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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정치

국회의원 그림자냐 비정규직 돌격대냐

by 아나코스 2015. 3. 30.

멱살잡이에 뇌물 비리까지 ‘의원 보좌관 잔혹사’ 
 
[1012호] 2009.03.10  02:45:33(월)  안성모 기자 

 

 

▲ 지난 3월2일 국회가 파행되는 가운데 민주당 보좌진들과 당직자들이 경찰의 봉쇄를 뚫고 국회 본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싸움을 펼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당신 어느 의원실에서 일해?”

여야 간 2차 입법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3월2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막으며 벌인 연좌 농성이 한창인 가운데 홀 주변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한나라당 의원실 보좌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막말을 해도 되는 거냐?”라며 따지고 있었다. 별일 아닐 수도 있는 말다툼이 욕설이 되어 오가면서 큰 싸움으로 번질 판이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다른 보좌진들이 만류하며 상황이 일단락되었지만 양측 모두 분을 삭이지 못한 듯이 보였다.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었지?” 다른 고참 보좌관이 혀를 찼다. “당이 다르더라도 우리끼리는 서로 존중해주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의 경우 ‘모시는 의원’이 어느 당 소속이냐를 떠나 일종의 ‘동료 의식’이 있다. 국정감사나 정치 현안을 놓고 경쟁 관계에 놓일 때도 있지만 가능한 한 직접적으로 부딪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의원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보좌진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당이 다른 의원실로 옮겨가는 보좌진도 적지 않다.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할 경우 같은 당 의원실 보좌진보다 더 친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야 간에 격한 대립이 반복되면서 보좌진들의 신경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러다 보니 대치 상황 중에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도 발생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밀고 밀리는 몸싸움에 얼굴을 붉히다 보면 돌아서서 다시 마주치기가 머쓱해진다.

국회의원이 배우라면 보좌진은 작가이자 연출가로 비유되곤 한다. 의원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배우가 되려면 우선 좋은 대본이 필요하고 또 효과적인 연출이 있어야 한다. 그 역할을 보좌진이 맡는다. 국정감사 기간 의원회관의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도 질의 자료를 작성하기 위해 밤을 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좌진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가 의원의 정책 능력을 가늠케 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의원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이 보좌진의 몫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보좌진이 배우 역을 직접 맡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여야 입법 전쟁이 펼쳐지면서 이른바 ‘몸빵’에 앞장서는 상황이 잦아진 것이다. 수성과 공성이 오간다. 때로는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 회의장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이를 뚫고 회의장에 진입하기 위해 ‘동원령’이 내려진다. 지난해 말 1차 입법 전쟁이 펼쳐질 당시 민주당 의원실 보좌진들은 국회 본청에 갇힌 채 며칠을 보내야 했다. 본청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아닌 경우 출입을 통제해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정감사 질의 자료 밤 새워 만들어

 

 

▲ 한 의원사무실에서 보좌관 등 직원들이 자료를 쌓아둔 채 일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보좌관은 “국회 농성이 있으면 의례적으로 동원령이 떨어진다. 문제는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감정적인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경찰이 나서면서부터 대립 양상이 격해졌다고 한다. 그는 “국회가 직장인데 출입을 통제한다고 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있겠나.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이 높아지고 격렬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실 보좌진들의 입장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공수가 뒤바뀐 2차 입법 전쟁에서 본청에 들어가지 못한 대다수 보좌진은 의원실에서 대기 상태에 있었다. 앞서 민주당이 침낭과 음식 등을 의원들에게 전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준비’가 부족했던 셈이다. 하지만 상황이 길어질 경우 언제든지 ‘동원령’이 내려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역할에 차이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한 재선 의원의 보좌관은 “17대 국회 때 보좌진은 무조건 당원이어야 하고, 아닌 경우 입당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다. 당에서 결정한 사항을 보좌진이 따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몸이 힘든 것도 그렇지만 자칫하면 ‘국회 폭력’의 주범으로서 범법자 신세가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지난 3월3일 “국회는 법치주의가 더욱 엄정하게 실현되어야 할 곳인데도 폭력적 행태가 그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엄정한 대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법무부는 국회 폭력 사건에 대한 수사팀을 보강할 계획이며,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의 정치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적 제재만으로 그 행태가 완전히 사라질지 의문스럽다. 자의든 타의든 폭행 사태에 연루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불거지는, 비리에 연루된 보좌진의 일탈 행위도 동료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어느 조직에서나 발생하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길 수 있지만 아직도 곱지 않은 주변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보좌관이 권력을 행사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15대 국회에서부터 활동해온 한 보좌관은 “요즘에도 보좌관에게 돈을 갖다 주며 로비하는 사업가가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그는 “설령 뇌물을 준다 해도 로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의원이 직접 관여한다면 모를까 보좌관이 힘써서 안 되는 일을 되게 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보좌관은 힘 없는 자리”

