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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사회

검은 실체 드러낸 외고 ‘뒷돈 입학’

by 아나코스 2015. 4. 2.

서울외고 재단 이사장 수십억 원 횡령 혐의 포착돼 
 
[1078호] 2010.06.15  01:45:09(월)  안성모 기자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대형 ‘부정 입학’ 사건이 터졌다. 도봉구 창동에 있는 서울외국어고등학교(이하 서울외고)가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정황이 무더기로 드러난 것이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 김회종)는 이 학교의 재단 이사장인 이 아무개씨(39)의 횡령 여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혐의를 포착했다. 입시 명문고로 자리 잡은 외고에서 부정 입학 사례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적은 아직까지 없다. 그런 만큼 관련 혐의가 사실로 입증될 경우 향후 교육계에 미칠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 재단이사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도봉구 창동 서울외국어고등학교.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은 최근 수년간 학원 재산 6억2천여 만원과 교비 10억8천여 만원 등 총 17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이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거래 업체의 시설 공사 수주 대가와 스쿨버스업체 선정 대가 등으로 4천2백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사장의 어머니이자 이 학교 교장인 김 아무개씨도 교비 횡령을 공모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학교 거래 업자들에게 거래 금액을 과다 지급해 되돌려받거나 허위의 비용을 계상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 이 학교 설립자인 이씨의 아버지를 포함한 일가족은 학교명의 카드를 1~2장씩 소지해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부정 입학도 대담하게 이루어졌다. 입학 정원의 3%에 해당하는 학생을 정원 외로 뽑을 수 있는 제도를 악용했다. 정시 입학시험에 탈락하는 등으로 일반고에 배정된 학생을 공고나 시험 등 절차를 생략한 채 입학시켰다. 지금까지 파악된 부정 입학자는 2007년에 여섯 명, 2008년에 한 명 등 2년간 총 일곱 명이다. 한 학부모가 자녀의 입학 대가로 지불한 돈은 5백만원에서 1천만원이다. 이를 합하면 5천5백만원에 이른다. 이러한 부정 입학은 암암리에 이루어진 관행으로 보인다. 설립자가 이사장이던 시절에는 부정 입학 규모가 더욱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과 2004년 두 해에 걸쳐 전입생의 학부모 20명으로부터 모두 1억7천여 만원을 받았다.

아직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입학뿐 아니라 전학 대가로 돈이 오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외고의 한 교사는 “학교로 누가 전학을 오면 학생들 사이에서 ‘얼마를 내고 왔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실체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A외고는 3천만원, B외고는 1천만원’ 식의 얘기가 있다. 이번에 검찰 수사를 보면서 ‘그것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밝혔다. 실제 검찰은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전학생 11명의 학부모로부터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1인당 100만원에서 1천만원까지 총 3천2백만원을 수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대가 관계를 인정하기가 곤란하다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입학을 하거나 전학을 할 경우 다른 학생들과 성적 차이가 커서 대학 진학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부정 입학·전학의 수요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에 있는 한 사립학교 재단 관계자는 “내신에서 꼴찌를 해서 좋은 학교에 못 갈 지경이면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외고 출신이라는 간판을 다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사장 측 “개인 용도로 유용한 것 아니다”주장

교사 등 학내 구성원들이 이러한 사태를 사전에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서울외고의 또 다른 교사는 “이번 사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달 전쯤 검찰 수사관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컴퓨터 등을 압수해 가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리고 당사자들이 입을 다물면 없던 일이 되고 만다.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역시 비리 의혹을 공론화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소문이 퍼지면서 학교로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나서기는 힘들다. 학교가 구설에 오르면 입시에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 제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지적된다.

서울외고는 예전에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지난 2004년 학교법인을 한 교회에 매도하는 과정에서 큰 홍역을 앓기도 했다. 당초 학교법인은 현 이사장의 아버지가 1978년에 인가를 받은 천호학원이었다. 그는 1980년 천호상업고등학교를 개교해 본격적으로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학교는 위례상업고등학교, 위례정보고등학교 등으로 교명이 바뀌었다.

이 재단의 사정에 밝은 교육계 인사들에 따르면, 설립자 이씨는 1990년대 초 가격이 치솟은 강동구의 학교 부지를 팔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노원구로 학교를 이전했다. 이때 100억원 이상 차익을 남겼고, 이 돈으로 1994년 서울외고를 설립했다. 이후 10여 년간 두 학교를 운영해 오다가 2004년 학교법인 매각에 나섰다.

이씨측은 두 학교를 분리해 서울외고는 계속 운영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청의 허가가 나지 않아 결국 두 학교 모두 교회에 양도되었다. 당시 이씨가 아파트 건설·분양 관련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큰돈을 날렸고, 이로 인해 학교 운영이 힘들어졌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말 그의 아들인 현 이사장이 청숙학원이라는 별개의 학교법인을 설립한 후 서울외고를 되돌려받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형식상 다른 재단이지만 사실상 부자간 승계를 한 셈이다. 이듬해인 2006년 초 학교 상담실을 맡고 있던 설립자의 부인이자 이사장의 어머니인 김씨가 교장을 맡으면서 현재의 ‘족벌 체제’가 형성되었다.

곧이어 부정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다. 설립자 이씨는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0년부터 2005년까지 각종 공사비와 비품 구입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학교 공금 24억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4년이 지나 아들도 같은 혐의로 법망에 걸렸다. 검찰은 이들 가족이 그동안 학교를 운영하면서 빼돌린 돈이 10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이사장 일가족은 검찰에서 제기한 혐의에 대해 일부 관련 사실을 인정했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돈을 유용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외고 설립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 중에서 교육부에 신고하지 못한 채 빚으로 남은 돈이 상당해 이를 갚는 데 썼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인지 재단측을 통해 알아보려고 했지만, 학교 관계자는 “현재 학교에 재단 관계자가 아무도 없다. 교감도 교육을 받으러 가서 요즘 학교에 안 나온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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