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수장 손학규ᆞ정동영 ‘정치 휴식’
리더십 부재 극복·강한 야당 만들기 ‘숙제’
[977호] 2008년 07월 15일 (화) 안성모 asm@sisapress.com
통합민주당이 시험대에 올랐다. 7월6일 전당대회(이하 전대)를 통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했지만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길이 첩첩산중이다. 지난 국회와 비교할 때 반토막 난 81석의 의석 수로 제1 야당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과반을 훌쩍 넘긴 거대 여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자칫 ‘야당 무용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
두 달째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촛불 정국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지만 민주당도 정치적 이해득실만 따지며 뒷짐 지고 있을 상황이 못 된다. 현 정부에 대한 불신 정도는 아니더라도 민주당 역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촛불을 든 국민의 냉정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촛불 정국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은 이러한 우려를 낳기에 충분해 보였다. 서울광장과 국회의사당 사이에서 우왕좌왕한 민주당은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등원 여부를 둘러싼 당내 의견 대립은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엇박자 행보’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측면에서 전대 이후 민주당은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실세’가 물러난 이후라 더욱 그렇다. ‘간판 선수’였던 손학규 전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강한 야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전대를 통해 키를 쥐게 된 새 지도부가 망망대해에 놓인 ‘민주호’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가느냐에 민주당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새 지도부에게는 위기이자 기회
민주당 내 주요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대권 주자들이 하나둘씩 ‘정치적 휴식기’에 들어갔다. 대선 참패의 충격을 딛고 총선을 치르며 당을 수습해온 손학규 전 대표는 전대를 끝으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손 전 대표는 “앞으로 얼마간 반성과 변화, 그리고 쇄신의 시간을 보내겠다”라며 현실 정치에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때 당내 최대 계파의 수장으로서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동영 전 장관은 전대를 나흘 앞둔 7월2일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동안 노스캐롤라이나 주 듀크 대학에서 초청교수 자격으로 머무를 예정이며, 이후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둘러볼 계획이다. 1년 정도 국내를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졌다.
대권 도전을 놓고 경쟁했던 두 유력 정치인의 ‘2선 후퇴’는 민주당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민주당의 고질적 문제로 제기되어온 리더십 부재가 심화해 더욱 큰 혼란을 겪을 수도 있고,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 재도약의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새 지도부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며 당을 이끌어나가느냐에 달렸다.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향후 계파 갈등이 당세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대 과정에서 후보들은 ‘줄 세우기’ 경쟁을 앞다투어 갖는 등 신경전이 치열했다. 토론회에서는 ‘허위 사실 유포’ ‘법적 대응’ 등의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위험 수위를 넘나들기도 했다. 전대 이후 당 화합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면서 감정적인 앙금은 해소될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얽히고설킨 계파별 이해관계를 조정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관리형 지도부’로는 한계
이른바 ‘관리형 지도부’로 인식될 경우 그 한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전보다 많이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이번 전대 역시 계파 대 계파 간 대결로 펼쳐졌다. 4·9 총선 이후 신주류로 부상한 손 전 대표 세력은 전대 기간 내내 영향력을 발휘하며 일찌감치 ‘정세균 대세론’을 불러왔다.
지난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뛰어난 조직력과 결속력을 선보였던 정 전 장관 세력의 경우 이번 전대에서는 처한 상황에 따라 각자도생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뿔뿔이 흩어지기는 했지만 역시 건재를 과시했다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다 옛 민주당 세력과 친노 세력까지 가세하면서 민주당 내부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들 세력이 ‘수장’의 정치 복귀를 염두에 두고 당 운영에 관여한다면 마찰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손 전 대표와 정 전 장관 모두 당분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겠지만 때가 되면 대권 도전에 다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손 전 대표는 동아시아미래재단을 통해 정책 연구에 몰두하는 한편 선진평화연대를 통해 지지 기반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장관도 미국으로 떠나기 전 “훌륭한 정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책도 보고 사람도 만나 제 나름으로 그림을 한 번 그려보겠다”라며 재기 의지를 보였다.
‘대안형 리더십’ 발휘될까
결국, 민주당 새 지도부가 보여야 할 리더십은 과거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민심의 요구를 모아 정책으로 해결하는 ‘대안형 리더십’을 발휘해야 제1 야당으로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이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한 후 대안 정당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의석 수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이 경우 계파의 이해관계도 자연스럽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갈등에서 통합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크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당의 문제점과 관련해 “리더십 자체가 약하다는 것보다 사회와의 거리가 너무 떨어진 것이 문제였다. 특히 사회로부터 제기된 문제를 제대로 정책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정교수는 “이제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 인물도 정책도 구태의연하지 않은 새로운 리더십을 국민도 바라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리더십은 새로운 대권 주자의 등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당 지도부 선거에 나선 정치인 대부분 자천타천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인물들이다. 그런 만큼 ‘관리형 지도부’ 꼬리표가 달가운 이는 많지 않다. 이들이 차기 대권 도전에 나서기 위해서는 당내 구성원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리더십을 검증받아야 한다.
황인상 P&C글로벌네트웍스 대표는 “아직까지 야당을 이끌어갈 리더십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진행되지는 못했다. 다만 리더십의 공백 상황에서 새로운 리더십은 국민의 검증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당내 지도자들이 이에 대한 경쟁을 펼쳐나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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