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비서실장 출신 김상현 전 의원 인터뷰
“87년 대선 때 단일화 실패한 것 후회하기도”
[1036호] 2009.08.25 17:32:21(월) 안성모 기자
ⓒ시사저널 임준선
김상현 전 의원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DJ)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는 열아홉 살 되던 해인 1957년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50여 년 세월을 DJ의 동지이자 아우로 지냈다. 1987년 대선 당시 잠시 떠나 있었지만, 새천년민주당 창당과 함께 다시 DJ 곁으로 돌아왔다. 현재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어떤 지도자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김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그분의 희생과 노력과 헌신에 힘입은 바 크다.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지도자일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어떤 분이셨나?
굉장히 자상하고 다정다감하다. 유모와 위트도 있는 분이다. 만나면 꼭 가족들 안부를 물었다. 우리 아들 영호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데, DJ가 갈비를 사준 적이 있다. 그때 영호가 4인분이나 먹으니까 ‘이 놈은 절대 고깃집에 안 데려가야겠다’라고 농담을 하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만나면 ‘영호는 잘 있느냐’라고 묻고는 하셨다. 그리고 굉장한 노력가였다. 언제나 공부하고 메모를 했다. 정치를 하면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
기억에 남는 다른 일화가 있다면.
김 전 대통령이 인제 보궐선거에 당선된 지 3일 만에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의원 선서도 못하고 구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사모님인 차용애 여사께서 돌아가셨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절망스런 표정 한 번 짓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력서에 ‘5대 국회의원’이라고 써 있어서 “형님, 사기치지 마시라. 선서도 못했는데 무슨 국회의원이냐”라고 농담하니까 “이 사람, 사기는 무슨 사기냐. 등록은 했다”라며 서로 웃었던 기억도 난다.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꽃피웠고,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통일 문제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생애에서 가장 큰 구상이고 철학이었다. 또, 외환위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경제적 난국을 지도력으로 풀어나간 것이다. 역사에 남을 훌륭한 업적이다.
반면에 아쉬웠던 점도 있을 텐데.
정말 아쉬운 것은 1987년 ‘양김’(김대중·김영삼) 후보 단일화를 못 이룬 것이다. 양김은 항상 지역 감정 해소와 국민 화합을 강조했는데, 양김이 분열되면서 역사상 지역 감정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김 전 대통령이 엄청난 오류를 범했다고 본다. 정치 생애 중 가장 큰 실수였다. 그분도 나중에 ‘후회한다’라는 뜻을 밝혔다.
만약 그때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상 노태우 정권의 탄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 화합과 동서 화합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양김은 정상적으로 대통령을 지냈을 것이고, 민주 세력도 분열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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