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들 귀환…연희동 찾는 발길 부쩍 많아져
안성모 기자·조유빈 인턴기자 | 승인 2013.07.29(월) 17:21|1241호
“측근들이 모여서 회의를 갖고 언제까지 납부한다는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과 관련해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법조인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고 검찰 수사도 전 방위로 압박해 오는 상황에서 과거 ‘유별난 충성심’을 자랑해온 ‘역전의 용사들’이 무엇인가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이 여론의 도마에 오른 이후 연희동 자택을 방문하는 손님의 발길이 늘어났다.
전 전 대통령측과 교류해온 한 정치권 인사는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며 “걱정이 되니까 한 번씩 찾아가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5공 화국 핵심으로 전 전 대통령을 지근에서 보좌했던 인사들이 여전히 들락거리기는 하지만 추징금 문제 때문에 특별히 모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전 전 대통령측 핵심 인사들도 연희동 자택을 찾는 이유에 대해 ‘말동무나 해드리기 위해서’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 및 측근들과 2009년 6월30일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 연합뉴스
하지만 검찰이 전 전 대통령의 친인척은 물론 측근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수사에 나서면서 5공화국 실세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전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통치 자금’이라고 주장한 수천억 원대의 뇌물을 기업으로부터 받아내는 데 직·간접으로 일조했다. 몇몇 인사는 퇴임 이후에도 ‘비자금 관리자’로 의심받아왔다.
1995년 ‘전두환 비자금’ 수사 때는 손삼수·장해석·김철기씨가 이른바 ‘연희동 금고 트리오’로 주목받았다. 이들 중에서 손삼수씨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1사단장으로 있을 때 전속 부관으로 인연을 맺은 그는 전 전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에서 재무관을 맡아 비자금 관리를 도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경매로 나온 전 전 대통령의 벤츠 승용차를 낙찰받아 돌려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현재 웨어밸리라는 소프트웨어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했던 장해석씨는 퇴임 후 공식 비서관(2급)으로 전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런 만큼 상당 기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맡아왔다. 손씨처럼 청와대에서 재무관을 지낸 김철기씨도 검찰 수사 당시 압수수색을 받았다. 다만 손씨와 달리 장씨와 김씨의 현재 근황은 공개된 바 없다. 두 사람 다 연희동에서 근무하다가 비자금 수사 착수 전 미국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장씨가 국내에 거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타 공인 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30억원의 용돈을 하사받기도 한 장세동씨는 여전히 ‘주군’ 곁을 지키고 있다. 5·18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까지 내기도 한 그는 2002년 대선 출마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해 6월 ‘특전사 마라톤대회’에서 특전사전우회 자문위원 자격으로 얼굴을 비쳤다. 수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해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쿠데타 주역 ‘2허·1이’ 정치적 운명 엇갈려
청와대 비서실에서 비서관을 맡았던 민정기씨는 지금도 전 전 대통령의 비서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측의 대언론 창구이기도 하다. 민씨는 7월22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들은 과장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왕 검찰과 국세청에서 집행에 나섰으니 재산 은닉 여부에 대해 결과가 나오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안기부장을 지낸 안무혁씨는 민주자유당 전국구 의원으로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5·18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된 후 정치권을 떠났다. 현재 한국발전연구원(한발연)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한발연은 안씨 주도하에 1990년 만들어진 연구기관으로 퇴역한 정·관·재계 인사 100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공식적인 활동은 중단된 상태다. 황해도 출신인 안씨는 황해도중앙도민회 회장으로서 ‘황해도민의 날’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국세청장을 지낸 성용욱씨는 6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가족과 관련한 구설까지 겹쳐 10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2009년 국세청장 간담회 자리 등에 간간이 얼굴을 비쳤지만 2013년 1월에 가진 국세청 전·현직 직원 친목 모임인 국세동우회에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5공화국 후반기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씨는 14대 총선을 앞두고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의원 선거 출마비로 10억원을 받았다. 2011년 세상을 떠난 그가 국립묘지에 안장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에 박승춘 국가보훈청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5·18 단체를 비롯한 국민의 반발을 샀다.
12·12 쿠데타의 주역으로서 집권 초기 최고 실세로 통했던 ‘2허·1이’의 운명은 엇갈렸다. 하나회 출신으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허화평씨는 정치적 야망을 갖고 14대와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현대사회연구소 소장을 거쳐 현재 미래한국재단 소장직을 맡고 있다. 이 재단은 정치·사회·교육·문화를 연구하며 <월간 지방자치>를 발행하고 있다. ‘전두환 비자금’을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한 그는 지금도 꾸준히 5공화국 인사들과 만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에서 사정수석비서관을 지낸 허삼수씨는 1998년부터 국제장애인협의회 이사장직을 맡은 것 이외에는 근황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자택에는 간간이 들렀었는데 최근에는 발길이 뜸하다고 한다. 민정수석비서관과 안기부 2차장을 지낸 이학봉씨는 13대 국회부터 내리 3선을 했다. 그는 지난 5월 JTBC와의 인터뷰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북한군을 광주로 집합시켜서 이용하지 않았겠느냐는 의심은 있지만 잡지는 못했다. 증거만 있었으면 우리가 그걸 공개적으로 했을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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