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18일 오전, 한국마사회 직원들이 충남 홍성을 찾았다. ‘화상경마장’이라 불리는 마권 장외발매소 신설 부지로 거론되고 있는 서부면 신리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답사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70여 명은 마사회 직원들이 타고 온 차량 앞까지 따라가 “도박장은 절대 들어올 수 없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7~8명으로 구성된 답사단도 “사진 촬영은 안 된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마사회의 화상경마장 설치를 놓고 지역 사회가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 논란이 3년 넘게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홍성과 경기 파주·김포 등이 화상경마장 추가 신설 지역으로 거론되자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화상경마장을 ‘도박장’으로 규정하고 “도박장을 설치하는 사안인데 지역 주민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승인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8월19일 서울 용산구 한국마사회 용산지점 옆에서 인근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도박장 추방 집회를 열고 있다.
“화상경마장, 마사회 돈벌이 수단에 불과”
마사회는 2014년 3월19일 ‘경마공원’ 이름에서 ‘경마’라는 단어를 뺐다. 대신 ‘렛츠런(LetsRun)’이라는 새 대표 브랜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서울경마공원은 렛츠런파크서울로 명칭이 바뀌었다. 부산·경남과 제주에 위치한 경마공원도 마찬가지다. 화상경마장(장외발매소)은 렛츠런CCC로 이름이 변경됐다. CCC는 문화공감센터(Culture Convenience Center)를 의미한다. 마사회는 이날 혁신경영선포식에서 ‘레저스포츠로서 경마 인식 확산’과 함께 ‘장외발매소의 지역 주민과 상생·소통 공간 변신’을 약속했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마사회의 이러한 노력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경주마들의 치열한 경합을 직접 볼 수 있는 경마공원(렛츠런파크)의 경우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다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장 내 트랙으로 둘러싸인 가족공원에서 휴일을 보내는 가족들이 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로 거론된다.
반면 화상경마장(렛츠런CCC)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화상경마장 주변은 도박중독·가정파괴·강력범죄 증가 등의 문제로 주민들의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화상경마장은 출입자의 79%가 중독증상을 보이는 악마의 사행사업이다”…. 화상경마장 설립을 반대하는 측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이들은 “화상경마장은 마사회의 돈벌이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올해 6월 발간한 ‘2015년 사행산업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사회의 총매출액은 7조7322억원이었다. 이 중에서 5조3070억원이 화상경마장이 올린 매출이다. 전체의 68.6%에 이른다. 이용객 수는 총 1361만7000명 가운데 827만4000명이 화상경마장 이용객이었다. 전체의 60.8%에 해당한다. 실제 경주가 벌어지는 경마장보다 스크린으로 중계하는 화상경마장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경마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는 것과 달리 화면만 보고 베팅하는 화상경마장은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마사회 입장에서는 영업장을 늘리면 늘릴수록 더 남는 장사로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일종의 규제를 뒀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마사회 장외발매소를 전국 지자체에 32개소로 제한했다. 현재 수도권 23개소(서울 10, 인천 4, 경기 9)에 지방 7개소(부산 2, 대전·천안·대구·창원·광주 각 1)를 합쳐 총 30개소가 운영 중이다. 최근 논란은 마사회가 나머지 2개소를 추가 신설하겠다고 나서면서 불거졌다.
화상경마장 유치에 나선 지자체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들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도박 시설이 아니라 주민 편의 시설인 복합문화센터를 건립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내놓는다. 반면 화상경마장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히려 유해 환경이 들어서면서 지역이 황폐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권 규제 움직임에 신설 서두르나
마사회가 장외경마장 신설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정치권의 규제 강화 움직임이 놓여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28일 “주민의 충분한 동의가 없는 경우에는 장외발매소의 설치·이전 또는 변경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며 마권 장외발매소를 설치·이전 또는 변경할 경우 19세 이상 주민 총수의 2분의 1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하는 한국마사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만약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화상경마장의 추가 설립은 사실상 힘들어진다. 그 전에 남아 있는 2개소의 화상경마장을 신설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관련법 개정안을 내놨다. 박 의원은 8월18일 “사행성이 강한 장외발매소가 주거지역과 학교의 경계로부터 일정 범위 내에는 설치되지 못하도록 하고, 중·장기적으로 장외발매소의 외곽 이전 및 축소 등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30개소 화상경마장은 대부분 지하철역 부근이나 주거지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모집공고는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최근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마사회는 장외발매소 추가 설치와 관련해 “찬성 여론과 부정 여론이 혼재돼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후 “문화센터 활성화, 지역일 자리 창출, 기부금 확대, 봉사활동 등 지역 상생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시행 중에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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