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특위 구성·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 분주…한·미 FTA 처리 둘러싼 공방도 가열
[995호] 2008년 11월 12일 (수) 안성모 asm@sisapress.com
▲ 당정은 지난 11월6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오바마 대통령 당선에 따른 전반적인 대책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미국이 선택한 ‘변화의 바람’이 태평양을 넘어 한국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버락 오바마 당선인이 백악관의 새 주인으로 결정되던 날,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본 한국 정치권도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청와대와 각 정당은 일제히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논평을 내놓으며 한·미 관계의 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관계 변화의 정도와 대응 방식에서는 ‘온도 차’를 보였다. 특히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새로운 틀이 될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방식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미국 민주당이 선거에서 압승하면서 한국 민주당의 목소리도 모처럼 높아졌다. 민주당은 오바마 당선인의 승리를, 경제 위기를 몰고 온 부시 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공화당의 경제 정책이 실패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정세균 대표는 “한나라당이 미국 공화당과 같이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번 선거에서 심판이 끝난 것이다”라며 정책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또,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부시 정부와 공화당과의 관계에만 집중하는 편향성을 보여왔다며 향후 한·미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오바마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마자 한미관계발전특별위원회를 긴급히 구성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11월5일 오후 국회에서 가진 첫 회의에서 위원장을 맡은 송영길 최고위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역사적인 날이다”라며 오바마 대통령 당선을 반겼다.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인물평에서부터 “새로운 진보의 시대를 열었다”라는 해석까지 한동안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기도 했다. 민주당은 특별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한·미 관계 발전을 위한 당의 역할을 논의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여권은 상대적으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보수 정당인 공화당의 선거 패배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지만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한·미 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도 11월6일 정몽준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한미관계특별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특별위원회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정세 변화를 분석하고, 오바마 진영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미국 방문도 추진할 예정이다. 박희태 대표는 “전통적 한·미 동맹 관계와 우의 협조 관계가 더 굳건해지고 발전되는 방향으로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당 차원에서도 지금 대비를 시작했고,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밝혔다.
FTA 재협상 요구 가능성에 촉각
청와대도 오바마 진영과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꼴이다”라며 공통점을 부각시켰다. 11월5일 당선 확정 보도가 나온 직후 축하 서한을 보낸 이대통령은 이틀 뒤인 7일에는 직접 전화 통화를 해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대통령은 또,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때 오바마 진영의 핵심 참모들과 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다.
국회 비준을 앞두고 있는 한·미 FTA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가 한·미 관계 설정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재협상은 없다”라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당선인은 그동안 한·미 FTA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 만큼 새롭게 구성될 미국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선거 캠페인 기간에 여러 차례 문제 제기를 했다. 지난 5월23일 “한·미 FTA는 아주 결함이 많은 협정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서한을 부시 대통령에게 보냈던 그는, 6월16일 미시간 주 플린트의 캐터링 대학 연설에서 “한국이 수십만 대의 차를 미국에 수출하면서도 미국 차의 한국 내 수출은 수천 대로 계속 제한하도록 하는 협정은 현명한 협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10월15일 열린 3차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도 “미국의 기업과 노동자들을 위해 불공정한 협정에 반대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하다”라고 재차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오바마 당선인의 이같은 발언을, 지지층을 염두에 둔 ‘정치적 수사’로 분석하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미시간 주와 오하이오 주 등에서 ‘표심’을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의 일환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협정문 서명이 이루어지고 양국 의회의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협상의 균형을 훼손시켜가면서 재협상을 무리하게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오바마 당선인뿐 아니라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줄곧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를 문제 삼아 왔다는 점에서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정부·여당 “국회 비준 서둘러야”, 야당 “상황 변했다”
▲ 민주당 한미관계발전특별위원회가 11월5일 국회에서 첫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시사저널 유장훈
현대경제연구원은 11월4일 ‘미국 대선 결과의 경제적 영향과 대응’ 보고서에서 “미국 경제 위기의 원인을 자유 무역으로 보고 FTA 등에 대한 재검토 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한·미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미국이 쇠고기 협상 때처럼 형식적으로 FTA와 무관한 연례 통상 협의와 같은 다른 경로로 비슷한 요구를 해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자동차 산업에서 협상 성과를 올렸던 정부에게 부담스럽기는 재협상 요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부·여당에서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정기 국회에서 통과시켜 미국의 비준을 압박하고 재협상 요구를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오바마 당선시 자동차 문제에서 일부는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어 그러한 가능성을 사전에 배제하고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라며 조속한 국회 비준을 촉구했다. 일단 11월17일 전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비준안을 상정하고, 이날 여야 간사단이 방미해 오바마측 인수위 팀과 접촉한 뒤 면담 결과를 보고 의결을 추진하기로 당정이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제1 야당인 민주당이 미국 대선 결과 상황이 변했다며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선제적인 비준에 동의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의원총회를 통해 재확인했고, 여당 내에서도 농촌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어 한·미 FTA 비준안 처리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비준 동의 뒤에도 자국 이익을 앞세운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해올 경우 재비준을 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 정부에 부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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