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친박계 의원 49명 설문 조사
“지금은 나설 시기가 아니다”
[1011호] 2009.03.03 04:41:30(월) 감명국·안성모 기자
▲ 1월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의원이 동료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날개깃에 발톱을 감춘 채 때를 기다리는 매의 모습이었다. 한나라당 내 ‘친박(親朴)’계의 지금이 딱 그렇다. 정국이 다시 소용돌이치고 있다. 2월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기습적으로 직권 상정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정국은 대치 국면에 재돌입했다. 외견상 한나라당은 강경해 보인다. 더 이상 소수 야당에 끌려 다닐 수 없다는 기세이다. 하지만 거대 여당의 속사정도 그리 만만치는 않다.
지금 거대 여당 한나라당에서 ‘친이(親李)’계와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친박계를 주목하는 눈길이 많다.
여당과 민주당에 이은 ‘제3 정당’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친이계 쪽에서는 “사실상 지금은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라는 볼멘소리도 터져나온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향후 정국 방향타를 친박계가 쥐게 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 친박계 의원들은 애써 손사래를 친다. 요즘 유행하는 어투로 “우린 비주류일 뿐이고, 특별한 계파 모임도 없고…”라며 몸을 사린다.
<시사저널>은 친박계의 실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이른바 ‘친박’으로 분류된 한나라당 내 58명의 현역 의원들에게 직접 설문지를 들이밀었다. 2월16일부터 27일까지 약 2주간에 걸쳐서 7개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의 성격상 박근혜 전 대표는 제외했다. 57명 가운데 장기 해외 출장 중인 구상찬 의원을 포함해, 8명의 의원이 마지막까지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시사저널>의 설문 인터뷰에 응한 의원은 49명이었다. 물론 이 중에는 “친박인 것은 맞지만, 이런 설문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거나 “친박이니, 친이니 하면서 편가르기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개진한 의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현 정국에서 의원이 갖는 개인적 견해와 입장이라고 보고 답변에 포함시켰다.
▒ ‘친박’으로 분류되는 데 대해 동의하는가
▲ 국회 본회의장에서 동료 의원들과 환담을 나누는 박근혜 의원(뒷 모습). ⓒ연합뉴스
답변에 응한 49명의 의원 가운데 “나는 친박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자기 입장을 밝힌 의원은 초선의 한 의원이었다. 그리고 중진급의 ㅇ의원과 ㅎ의원은 “과거 경선 때나 지금이나 엄정 중립이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37명의 의원들은 “친박이 맞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중진의 ㅇ의원은 “박 전 대표와의 인연은 10년 전부터 남다르다. 당 대표 시절 바람 잘 날 없는 거대 야당을 이끄는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원칙과 기준에 반발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조직 장악력을 보였다. 건국 이래 그처럼 거대 야당이 조용한 적이 없었다”라고 밝힐 정도로 친박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였다. ㅈ의원은 “박 전 대표 때문에 당선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는 답을 했고, 또 다른 ㅈ의원은 “친박은 맞지만, 이런 이분법적 구도를 박 전 대표도 별로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문제는 나머지 9명이었다. 대부분 초선 의원들인 이들은 “지금은 친박·친이를 나눌 때가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행간의 의미가 필요했다. 이들은 어느 누구도 강력하게 자신이 친박으로 분류되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답변에 응한 49명의 의원 중 세 명을 제외한 46명은 자신을 친박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동의하는 모습이었다.
▒ 최근 친박계의 독자 모임 움직임에 대해
이 부분에서 친박계가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대세는 온건파이다. 답변에 응한 49명 가운데 25명이 최근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친박계의 독자 모임 움직임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는 5명에 불과했다. 입장을 유보하거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관망적 입장을 취한 의원은 19명이었다.
중진의 ㅇ의원은 “친박계 모임은 없다.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의원들끼리 자연스럽게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은 있지만, 계파적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라고 밝혔다. 많은 의원들이 “편 가르기 하는 분열 양상으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원론적 입장을 나타냈다. ㅅ의원과 ㅈ의원 등 상당수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계파 모임을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ㅈ의원은 “자기 입지 강화를 위해 모임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게 박 전 대표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라고 일부 강경파를 비난하기도 했다. ㅇ의원은 “지금은 친박 모임이 오히려 우리에게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ㅇ의원은 “자연스럽게 모이는 것은 좋다. 의도적으로 피할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고, ㅅ의원은 “당내 선의의 경쟁을 통해 분위기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ㅇ의원은 “지금은 때가 아니다. 각자 내실 있는 공부를 하면서 시기를 기다려야 할 때이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 최근 이재오 전 의원 귀국 예정 등 ‘친이’계 결집 움직임에 대해서
답변에 응한 대다수 친박계 의원들은 “이재오 전 의원이 귀국하더라도 당내에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또 당내 불협화음이 우려된다”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ㅅ의원은 “이 전 의원 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해서 당장 무슨 변화가 생기겠나. 전직 의원은 행동 반경에 한계가 있다”라고 답했다. ㅇ의원은 “지역구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일차 심판을 받지 않았나. 큰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ㅈ의원은 “(친이 결집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지나치게 친박을 견제한다든지 친박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는 계파 모임을 자주 한다든지 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다른 ㅈ의원은 “그도 정치인인데, 아무 활동도 하지 말고 자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라고 답했다.
