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여론조사 부정’ 백태
금전 거래·‘대기 알바’ 등 수법 갖가지
[1173호] 2012.04.12 19:59:43(월) 안성모 기자
ⓒ 일러스트 권오환
“집에서 대기해 있기만 해도 하루에 5만원, 이틀에 10만원을 준다고 한다.”
이번 4·11 총선에서 야권 단일 후보 경선을 앞두고 있던 야권의 한 유력 후보가 지난 3월 말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각종 여론조사 등 객관적인 평가에서 상대 후보에게 앞서고 있지만, 경선 여론조사에서 이른바 ‘알바’를 고용하는 등 조직이 동원되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섞인 말이었다. 그는 “어떤 후보가 여론조사를 대비해 몇천만 원의 돈을 미리 준비해두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의 경우 역대 어느 선거보다 여론조사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단지 후보의 지지율 판세를 알아보는 수준을 넘어,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유력 정당들 사이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후보 경선 기준으로 삼는 등 사실상 후보 공천의 중요한 잣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야권 후보 단일화의 경우, 아예 여론조사로만 승부를 펼쳤다. 가장 쉽고 빠르게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여론조사의 장점 때문으로 보인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번 총선을 두고 ‘여론조사 선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요한 여론조사가 “공정하지 못한 데다가 반칙까지 난무한 부정 경기였다”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는 데 있다. 그 배경에는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여론조사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론’에서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임의로 조작할 수 있다는 ‘날조론’에 이르기까지 불신은 폭넓게 퍼져 있다.
정치 전문가들도 여론조사로 총선 후보를 선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많이 한다.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를 기획하고 운용하는 데 도움을 주는 참고 자료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선거 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한 전문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여론조사의 조작 수법을 기자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대해 “전략 공천을 하면 다른 후보들의 반발이 예상되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전문가는 “여론조사 역시 조직 싸움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출마 지역에서 조직을 잘 갖춘 후보가 ‘체육관 경선’은 물론 ‘여론조사 경선’에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을 높이는 수법은 간단했다. 우선 집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의 경우 ‘대기 알바’를 조직적으로 구성한다. 선거와 관련한 ARS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2% 안팎에 불과하다. 100가구에 전화를 걸어야 한두 가구에서 응답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집에서 대기해 있으면 여론조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여론조사 표본·업체 두고도 뒷말 무성
이 과정에서 금전이 오간다고 한다. 그는 “많은 인원을 동원하려면 돈 없이는 힘들다. 현역 의원이라고 해도 자발적으로 선거를 돕는 지역 사람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많아야 몇백 명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피라미드 형태로 인원을 늘리는 것이다. 물론 공짜로 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동원을 하느냐, 동원을 하지 않느냐에 따라 여론조사 결과가 확실히 차이가 난다”라고 설명했다.
집 전화를 특정 휴대전화에 착신해놓는 방식도 이용된다. 여론조사 전화가 집으로 걸려오면 휴대전화로 돌려져 미리 준비해둔 응답을 하면 된다. 집 전화가 무더기로 착신이 된 휴대전화도 있다고 한다. 보통 한 건당 몇만 원씩의 적정 가격이 붙는데, 통화 기록이 남기 때문에 후보와 관련 없는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여론조사 시기를 사전에 공표하고, 본인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서울 관악 을 지역의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문제가 된, 나이를 속여서 응답하는 일은 이제 비밀도 아니라고 한다. 집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의 경우 20~30대 젊은 층의 응답률이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사전에 특정 연령을 염두에 두고 응답을 하도록 입을 맞춘다는 것이다. 관악 을에서 특히 논란이 된, 여론조사 진행 과정이 후보 캠프로 실시간 보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여론조사가 실시될 경우 보통 각 후보측에서 참관에 나선다고 한다. 이번에는 양 정당의 당직자들이 참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 표본 자체도 의심을 받고 있다. 여론조사의 기본 자료가 될 전화번호 데이터베이스(DB)가 공정하지 않게 구성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령 특정 후보 지지자들의 전화번호를 앞쪽에 배치해 샘플을 채우게 되면 그 뒤는 조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특정 후보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를 실시한 일부 업체를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업체 선정에서부터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이름이 알려진 업체들의 경우 후보를 결정하는 여론조사이기 때문에 부담이 있어서 대부분 거부를 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검증을 받지 않은 업체가 끼어들어 여론조사를 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지역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정당을 선택하면 전화가 마지막 단계에서 끊기는 일들이 발생했다고 한다. 응답은 했지만 결국 무효가 된 셈이다. 그는 “여론조사에서 조작 가능성은 늘 열려 있다. 이번의 경우 관리 자체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심도 든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러 가지 의혹을 사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여론조사 경선, 당 아닌 선관위가 관리해야”
이번 총선에서는 많은 후보가 여론조사에 의해 정치적 명운이 갈렸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공천 여부가 판가름 나는가 하면, 야권 후보 단일화의 주인공으로 낙점받기 위한 여론조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낙천자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무소속 출마로 이어졌다. 정치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만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후보 선출을 목적으로 여론조사를 활용하려 한다면 제도를 보완해 좀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이번처럼 정당이 주체로 나설 것이 아니라 선관위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당내에서 선수는 물론 심판까지 맡을 경우 공정성을 담보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만큼 탈락자들이 당 지도부를 불신하는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태를 차단하기 위해서도 당 외부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법적 절차를 거치게 되면 경선 불복도 예방할 수 있다. 현재의 경우 경쟁에서 지더라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본선뿐 아니라 예선에서도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마련해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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