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부 추진 WCU, 사업단 선정 과정 잡음 여전
대학들, 4월 2차 결과에 촉각
[1010호] 2009.02.24 02:05:37(월) 안성모 기자
▲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왼쪽 아래 가운데)과 각 대학 총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정기 총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력을 육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교육 개혁의 핵심은 경쟁력 강화에 있다. 공교육 내실화 방안도 그렇지만 대학 교육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신년사에서 “국가 경쟁력은 대학과 연구 기관의 경쟁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안장관은 “대학 교육이 산업 현장의 수요와 괴리되어 있고, 연구 또한 질적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라고 진단하면서 “대학의 교육 역량 강화 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WCU) 육성 사업은 이러한 정부 방침 아래 진행 중인 대표적인 대학 재정 지원 사업이다. 세계적인 석학을 비롯한 해외 유력 학자들을 초빙해 대학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한편, 우수한 인재들을 양성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과부는 5년간 총 8천2백50억원이라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연간으로 따져도 지원액이 1천6백50억원에 이르는 대형 국책 사업이다.
정부로서는 대학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WCU 사업은 출발부터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채 삐걱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계 수준의 연구와 교육,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우선 지난해 지원 사업단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 해를 넘겨서도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 분위기이다. 교과부에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지만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 해 지원액만 1천6백50억원
심사 평가 방식과 관련해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대략 세 가지이다. 먼저 원칙이 훼손되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청 마감일 이후에 구술 발표 항목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물론 해당 과제에 대한 평가위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이같은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교과부는 또 구술 발표가 점수에 반영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모 이전에 미리 점검해서 이 방식을 채택했더라면 소모적인 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지원했던 분야와는 다른 분야에서 심사를 받은 경우도 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모두 8개 사업단이 지원 분야가 바뀐 상태에서 심사를 받았다. 이들 중에서 1곳이 최종 심사에 통과했고, 나머지 7곳은 탈락했다. 교과부는 참여한 교수들의 이력과 과제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분야에 지원한 경우 동의를 구하고 변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사 통과에 유리한 분야를 선택해 지원하는 폐해를 막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의미이다. 이 또한 공모 요강 등에 명확히 적시함으로써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좀더 더 효율적이고 뒷말도 나오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전국·지방 단위로 신청받아놓고 평가는 같은 기준으로 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전국 단위와 지방 단위로 구분해 신청을 받았는데, 평가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은 채 같은 기준을 두고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지방 대학들의 탈락이 상대적으로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대가 지원액 3백17억원으로 독식을 하다시피 한 반면, 지방 대학의 경우 지원 액수를 떠나 선정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공모에 신청했던 한 지방 대학 교수는 “100m 달리기와 1천m 달리기 경기를 구분해 신청을 받아놓고 100m 달리기만 해서 순위를 정한다면 과연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심사가 공정했느냐 여부를 떠나 경기 방식과 규칙이 이런 식으로 바뀌니까 신뢰를 잃게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WCU 사업은 예산 자체가 전국 단위와 지방 단위로 나뉘어 있다. 1천6백50억원 중 4백억원은 지방 몫으로 배정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심사 자체도 전국과 지방을 구분해 진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교과부도 지방 단위 예산을 전국 단위로 전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배정된 목적에 맞게 예산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심사 결과 합격 기준에 못 미치는 과제를 통과시킬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재원이 분리되어 있다고 해서 실력이 없는데도 뽑아주는 것은 결국, 예산 낭비이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교과부가 발표한 2차 사업 공모 내용은 이같은 입장과 다소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오는 4월 중순께 선정 결과가 나올 예정인 2차 사업은 앞서 선정이 적었던 인문 사회 분야와 지방 단위 과제를 주요 대상으로 해서 추진되고 있다. 전국 단위 지원금 약 90억원의 두 배인 약 1백80억원이 지방 단위 과제에 배정될 정도로 지방 대학을 배려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로 인해 지방 대학을 중심으로 불거졌던 불만의 목소리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추가 선정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와 대학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2차 사업 선정 결과에 따라 논란의 불씨는 또다시 살아날 수 있다.
일각에서는 WCU 사업의 실무를 총괄하는 한국과학재단이 기구 통합을 앞두고 있어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현 정부 들어 교과부로 통합되면서 두 부처에서 연구 개발 사업을 관리해온 과학재단과 한국학술진흥재단 그리고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될 예정이다. 이미 예고된 사안이지만 관련 법안인 한국연구재단법의 국회 통과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단 통합 과정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 한국과학재단 관계자는 “WCU 사업은 신규 사업이지만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뿐 아니라 우리 재단과 학술진흥재단에서 추진하는 사업 모두 잘 운영되고 있다”라며 재단 통합이 기존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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