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100일 작전’ 세우고 집중 ‘대공 수사’ 45명 검거
범민련 인사 10명 무더기 연행
[1034호] 2009.08.10 19:14:17(월) 안성모 기자
▲ 6월22일 서울경찰청 제1기동단 앞에서 민주주의 수호·공안 탄압 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가 경찰폭력인권감시단 발족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경찰 관계자가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위자들에게 매 맞는 경찰관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강희락 경찰청장이 지난 3월9일 취임식에 앞서 기자실을 방문해 한 말이다. 용산 참사로 위기를 맞은 경찰의 구원투수로 나선 당시 상황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듯했지만, 강청장의 이날 발언은 이후 집회·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응을 예상하게 했다. 강청장은 며칠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사법 처리하겠다”라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경찰이 최근 야당과 일부 언론, 재야 시민단체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은 ‘공안 수사’와 ‘과잉 대응’이다. 지난 8월5일 평택 쌍용차 노조 시위 진압 과정에서 또 한 차례 과잉 진압 장면이 방송에 공개되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은 ‘불법에는 예외가 없다’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지금의 기조에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앞으로도 계속 충돌이 예상된다.
여러 차례 ‘악재’를 경험한 경찰이었지만 강청장은 여전히 각종 집회·시위에 대해 강경 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서울광장에서 열린 6·10 범국민대회 직후 현장에 남은 일부 참가자들을 강제 해산시키면서 24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삼단봉과 방패를 휘둘러 폭력 진압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정국에서 보여준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결식 노제 다음 날 새벽, 경찰은 버스 30대를 동원해 서울광장을 완전 봉쇄했다. 지난 8월3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당·시민단체의 기자회견도 미신고 불법 집회로 규정해 참가자들을 전격적으로 연행하는 등 경찰은 집회·시위와 관련해 사전 봉쇄와 사후 연행을 병행하며 계속 실적을 올리고 있다.
경찰은 또 집회·시위에 대응해 방패막을 칠 수 있는 차벽용 차량 10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 7월30일 공개된 이른바 ‘트랜스포머 차벽’은 평상시에는 화물 트럭으로 사용하다가, 시위 방어에 동원될 때는 길이 8.6m, 높이 4.1m, 두께 1㎝의 반투명 소재 방패막이 트럭 옆면에서 펴져 시위대의 진입을 막도록 만들어져 있다.
한편으로 보안사범 검거에도 적극적이다. 경찰은 과거 부정적인 공안 이미지 때문에 다른 사정 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었던 대공수사를 현 정부 들어서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나섰다. 강청장 취임 얼마 후인 4월2일부터 국정원과 공조해 비공개로 진행한 이른바 ‘보안사범 검거 100일 작전’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 침해 논란에 “법 절차 철저히 지켜 문제 없다” 해명
▲ 지난 5월 범민련 건물 압수수색 당시 몸싸움을 벌이는 경찰과 범민련 관계자. ⓒ연합뉴스
<시사저널>이 입수한 경찰청의 ‘안보위해사범 집중 수사 결과’ 자료를 살펴보면, 경찰은 이 기간에 여성 여덟 명을 포함해 모두 45명을 보안사범으로 검거했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검거한 보안사범 40명을 훌쩍 넘긴 숫자이다. 경찰의 보안사범 검거 건수는 2005년에 33건, 2007년에 39건 등 최근 몇 년 동안 두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단 100일 동안 45명을 검거한 추세로 볼 때, 세자릿수를 넘을 전망이다.
검거자 중에는 범민련 남측본부 인사가 가장 많았다. 이규재 의장과 이경원 사무처장, 최은아 선전위원장 등 무려 10명에 이른다. 이들은 대부분 이적 단체 가입과 이적 표현물 제작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다음으로 한총련 등 대학생 운동권 간부들이 일곱 명이나 검거되었다. 이들 역시 혐의 내용은 이적 단체 가입과 이적 표현물 제작 등이다. 소속 단체가 없는 검거자도 20명에 이른다. 대부분 이적 표현물과 관련한 혐의로 검거된 경우이다.
100일간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집중 수사는 검거 실적이 많은 만큼 무차별적 공안몰이 수사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안보위해사범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해 왔는데, 지난해 촛불 시위 등 수년 전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아 무분별하게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서울경찰청은 6월24일 2006년 홍익대 총학생회장과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의장을 지낸 김 아무개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하지만 2007년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이후 경찰의 출두 요구조차 받은 적도 없이 정상적으로 직장에 다녔고, 현재는 병으로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이었다.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의 학생회 간부들도 속속 연행되고 있다.
이에 앞서 광주경찰청은 6월13일 이 아무개씨를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2000년 8기 한총련 의장을 지낸 이씨는 이미 2007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였으나, 검찰은 이씨에 대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로 출두요구서를 발부해 수배를 연장했었다. 6월19일에는 4~5명의 경찰이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대 근처에서 정태호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연행하려다가 시민들의 제지로 실패한 일도 있었다.
지난 7월10일로 ‘집중 수사’는 마무리되었지만, 보안사범에 대한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7월30일 아침 출근길에 나선 김 아무개씨는 국정원과 서울시경 소속이라고 밝힌 수사관들에 의해 자택 압수수색을 당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되었다. 김씨는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검거 당시 김씨가 임신 7주차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이 일었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필요로 하는 임신부를 아침 출근길에 구치소에 구금한 것은 명백히 반인권적인 시민 탄압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김씨는 지금까지 공안당국의 소환 요구를 단 한 차례도 받아보지 않았다”라며 공정한 법적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보안사범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 논란이 이는 데 대해 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인권과 법 절차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의 제기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모두 개방된 시대에서 무리하게 수사할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임신부 검거에 대해서는 “실정법을 위반해 법적 절차에 따랐다. 수사를 하다가 임신을 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강희락 청장 취임 이후 인권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경찰의 보안사범 수사는 계속 진행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 관계자는 “우리 업무 자체가 안보위해사범 수사 활동이다. (이번처럼) 특별히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안보위해사범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보안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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