반면, ㄱ의원은 “당내 화합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당 중 당’ 세력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고 답했다. ㅇ의원은 “일단 들어오게 되면 그분이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조용할 것 같지 않다”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ㅅ의원은 “지난 총선 공천 과정을 보면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또 큰 불협화음이 일지 않을까 우려된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국정 수행 1년에 대한 평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1년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친박계 의원의 절반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머지 절반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거나 좀더 지켜본 후에 평가해야 한다는 유보 입장이었다. 집권 초기 이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긍정적인 평가만을 내린 의원은 없었다.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이 가장 많았다. ㅇ의원은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의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다. 또,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일을 믿고 맡겼으면 좋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ㅅ의원은 “정권 출범 초기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데 실패했고, 하반기에는 도리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한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국회와의 소통도 부족했다는 평가이다. ㅎ의원은 “원래 계획했던 정책을 펼치기에 여건이 좋지 않은 측면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여의도 정치를 도외시한다면 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 길을 선도하면서 국민의 대표인 의회를 인정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집권 여당의 무기력함을 질책하는 의원들도 여럿이었다. ㅇ의원은 “정치권 특히 여당이자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국민의 눈에 무기력하게 비친 데 대한 비판이 많다”라고 전했다.
평가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있었다. ㅈ의원은 “지난 정권 10년 동안 많은 부분이 바뀌어서 선회를 하기가 굉장히 힘들다. 1년으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대통령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ㄱ의원은 “인사 문제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 문제였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데는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평가하려면 좀더 시간을 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 여야 간 입법 전쟁의 대치 국면에서 정부와 당 지도부가 강행 의지를 보인 데 대해서
박근혜 전 대표는 얼마 전 정부와 당 지도부의 쟁점 법안 강행 돌파 의지에 대해 신중론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설문 인터뷰에 응한 대다수 친박계 의원들 입장은 조금 달랐다. 야당과의 ‘입법 전쟁’에서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소 높았다.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미디어법안을 직권 상정한 데 대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ㅇ의원은 “직권 상정은 소통을 하기 위한 방안이다.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ㅊ의원도 “일단 법안을 상정해야 토론을 하던 협의를 하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ㅈ의원은 “언제까지 계속 끌려다닐 수는 없다. 밀어붙일 것은 밀어붙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야당에 대한 불만도 터져나왔다. ㅎ의원은 “상정 자체를 방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소수 야당의 횡포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ㅇ의원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력한 야당이다. 폭력 점거 농성으로 다수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전 선동에만 능하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강경 대응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ㅈ의원은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끝까지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ㅇ의원은 “야당의 존재를 무시하고 굴복을 강요하는 다수결의 정치는 국민 통합에 절대 도움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ㅇ의원은 “너무 정형화된 틀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 폭넓은 방법으로 여야 간 대화를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입법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 대한 문제 제기도 나왔다. ㅈ의원은 “여당 지도부에서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불필요하게 야당을 자극해서 과잉 반응하게 단초를 제공한 책임은 여당에 있다”라고 말했다.
▒ 향후 친이계와의 결별 가능성에 대해서
▲ 2월21일 부산에서 열린 ‘친이·친박 조찬 모임’. ⓒ뉴시스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친이계와의 결별’ 시나리오에 대해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친박계 의원들의 숨겨진 발톱이 일부 드러난다. 때가 오면 물러서지 않는 전쟁이 불가피하리라는 것이다. 현역 의원은 아니지만,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정치인은 “내년 지방선거가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또, 지난해 총선과 같은 식으로 친이가 모든 것을 다 움켜쥐면 친박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ㅈ의원은 “(결별 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공멸하자는 것밖에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ㅎ의원은 “당이 쪼개지면 나가는 쪽이 바보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싸우더라도 안에서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ㅅ의원도 “당을 나가려고 했다면 진작 나갔을 것이다. 절대 먼저 나갈 일은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의원들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부 경쟁이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앞서 오는 4월로 예정된 당협위원장 선출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느냐를 주목하는 분위기이다. ㅅ의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계파를 챙기겠다고 공천 압력을 가하면 결국, 친박 몰아내기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ㄱ의원은 당협위원장 선출과 관련해 “무소속 후보에게 졌다면 국민의 심판은 끝난 것이다”라며 현역 의원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ㅂ의원도 “관례적으로 현역 의원이 입당을 하면 당협위원장 자리를 주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ㅇ의원은 “국정 운영에 협조하지만 당 운영에서 일방적인 행동을 한다면 우리도 할 말은 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 박근혜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
이번 설문 인터뷰에서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친박계 의원들의 ‘애정’과 충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의 최근 정치 행보에 대해 국민 사이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이다”라는 비판적 시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응답한 대다수 의원들은 “잘하고 있다”라며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ㅇ의원은 “국익 차원에서 가장 현명한 길을 걷고 있다. 나서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다. 이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면서 정치인으로서 소신도 지키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ㅈ의원은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대로 하고 있다. 현재가 최선의 답이고 최고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침묵의 정치’를 지켜나가느냐, ‘말의 정치’를 하느냐에 대해서는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 ㅇ의원은 “말을 아끼는 것이 이대통령이 정국을 잘 이끌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정치 영역을 키우고 색깔을 강조할 시기는 아니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ㅅ의원은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사안마다 꼭 목소리를 내야 하나. 박 전 대표가 침묵을 지키는 것 자체가 이대통령을 돕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ㄱ의원은 “승자가 손을 내밀 때까지 기다려야지 먼저 앞서 나가는 것은 패자로서의 도리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희망 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회의원 그림자냐 비정규직 돌격대냐 (0) | 2015.03.30 |
---|---|
화려하게 복귀한 전인대 대변인으로 ‘시인 외교관’ (0) | 2015.03.30 |
[인터뷰] 허태열 “친이계 결집 나쁠 것 없다” (0) | 2015.03.30 |
MB 인재풀은 ‘인수위’ (0) | 2015.03.30 |
첫 번째 입 무슨 말 할까 (0) | 2015.03.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