등학교 전·현직 교장 장학협의회 임시총회에 참석한 최원호 대원외고 교장. ⓒ연합뉴스
비리 사안인데도 시교육청은 수사 당국에 고발하지 않아
<시사저널>은 이 자료에 담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회장과 어렵게 전화 통화를 가졌다. 그는 “3년이나 시간이 흘러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착각했을 수도 있는데 일일이 맞대응할 생각은 없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 조사는 아직 받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제보 학부모는 경찰에서도 이미 관련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경찰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고발장이 접수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경찰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물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당 수사를 맡은 서울 광진경찰서 관계자는 “수사가 진행 중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봐주기 수사’ 의혹 등에 대한 지적에 이 관계자는 “말하기 곤란하다. 너무 공개되면 수사에 애로 사항이 많다”라고만 밝혔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발표한 감사 결과에서 이미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대원외고가 2007년부터 3년간 학부모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불법 찬조금은 21억여 원에 이른다. 2007년의 경우 학부모회 임원들이 100만원씩, 일반 학부모들이 60만원씩 갹출해 9억3천여 만원을 거두었고, 2008년과 2009년에는 학부모 1인당 50만원씩을 거두어 6억여 원의 돈을 모았다. 이렇게 조성된 찬조금 중 3억여 원은 야간 자율 학습 지도비 2억5천여 만원, 스승의 날 및 명절 선물비 4천5백만원, 회식비 1천100여 만원 등의 명목으로 교직원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 교장과 교감을 비롯해 상당수 교사들이 1인당 수백만 원에서 1천만원의 금품을 챙긴 것이다. 또, 1억9천여 만원은 학교발전기금으로 기탁되었다.
이처럼 금품이 광범위하게 오간 비리 사안인데도 시교육청은 수사 당국에 고발을 하지 않아 빈축을 샀다. 결국,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등이 고발하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다. 감사 결과에도 의문이 남는다. 학부모 자체 모임 경비로 어떻게 9억5천여 만원이나 쓰였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의혹을 받고 있는 ‘대학 관계자 유지비’에 대해서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자 교육계 안팎에서는 “수사가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계의 한 인사는 “경찰에서 워낙 거물 학교라 솔직히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원외고의 경우 학부모나 졸업생 중에 검사나 판사가 많다. 이들이 한창 실무진에서 힘을 쓸 시기이다 보니 알아서 눈치를 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대원학원의 불법 찬조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말에도 시민사회단체에서 대원외고 교장과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대원중 교장 등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고발 의뢰인에게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무혐의 처분으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한 교육계 인사는 “최근에 무슨 수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아보려고 경찰서에 갔더니, 검찰로 넘어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검찰에 찾아갔더니 경찰에서 자체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도 불법 찬조금 문제가 걸려 있었는데 이것 하나라도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이런 일이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대원외고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현재로서는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원호 교장은 “경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로서 지금은 할 말이 없다. 경찰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이야기하겠다”라고 말했다. 학교 내부에서는 이번 사건이 자체 징계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학교 재단측은 이사장을 해임하고 대원외고 교장에게 정직 3개월, 교감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이사장까지 해임되었는데, 이미 일단락된 일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부모들 중에 정·재계는 물론 법조계에 있는 인사들도 많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나서겠나. 그리고 높은 데서 잘 봐달라고 해서 일선에서 듣겠나. 도와달라는 말도 못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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