정무 역할을 맡던 보좌진이 줄어들고 정책 담당 보좌진이 늘어난 점도 불법 로비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당 중진 의원의 한 보좌관은 “과거 정무 보좌관이 지역구를 챙기면서 딴 주머니를 차기도 했다. 대부분 개인적인 용도보다는 선거 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책 보좌관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현재 열에 아홉은 정책 보좌진으로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은돈의 유혹은 여전히 국회 주변을 맴돌고 있다. 특히 상임위원회 활동과 관련된 부적절한 로비는 언제든지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다. 최근 지방의 한 건설사가 부도 난 아파트를 주택공사(주공)에 팔아넘기는 과정에서 뇌물이 오간 단서가 포착된 사건도 마찬가지 의혹을 받고 있다. 건설업자의 로비 대상으로 주공의 간부와 함께 한 의원 보좌관이 거론되고 있다. 이 보좌관은 지난 17대 국회에서 건설교통위원회 소속인 여당의 중진 의원 밑에서 일했다.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건설업자로부터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때때로 터져나오는 일부 보좌진의 비리 의혹은 선량하고 정직한 대다수 보좌진의 마음을 씁쓸하게 한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17대 국회에서 건설교통위원회 소속 의원의 정책을 담당했던 한 보좌관은 “사업자와의 유착도 당연히 막아야겠지만 이에 앞서 정부 기관과 공기업의 국회 업무부터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직 정권 초기라 조심하는 경향이 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제도적으로 감시·감독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보좌진들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 흔히 하는 푸념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의 비애이다’라는 말이다. 국회의원 한 명이 채용할 수 있는 보좌진은 모두 여섯 명이다.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과 6, 7, 9급 비서가 각 1명씩이다. 국회 전체를 놓고 보면 2백99명 의원 아래에 인턴을 제외한 1천8백여 명의 보좌진이 근무를 하는 셈이다. 이들은 모두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 권한은 전적으로 의원이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의원의 말 한마디에 ‘직장’을 잃고 하루아침에 ‘백수’가 될 수도 있는 것이 보좌진 신분이다. 실제 교체 시기가 짧아 ‘보좌관 훈련소’로 불리는 의원실은 늘 국회에 있었다. 의원과의 친분보다 공채를 통해 뽑힌 정책 보좌진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이같은 ‘물갈이’ 현상은 더욱 빈번해졌다. 한 차례 국정 감사가 끝나고 나면 짐을 싸서 의원실을 떠나는 보좌진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분상의 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의원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벌이는 노력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한 건 올리기’ 경쟁이 대표적이다. 한나라당 당직을 맡았던 한 의원의 보좌관은 “좋은 정책을 만들어 제안하기보다 의원을 언론에 자주 노출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개인적인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건 터뜨리기 위해 정보 활동에 매달리는 보좌진이 적지 않다”라고 전했다. 문제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실제 보좌진을 교체하는 의원들이 있다는 데 있다. 단순히 일방적인 ‘착각’만은 아닌 셈이다.

정치 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맞으면서 보좌진의 역할과 지위도 많이 달라졌다. 의원과 한 배를 탔던 ‘정치적 동지’는 국회를 떠나고 있다. 빈자리는 국회에 입성한 ‘정책 전문가’가 채워나가는 중이다. 박사급 전문 인력이나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보좌관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하지만 여야 갈등이 격화할 때면 여전히 ‘돌격대’로서 선두에 설 것을 요구받는 현실에 절망하는 이들도 따라서 늘고 있다.

‘보좌관 수난 시대’가 끝나는 날이 우리 정치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날이 될 것 같다.

서로 폭행당했다며 고소에 맞고소
 
줄소환 맞는 여의도

 

국회 폭력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검찰의 소환 통보가 무더기로 날아왔다. 지난해 12월 정기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놓고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상대 당과 국회 사무처로부터 고발당한 의원들이 대상이다. 정치 공세적 성격이 강한 사건이지만 검찰이 신속 수사 방침을 밝히고 있어 실제 사법 처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지난 3월1일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 로텐더홀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 사태에 대한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차명진 한나라당 의원이 폭행을 당했다며 민주당 당직자인 신 아무개씨를 고소하자 민주당은 차의원이 가해자라고 반박하며 맞고소를 하고 나섰다. 공정 수사도 촉구했다. 정세균 대표는 “여야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발끈했다. 윤상현 대변인은 ‘깡패 집단’ ‘자해 공갈단’ 등의 표현을 써가며 “역시 해머 정당, 폭력 정당답다. 통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2월 임시국회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되면서 봄을 맞이했지만 여의도 정치권은 여전히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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